지난 5월 1일 외국인 환자 유인, 알선을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발표된 지 벌써 반년을 훌쩍 넘어섰다. 합법화가 염원이던 병원들은 외국인 환자 유치에 열을 올리면서, 국내외 컨퍼런스에 참여하고 다른 병원의 움직임을 주목했다.
병원계와 개원의들이 모인 여러 단체들이 조직적으로 구성되는가 하면, 관련 에이전시와 관광업체들의 움직임도 눈에 띄었다. 외국인 환자를 한 명이라도 더 유치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도 분주했던 올해 의료계의 외국인 환자 유치 실적과 활동을 돌아보고, 내년을 전망해본다.

합법화 이후 유치 실적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증가한 것으로 보여진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국제의료협회(전 국제의료서비스협의회) 소속 26개 기관에서 2007년 진료를 받은 외국인 환자는 7901명이었으며, 2008년에는 247.8% 증가한 2만7480명이었다.

또한 21개 기관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9075명을 유치한데 비해 11개 기관이 5월부터 7월까지 4893명을 유치, 7월까지 1만3968명을 기록하면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6.8%증가했다. 진흥원 장경원 국제의료서비스센터장은 "9월까지는 외국인 환자 2만6451명이 다녀갔다"며 "이대로라면 연말까지 4만2111명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주로 찾는 진료과목은 국제진료소를 포함한 가정의학과(15%), 내과(14%), 검진센터(10%) 순이며, 검진센터, 산부인과, 안과, 치과 등은 환자 증가율이 40%이상이었다. 국적으로는 미국이 가장 많고 중국, 일본, 캐나다, 러시아가 뒤를 이었다. 중동 국가는 실제적인 환자수는 많지 않더라도, 증가율이 167%에 달해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지난달 진흥원 국정감사를 통해 유치 실적이 허울만 좋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강도높게 제기됐다. 통역서비스인력 현황, 의료사고 및 민원 파악 등 실질적인 내용에 대한 통계가 없으며, 유치실적도 정확한 수치가 아닌 추정치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곽정숙 의원(민주노동당)은 "2007년 해외환자유치실적은 7901명이지만, 정부업무평가에는 두배나 부풀린 1만5568명으로 제출했다"며 "2008년 해외환자유치실적도 실제보다 1만1342명 많은 3만8822명으로 제출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유치환자수가 아닌 환자 "방문횟수(연인원)"를 집계해 제출했기 때문이며, 이를 통해 해외환자유치사업에 대한 업무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전혜숙 의원(민주당)도 "국민건강보험을 사용하지 않은 외국인 진료를 모두 유치 실적으로 뻥튀기 한 것"이라며 "진흥원은 실제 규모가 얼마인지 그들이 어떤 진료에 얼마나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지부터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냈다.

최근에는 유치 실적에 주한미군을 넣는 것이 큰 이슈로 떠올랐다. 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7개 병원이 유치한 해외환자 1만6356명 중 18.3%인 2998명이 국내거주 주한미군였던 탓이다.

곽정숙 의원은 "국내거주 외국인에 대해 의료행위를 소개·유인·알선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주한미군이나 외교관 등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않는 일부 국내거주 외국인들은 이를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외국인 환자 통계수치는 의료법에 따라 국민건강보험법 가입자나 피부양자가 아닌 외국인, 국내 거주 외국인은 제외하게 돼 있다. 따라서 외국국적동포나 외국인 등록을 한 사람, 외국인 등록하지 않은 외국인 외교관, 미군 역시 통계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복지부측은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않는 국내 체류 외국인은 우리나라 의료수준에 만족하지 않을 경우 자국으로 돌아가 의료서비스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미군 역시 외국인 환자로 보는 것이 맞으며, 앞으로는 점차 이 비율이 줄어들 것"이라고 해명했다.

물론, 진흥원 발표실적을 우리나라 전체 상황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현재 외국인 유치를 위해 등록한 의료기관은 1246개 기관으로, 그중 41개만이 국제의료협회에 가입돼 있기 때문이다. 협회 소속 기관만을 토대로 외국인 환자 유치실적으로 추정하기에는 한계가 따를 수 밖에 없다.

또한 개원의들로 구성된 전국글로벌의료관광협회, 글로벌의료관광협회 등의 단체는 합법화 직후가 아니라 수개월이 지난 최근에야 출범했기 때문에 아직 실적 파악이 어렵다. 단체에 소속돼 있지 않고 단독으로 외국인 환자 유치에 나서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한 피부과 원장은 "그동안 일부 외국인 환자가 꾸준하게 왔으며 합법화 이후 늘어났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많지만, 전체적으로 분위기는 띄워진 것으로 보여진다"며, "구체적인 유치 실적을 집계할 인력이 부족하며, 굳이 실적을 보고할 메리트를 느끼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다만, 현재 해외환자를 유치하겠다고 하는 의료기관의 실태가 어떤지, 인프라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등을 파악해야 추후 대책이나 개선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의원들의 지적은 마땅하다고 볼 수 있다.

올해 진흥원의 해외환자유치사업 예산은 9억8000만원 정도였으나 4월 추경에서 총 77억으로 급증했고, 내년 예산안에는 무려 1000%이상 늘어난 108억원이 책정됐기 때문이다. 만약 그동안 제대로 된 통계를 작성하기 어려웠다고 해서 앞으로도 소속 병원들의 외국인 환자 진료 실적 보고에만 그친다면, 내년 국정감사에서도 똑같은 질타가 쏟아질 것은 불보듯 뻔하다.

합법화로 인해 외국인 환자에 관심이 없던 병원들까지도 움직임에 주목하면서 유치 실적이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일본, 중국, 미국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향후 의료관광 의용의향이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47.7%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것이나, 최근 2년내 우리나라 의료관광 경험자의 82.9%가 재방문 의향이 있다고 답한 것은 긍정적인 신호탄이다.

싱가포르, 태국 등 이미 외국인 환자 유치에 나섰던 다른 국가에서 경쟁국으로 예의주시하고 있을 정도다. 올해 세계 관광시장은 마이너스 성장 추세로 돌아섰으나, 우리나라는 외래 관광객이 증가하고 관광수지도 9년 만에 흑자로 전환되는 성과도 등에 업었다.

이런 분위기 편승에 그치지만 말고, 냉철하게 현실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 수많은 예산을 쏟아부은 외국인 환자 유치 사업이 보고를 위한 실적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눈에 띄는 성과로 이어지고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외국인 환자가 늘어날 경우 자축 분위기만 형성하지 말고, 의료사고 등의 문제에 대비한 대비책도 늘려나가도록 해야 한다.

또한 복지부와 진흥원은 국제의료협회의 실적만 보지 말고, 외국인 환자 유치가 이루어지는 모든 병원들의 구체적인 실적을 파악하도록 힘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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