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비 지원, 진단·유전상담에 눈돌릴 때"



 희귀질환자나 그들의 가족들은 "차라리 암이었으면"하고 한탄할 때가 많다고 한다. 암처럼 유병률이 높은 질환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을 받기 어려울 뿐 아니라 효율적인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희귀질환은 치료제가 있더라도 암 보다 더 오랜 기간 치료 받아야 하고 대부분의 치료제가 고가여서 한달에 몇천만원의 치료비가 나오기도 하지만 정부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는 10여년 간 희귀질환자들을 위한 지원 활동을 펴고 있지만 의료비 지원 등 단편적인 지원에 그치고 있을 뿐더러 그 규모도 다른 만성질환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희귀질환자들에 대한 실질적 지원 필요성은 이미 수년째 반복되고 있는 문제로 매년 국정감사나 관련 공청회 등을 통해 수면 위로 떠오르지만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희귀질환자들이 심각한 수준의 고통을 받고 있는 것에 공감하면서도 결국 소수라는 이유로 재정분배 과정에서 밀리는 것이다.
 희귀질환자 지원이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한 문제로 의료비 등 단편적인 수준에 머무르지 말고 그들이 사회로 나올 수 있는 포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이들의 지원을 위한 다각적인 정책 수립과 함께 법령 제정도 시급하다.
 메디칼업저버는 창간 8주년을 맞아 희귀질환 지원 정책에 대한 좌담회를 개최, 정부의 지원정책을 살펴보고 국회, 의료계, 환우회의 의견을 수렴해 향후 지원 정책의 방향을 제안한다.




















◇ 좌 장
- 김현주 한국희귀질환연맹 대표
(아주대 유전질환전문센터 센터장)
◇ 패 널 <무 순>
- 박현영 질병관리본부 희귀난치성센터 부센터장(심혈관·희귀질환과 팀장)
- 허 욱 정하균 국회의원실 보좌관(친박연대)
- 정윤석 아주의대 내분비내과 교수
- 조병식 한국근육장애인협회 회장
- 손종관 메디칼업저버 편집국장


급여기준 못 미치면 진단비용은 환자 몫
임상연구·지역거점병원 활성화 노력 필요


 손종관: 희귀질환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도 개선의 필요성이 남아있다. 그들과 더불어 웃을 수 있는 세상을 기대하며 좌담회를 개최하겠다.

 김현주: 메디칼업저버의 창간 8주년을 축하하며 국가나 사회를 비롯해 무엇보다 의료계의 관심이 필요한 희귀질환에 대한 주제를 다뤄줘서 감사하다. 2000년 아주의대 의학유전학과에서 시작해 매년 희귀질환연맹과 함께 열고 있는 "희귀질환 치료를 위한 사회적 여건 형성을 위한 심포지엄"이 올해로 10회를 맞이했다. 최근 열린 10회 심포지엄에서 패널토의를 하지 못해 추후에라도 좀 더 세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아쉬움이 큰 가운데 이런 자리가 마련돼 기쁘다.
 오늘 이 자리에는 희귀질환과 관련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참석해서 희귀질환 정책에 대한 다각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당시 심포지엄에서 발표자로 참여했던 질병관리본부 희귀난치성질환센터 박현영 부센터장, 희귀질환 관련 법안을 상정한 정하균 국회의원실의 허 욱 보좌관, 또 아주의대 정윤석 교수는 내분비대사내과 전문의면서 희귀질환에도 애정을 기울여 왔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의료현장에서의 흔한 일반 질환과 비교해 희귀질환의 문제점을 잘 짚어주리라 본다. 희귀질환 정책을 논의하면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은 환자와 가족의 얘기를 듣는 것이다.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보다는 실제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듣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맞춤형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불편한 몸을 마다않고 한국근육장애인협회 조병식 회장도 자리했다. 먼저 정부에서 희귀난치성질환 관련사업의 집행을 담당하고 있는 박현영 부센터장님으로부터 "정부의 희귀난치성질환 지원 사업 현황과 향후 계획"에 대해 들어보겠다.

 박현영: 정부에서 희귀난치성질환과 관련한 정책 및 사업이 시작된 것은 1990년도 후반부터이며 지난 10년간 의료비지원사업, 정보체계 구축 등 여러 사업이 시작됐다. 그 간의 정부지원사업은 크게 의료비지원 사업과 같은 재정적인 지원, 질병정보, 유병률 조사, 거점병원 지원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의료비 등에 대한 재정지원사업은 본인부담금 및 호흡보조기 등 지원사업과 본인일부부담금 산정특례제도 등 건강보험공단에서의 특례지원이 있다.
 의료비지원은 2001년 4개 질환에서부터 출발했는데,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저소득층의 희귀난치성질환자에서 의료비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자 건강보험 급여비용 중 본인부담금, 보장구 구입비, 호흡보조기 대여료, 간병비 지원을 하고 있으며 현재 약 2만5000명의 환자들이 지원되고 있으며 연간 예산규모는 국고와 지자체 분담금을 합하여 약 940억원이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111종 질환에 대해 지원하고 있으며 세부 질환으로 보면 1000여개 질환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11종에 해당하는 모든 환자에게 혜택이 가는 것은 아니고 저소득층 일부에게만 혜택이 가고 있다. 의료비지원을 위한 또다른 제도는 국민건강보험에서 주관하는 본인일부부담금 산정특례제도로 희귀난치성질환자로 진단받은 경우 경제적 수준에 상관 없이 본인부담금의 요율을 인하해 주는 제도다.
 그 동안 정부가 고시한 138종의 희귀난치성질환에 대해 외래진료비의 본인부담금을 20%로 낮추어 왔으나 올 7월 1일부터는 입원과 외래 모두 본인부담금을 10%로 낮춤으로써 환자들이 보다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 진행된 정부 지원 사업에서 개선되어야 할 점은 진단 후 환자 치료에 지원이 국한돼 과정에 대한 지원이 없다는 점이다. 아직 많은 희귀질환에서 치료효과에 대한 근거가 미흡하기 때문에 치료기술이나 약제투여에서 비급여에 해당하는 부분이 많다.
 즉, 적절한 치료법이 없는 경우 유사질환에 근거하여 치료가 이뤄지며 이때 급여기준에 충족되지 않는 경우 그 비용부담은 환자들에게 주어진다. 이로 인해 정부에서 의료비 지원사업까지 합치면 수천억원에 이르는 적지 않은 규모로 지원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이 느끼는 의료비 부담은 여전히 크다. 따라서 치료효과에 대한 근거를 마련해 제도권 안으로 끌어오기 위해서는 임상연구를 활성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두 번째로 그 간 보건복지가족부에서는 의료의 접근성 향상을 위해 질병정보제공, 지역거점병원 등의 사업을 해왔다.
 질병관리본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희귀난치성질환 정보제공 사이트인 "헬프라인(www://helpline.cdc.go.kr)"에는 현재 약 530개의 질병정보가 등재되어 있으며 향후 그 수를 점차 확대할 예정이다.
 또 매주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이 치료를 위해 서울로 오는 간접 비용이 크다. 지역거점병원을 활성화해 전문병원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면 간접비용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현재 지원규모가 작아 클리닉 운영지원에 그치고 있어 아쉬움이 크지만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지역거점병원으로는 현재 전남대, 부산백병원, 충남대 3개 병원을 지원하고 있다. 지방환자들이 연속성 있는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수도권의 희귀질환 전문병원과 연계해 진료의 질적 수준 향상도 높이고자 한다. 향후 희귀질환 또는 유전학 전문가가 많이 양산된다면 지역환자들에게 보다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정책수립·법령제정…다각적으로 접근해야

 허 욱: 환자들이 느끼는 가장 큰 부담은 의료비에 관련한 것이다. 의료지 지원을 위해 어느 정도까지 예산이 필요하고 실제로 검토되고 있나?

 박현영: 내년 예산은 올해 예산 940억원 보다 적은 800억원대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에서 특례 혜택으로 본인부담금 규모가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전체적인 지원의 규모가 축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소득수준에 따라 본인 부담을 연간 200~400만원만 내도록 하는 본인부담금상한제는 건강보험공단에서 부담한다. 향후 등록제를 시행하면서 환자 현황 파악이 되면 비용 부담 정도도 보다 명확하게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현주: 국내 희귀난치성질환자 수는 최소 13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현재 건강증진기금 커버 인구는 3만명도 안된다.
 이는 아직도 많은 환자들 소외돼 있다는 의미다. 미국의 인구가 3억인데 희귀난치성질환자들은 5%가 훨씬 넘는 2500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비율로 한다면 우리도 100만명이 넘는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현재 환자수에 대한 정확한 개념도 없고 통계도 없어 먼저 정확한 진단에 근거한 희귀질환의 통계가 필요하다. 진단이 된 환자만이 유병률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박현영: 실제 희귀난치성질환에 대한 실태조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제대로 된 유병률 통계도 없어 정책 추진에도 어려움이 있다. 질병수가 너무 많아 한꺼번에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두고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희귀난치성질환에 대해서는 보다 많은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 중증질환의 경우 단순한 의료비 지원에 그치지 않고 질환별로 특화된 지원을 추진할 계획이다.

 입법부 - 희귀질환관리위원회 신설 검토
 임상의 - 희귀질환에 대해 관심을
 환 자 - 산전·유전자검사 지원 필요

 김현주: 이번엔 입법부의 견해를 들어보자. 18대 국회의원인 친박연대 정하균 국회의원실에서 지난 4월 "희귀질환관리 및 희귀질환자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는데, 허 욱 보좌관이 법률안의 주요 골자와 현재 진행상황을 설명해달라.

 허 욱: 현재 희귀난치성질환 기금의 절반 이상이 만성 신부전증 환자 지원에 소요되고 있다. 법안 발의에서도 만성질환 포함시 비용이 어마하게 증가해 법안 통과도 힘들것 같아 희귀질환에 초점을 맞춰 진행하고 있다. 만성질환과 희귀질환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지금 정부가 시행하는 의료비 지원이나 역학조사가 명확한 법률 없이 고시 이하의 복지부 장관 지침에 의해 시행되고 있는 상태다. 법률이 없으면 제도와 정책의 안정성이 떨어질 수 있다. 일단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요 골자는 희귀질환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으로 법안에 희귀질환관리위원회를 신설해 여기에서 희귀질환에 대해 정의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복지부 장관이 희귀질환 관리 종합 계획을 5년마다 세워서 시행하도록 했다.
 현재 국내에는 희귀질환 치료방법이나 약제가 거의 없고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국내 의료계나 제약회사가 희귀질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임상시험 기간을 단축시키고 수입할 경우에도 관세나 부가세 등에 조세혜택을 주는 내용, 특허법에도 특례를 줘 연장시키는 방안, 환자와 가족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덜기 위해 국민건강기금에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명확한 근거를 만들었다. 연구자들에 대한 연구지원도 법적으로 근거를 마련했다.
 법안은 마련됐지만 현재 국회 사정이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7월 임시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리라는 예측은 어렵다. 9월 정기국회에서 논의될 가능성은 있다. 국회법 상에 따라 제정법이기 때문에 공청회도 열어야 하는 등 넘어야 할 부분들이 많다.

 김현주: 다음으로 아주의대 내분비대사내과 정윤석 교수는 내분비대사내과에서 골다공증, 당뇨 등 우리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질환은 물론 희귀질환 환자들을 진료한 임상경험이 있을 것으로 본다. 현장에서의 어려운 점과 또 효율적인 진료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의료제도나 정책에 꼭 반영되어야 할 것들에 대해 언급해달라.

 정윤석: 내분비대사내과를 전공하고 있고 골다공증이 주전공인 임상의다. 한국에서 비교적 흔한 질환들을 보고 있는데 한국적인 진료상황인 3분 진료를 벗어날 수 없다. 대부분의 의사들이 일정한 시간 내 환자를 볼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해야만 현재의 건보수가 안에서 병원 경영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골다공증 환자라고 하더라도 일부는 골연화증도 있고 구루병, 골형성부전증 및 이외에도 아주 드문 희귀질환 환자들이 혼재돼 있다. 그러나 의과대학에 이러한 부분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고 사실상 전문가도 매우 드문 상황이다. 먼저 의대 교육에서부터 희귀질환 진단 및 치료에 대한 커리큘럼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현재 진료환경은 희귀질환 의심환자에 대해 진료시간을 더 할애하면 진료 대기환자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이다. 추가적인 검사나 가족 상담도 필요한데 상담은 커녕 일반적인 설명을 할 여유도 없다. 현재 건보 상에서 초진·재진 외에 특별한 상황의 환자들에 대한 진료비를 따로 책정했으면 좋겠다. 병원 경영자들도 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대학병원인데도 감기환자들이 많은데 이들에 대한 본인부담금을 상향 조절해서 제대로 된 의료전달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국가 재정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회재단이나 사회복지재단에서 의료비지원이나 진단지원 사업이 활성화돼야 한다.
 넷째, 질환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골다공증은 부갑상선호르몬 관련 질환이지만 골형성부전증은 제I형 콜라겐의 부전에 기인한다.
 증상은 같을 수 있지만 원인이 다르고 치료도 다르다.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기 때문에 의사들도 이를 위해 별도로 공부할 시간을 내야 한다. 의사들이 희귀난치성질환을 기피하게 되는 이유인데 의사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 연구를 지원해야만 의사들이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새로운 치료법도 나온다.
 연구재단을 통해 연구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겠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