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모호한 표현·식물상태 포함 등 논란

의료계를 중심으로 최초의 연명치료 중단 지침이 마련됐으나 애매모호한 표현과 불명확한 대상의 정의 등으로 사회적 합의에 이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25일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 및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의학회가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공동 개최한 "연명치료 중지에 관한 지침 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는 연명치료 중지 행위 및 규정 등을 구체화한 지침(안)이 발표됐으나 종교, 법조계 등 각계 참석자들은 지침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그 내용에는 의견차를 보였다.

이번 지침이 규정한 연명치료 적용 환자는 회복가능성이 없는 말기환자나 지속적 식물상태 환자로 말기 암, 말기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 질환의 말기 상태,식물상태 등이다.

▲식물상태 연명치료 중단 대상에 포함
눈여겨 볼 점은 식물상태 환자를 연명치료 대상에 포함, 지속적 식물상태의 환자에게 최소 6개월 이상이 지나면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수 있다고 명시한 점으로 토론자들은 하나같이 "논란의 소지가 있다"라며 우려감을 내비쳤다.

가톨릭의대 생명대학원 구인회 교수는 "지속적 식물상태에 있는 환자 가족들에게 큰 고민을 줄 것으로 보완이 필요하다"며 식물상태의 환자를 대상에 포함시킨 것 자체를 지적했다.

홍익대 법대 이인영 교수도 "지속적 식물상태지만 불가역적 의식상실에 이르지 않았을 경우 의사는 생명유지의무가 있으므로 치료중단이 허용되지 않는다"라고 못박았다.

그러나 의료계가 제기한 논란의 소지는 "6개월 이상"이란 대목이다.

서울아산병원 고윤석 교수(중환자의학회 회장)은 "기간을 명시하면 그 동안 국가의 경제적 부담은 물론 환자나 그 가족들도 치료비 부담이나 고통을 겪을 것이고 다른 급성기의 환자들이 중환자실을 이용하지 못한다"며 "연명치료 중단은 기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사와 환자, 가족들이 공유해서 결정해야 하고 무엇보다 의료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포괄적 정의·애매한 표현 재정비해야
의성법률사무소 이동필 변호사는 "환자의 의사결정 능력, 회복 가능성의 여부, 연명치료 대상환자에 대한 규정에 있어 기준을 확고히 하고자 하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며 "연명치료를 적용할 환자를 사례별로 분류하는 것보다 회복가능성 없는 말기환자,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에 대한 포괄적 정의 규정만 둬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구 교수는 "제3수준인 의사결정능력이 없으면서 특수연명치료를 적용해야 할 환자의 추정적 의사를 판단하는데 사전의료지시가 없을 경우 환자의 나이나 직업, 경력 등을 포함하는 것은 차별적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지적하며 "뇌사에 준하는 환자" 등 애매한 문구에 대한 재정비를 요구했다.

이 교수도 "원칙적으로 일반연명치료는 중지하지 않는다"는 문구에 대해 "예외의 상황을 인정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소지가 있어 "원칙적"이라는 문구를 빼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연명치료 중단이 무분별하게 확산될 것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사전의료지시서 문화 확산돼야
지난 대법원의 연명치료중단 판결의 핵심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했다는 점으로 "사전의료지시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계기가 됐으나 이번 지침안에는 사전의료지시서에 대한 내용이 미흡해 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살리지 못했다는 평을 받았다.

또 환자가 자신의 의사 표시를 자연스럽게 논의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사전의료지시서"가 아닌 "사전의료요청서"로 명칭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고 교수는 "외국처럼 건강할 때 가족들과 함께 사전의료지시서의 부분에 대해 자연스럽게 논의할 수 있는 문화가 돼야 할 것"이라며 "이런 의미에서 지시서가 아닌 요청의 개념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의료현장의 어려움을 강조하며 "의료법으로 규정하는 것보다 조례나 시행규칙 정도로 정해 현장의 상황을 합리적이고 유연하게 해결하고 사회적 요구를 좀 더 쉽게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사회의 변화에 따라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복지부 내에 협의체를 두는 것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번 공청회 좌장을 맡은 대한의사협회 이윤성 부회장은 "많은 노력 끝에 지침안을 만들었으나 의료계 내부적으로도 의견이 통일되지 않는 등 어려운 점이 많아 미흡하다"며 "공청회서 지적된 부분들에 대해 충분한 검토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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