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복지위 제1법안소위에서 관련 개정안 논의했지만 보류
의무화에 따른 의사 책임 부담 vs 지속적 의료 추적관리 필요
복지부, 지자체 및 의료계 단체와 의견 수렴해 수정안 제시 계획

지난달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기자
지난달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기자

[메디칼업저버 김나현 기자] 만 7세 미만의 아동학대가 신고될 경우 의사의 진단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는 개정안에 대해 정부와 국회 간 의견차가 확인됐다.

여야는 아동학대의 선제적 예방을 위해 의무조항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정부는 의료진의 과도한 책임 부담 등을 이유로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고 봤다.

지난 23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는 의사소통이 어려운 아동의 경우 의사의 진단을 통해 학대 피해를 발견할 수 있도록 규정한 아동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논의됐다.

최근 아동학대 사건이 계속 발생함에 따라 여러 대책이 마련되고 있지만 아동학대의 신고 대상이 어릴수록 의사소통이 어려워 피해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이에 시도지사 또는 시장, 군수, 구청장은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된 아동에 대해 현장조사 과정에서 학대 피해가 의심되거나 아동이 만 7세 미만인 경우는 반드시 의사의 진단을 받도록 의무화했다.

정부는 법안 발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또한 의료인에게 관련 책임이 전가될 수 있어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양성일 제1차관은 "의사의 진단은 굉장히 중요하다. 다만 의무화가 될 경우에는 의료 현장의 고민도 있어 수정안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복지부가 제시한 수정안은 '의사의 진단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을 '의사의 진단을 받게 할 수 있다. 다만 연령 등의 요소를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우선적으로 지원을 실시할 수 있다'고 변경하는 것이다.

양 1차관은 "이렇게 바꾸면 향후 수가 등을 논의할 때 법률적 근거를 통해 아동학대에 대한 관심도 높이고, 의사 진단에 대한 여러 서비스도 활성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의무조항으로 하기 위해선 현장 의료진의 상황을 좀 더 검토해야 한다. 연령 등 요소를 대통령령으로 정해 지원의 근거를 마련하도록 우회적으로 제안한다"고 덧붙였다.

복지부 박은정 아동학대 대응과장은 "만 7세 이상 또는 장애아동에 대해선 의사 진단 등 조치가 오히려 위축될 수 있다"며 "더불어 의료인에게 아동학대 확인 책임이 생길 수 있어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복지부 이민원 인구아동정책관 또한 "학대의 현장은 굉장히 다양하다. 무조건 의사의 진단을 받게 하면 의료계에선 상당한 부담이 생길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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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법안을 발의한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은 "아이들은 의사표시를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더라도 알 수 없다. 의사의 진단을 의무화하면 몸의 골절, 장기 손상 등을 확인할 수 있다"며 "의사 진단을 통해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미리 막는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다른 위원들도 의사의 진단을 의무조항으로 유지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진단을 받게 할 수 있다'는 조항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의무로 해야 한다. 학대가 의심되는 아동은 의학적 판단을 받아야 하고 재학대에 노출되지 않는지 지속적인 의료 추적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담지정기관이나 의사의 전문성 등이 준비돼야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다'로 고친다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지금 안 바꾸면 못바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도 "그간 아동학대의 골든타임을 놓쳐서 아이들이 생명을 잃거나 참혹한 경우가 발생했다. 지자체는 미온적인 태도로 대응했고 의사들은 권한이 없어 이 모든 것이 축적돼온 결과"라고 강조했다.

즉 대부분 위원들은 의사의 진단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했지만 지자체 및 의료계와 협의가 더 필요하다는 것에 정부와 의견을 모았다. 이에 차후 법안소위에서 법안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양 1차관은 "지자체와 의사단체의 의견을 받고 어떻게 문구를 변경해야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보고하겠다"고 제안했다.

향후 논의에선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의사의 진단을 의무화할 경우 의료진이 과도한 책임을 부여받는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아동학대 신고는 오인신고, 예방적 신고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신고에 대해서까지 의사의 진단을 의무화할 경우 아동의 정서적 불안을 초래하고, 의료인에게는 책임을 전가할 수 있다는 우려다.

가천대길병원 배승민 교수(정신건강의학과)도 앞서 전문가 간담회에서 비슷한 주장을 내놓은 바 있다.

배 교수는 "신고 후 충분한 후속조치가 없을 경우 의심 가족과 지속적으로 같은 지역사회에서 마주쳐야 하는 의료진과 의료기관의 부담이 더욱 커질수 있다"며 "결국 피해 아동이 꼭 필요한 의료서비스마저 받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사 개인이 신고의 모든 책임을 지게 되면 학대 신고의 위험성에 대해 개인의 부담이 지나치게 커지며 보복에 대한 불안에서도 벗어나기 어렵다"며 "대신 국가적인 안전망의 확충이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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