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적 투약 불인정
유지요법, 출혈 이벤트 줄여
결국 보험재정 증가 보완 가능

유전자재조합제제 사용 차별
1983년 이후 출생자만 보험 적용
"의학적 근거 없는 제한은 인권 침해"


■ 유지요법 인정

 지난 12월 혈우재단 후원으로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가 발행한 진료매뉴얼을 보면 "유지요법 환자"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어 있다.

8, 9 인자 활성도가 1% 미만인 중증 환자를 대상으로 주기적인 응고인자 주입을 통해 1% 이상으로 농도를 유지시키기 위한 용량 및 주입 간격을 명시하고 있다.

 반면 심사기준은 "예방적 투약"을 인정하지 않는다. 국내 A, B형 혈우병 환자 중 중증 환자 비율은 66%, 58%이다.

그러나 중증 환자이든 인자활성도 3~30%인 경증 환자이든 심사기준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현재 8인자 제제의 경우 10회, 9인자의 경우 7회 처방 후에는 원내처방을 원칙으로 한다. 경증 환자는 남용의 우려가, 중증 환자는 불필요한 내원 횟수 증가가 우려된다. 여기서 남용이란 필요 이상 약물을 집에 비치해 두는 것을 의미한다.

 성균관의대 정철원 교수(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는 "유지요법을 실시할 경우 필요 약물량이 많아져 재정부담이 생기겠지만, 반면 출혈 이벤트를 줄임으로써 재정 보완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WFH 가이드라인도 1% 이상 환자의 경우 자연출혈이 드물고 관절기능 유지도 낫다며 예방요법을 지지하고 있다.
 한편 경희의대 윤휘중 교수는 "심평원 평가지침 마련시 혈액학회, 수혈학회 등이 참여하기는 했으나 혈우병 전문가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는 못했다"며 "이후라도 미비점을 확인했다면 빠른 재조정이 필요하나 현실은 변화가 너무 느리다"고 지적했다.

■ 감염 위험

 한국코헴회가 발행하는 월간잡지 "정보마당" 3월호에는 간암예방을 위한 정보가 담겨있다. 혈우병과 간암, 얼핏 봐서 "무슨 상관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혈우재단은 2002년부터 만성 간염 환자에 대한 무료진료를 실시하고 있다.

 현재 혈우병 등록 환자 1975명중 649명(32.9%)이 C형간염바이러스에 노출된 상태이다. 국내 C형간염 유병률이 1% 수준인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국내 혈우병 치료의 역사는 녹십자가 제조한 항혈우병인자 AHF(8인자)로 19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기술로 제조된 혈장제제는 혈액 유래 바이러스의 감염위험을 제어하기 어려웠다.

 2000년부터 SD공법(바이러스의 지질막을 용해시키는 방법)의 혈장제제가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되어왔던 B, C형간염바이러스, 에이즈바이러스의 감염으로부터 안전해졌다.

 90년대 초반 이후 혈장제제로 인한 감염사례는 보고되고 있지 않지만 전문가들은 "아직도 감염위험에서 안전하지는 않다"고 입을 모은다. SD공법은 지질성 바이러스만 제거하므로 A형간염바이러스, 파보바이러스는 제조과정상 제거가 안 된다. 그러므로 혈장제제 주입 환자는 예방이 가능한 A형간염 백신 접종이 요구된다.

 새로운 감염위험에 노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C형간염바이러스 역시 1991년에야 공혈자의 감염 선별법으로 항체검사가 도입되었기에 감염자수가 증가한 것이다.

 반면 1989년 등장한 유전자재조합제제는 플라즈미드 및 세균을 통해 응고인자를 포유류의 세포에 삽입하여 특정단백을 증식시켜 제조한다.

 혈액 내 기타 성분이 함유되지 않으니 면역반응 또는 감염위험이 최소화됐다.

 국내에는 2003년 출시됐으나 심평원은 유전자재조합제제의 급여 기준을 1983년 이후 출생자로 제한하고 있다. 과거 1989년에서 후향조정한 것으로 비교적 고가이기에 감염위험에 노출된 적이 없는 환자에게만 보험급여를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논리에 환우회는 "의학적 근거없는 제한기준은 인권침해"라며 정부에 제한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현재 바이엘과 녹십자는 유전자재조합제제 출시를 준비중이다. 정 교수는 "결국 사용약물은 유전자재조합제제로 대체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이견을 다는 전문가는 없다. 언젠가는 심사기준도 바뀌게 되겠지만 아직까지는 경제논리가 우선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임신전 유전상담 활성화 필요
임상유전학 전문의 국내 10명도 안돼
외국선 "비의사 전문상담사 인증제" 도입


 현행 모자보건법에 따르면 임산부나 배우자가 혈우병 환자일 경우 28주 이내에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허용한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은 배아 또는 태아를 대상으로 유전자검사를 할 수 있는 유전질환에 혈우병을 포함시키고 있다.

 이처럼 산전 유전자검사 및 생식조절은 허용하고 있으나 임신전 유전상담은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환자가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기에는 조금은 늦은 시점이다.

전문의도 거의 없다. 게다가 7월 8일부터 시행되는 개정안은 혈우병 등 치료제가 있는 유전학적 질환자의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

 아주의대 김현주 교수(아주대병원 의학유전학과)는 "보다 적극적인 대비를 위해서는 유전상담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임상유전학 전문의가 임상의와 더불어 유전상담을 통해 유전자 검사 결과를 환자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질환의 자연경과, 환자와 가족에 미치는 질병의 영향, 재발 위험도, 추가적 검사의 유용성, 생식 등 의사결정에 대한 종합적인 상담을 통해 환자는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게 된다.

미국과 일본은 각각 1253명, 500명의 임상유전학 전문의가 있다. 그만큼 활성화되어 있다는 말이다.

 한국의 경우 10명 미만의 임상유전학 전문의가 존재한다. 보험적용이 안되고 진료시간이 길어 돈이 안 되는 "비인기과"이기 때문이다. 인력난의 대안으로 김 교수는 공공의 제도를 통한 전문의 배출, 비 의사 전문유전상담사 인증제도 마련을 언급했다. 이미 선진국들은 비 의사 유전상담사 인증제를 도입하고 있다.

 한국희귀질환연맹 대표이기도 한 김 교수는 "21세기 의료는 첫째 예방 중심 의료, 둘째 맞춤의료, 셋째 통합의료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질환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면 효율적인 치료법이 없거나 장애를 초래하는 질환은 출산조절을 통해 예방할 수 있다. 이미 태어난 경우에는 조기진단으로 적절한 치료를 실시하여 장애 최소화를 시도할 수 있다. 혈우병 환자의 맞춤의료로서 김 교수 역시 중증도에 따른 급여기준 차별화를 언급한다.

 한편 그는 혈우병 환자에 비교적 흔하며 장애로 이어질 수 있는 관절출혈 등의 치료를 위해 혈액종양내과,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임상유전학과 등 여러 진료과가 협조하는 통합의료 시스템을 일부 병원에 구축하는 것을 미래의 비전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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