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만 하는 해부학 실습 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데…. 이젠 수준 높은 의사 양성의 밑거름이 되고 있는 "시신기증"에도 관심을 갖고 보다 성숙된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할 때다.

시신기증은 본인의 유언이나 유가족의 뜻에 따라 아무런 조건과 보상없이 해부학 교육과 연구를 위해 사후 몸을 내놓는 것. 이는 궁극적으로 의대생 교육과 전공의 수련, 임상 연구 등으로 이어져 훌륭한 의사를 양성하게 되고 국민건강으로 되돌아 온다.

그러나 몇몇 대학병원을 제외하고 시신기증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여서 좋은 의사 양성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특히 일부 의대의 경우 시신기증이 1년에 3~4구에 불과, 결국 의대간 해부학 실습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초래케 되는 등 의학교육의 질 향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백두진 한양의대 해부학·세포생물학교실 주임교수는 "국내 의과대학 해부학실습시 각대학별 사체 1구당 실습인원은 6명에서 25명으로 매우 편차가 크다"며, 이 분야에 대한 투자가 미비한 일부 의대에서는 해부학 실습을 어깨넘어 구경만 하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밝혔다.

또한 시신기증자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의대의 예산 부족으로 시설이 미비, 시신기증이 있다고 해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 진 가톨릭의대 해부학교실 교수는 시신기증자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사후 장기를 활용할 수 있도록 사체를 조직별로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조직은행 설립의 토대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신"이 교육·연구뿐만 아니라 이제는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가 될 수 있도록 하자는 뜻이며, 미국은 이미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부연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시신의 장기 활용이 거의 행해지고 있지 않는다는 점에 미뤄볼 때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시체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과 시행 규칙의 개선도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시체의 부분 적출 승낙과 허가 조항, 사망 후 24시간 이내에 방부 처리 등을 못하도록 한 현재의 규정 때문에 곧바로 조치를 할 수 없으므로 부패·손상 등으로 인해 장기를 활용할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시신은 장례 절차를 모두 마친후 기증되고 있어 철저한 관리가 안되면 연구용으로도 활용되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부패하기도 한다.

가톨릭의대 응용해부연구소 홍병욱씨는 "시신기증 활성화는 의학교육의 질·양적 발전과 임상연구자료의 활용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하고 "시신기증은 두번 죽는다는 인식이 아닌 의료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보람을 갖고 모두가 참여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덧붙여 의료인이 앞장서 기증에 참여하고 이 운동을 확산시켜 나가도록 하자고 당부했다.

생명나눔실천회 노금실 상담원은 "이곳에 접수된 시신기증 신청자는 지난해 1200례였으나 실제 시신기증자는 5건에 불과했다.

이는 시신기증 신청자가 모두 사망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도 매우 미미한 수치다.

이는 시신기증 신청자의 숭고한 뜻이 유가족들의 인식 부족 등으로 인해 기증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사례로 볼 수 있다"며, 시신 기증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유가족의 인식 부족을 꼽았다.

또 장묘 문화를 바꾸기 위해 화장 문화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시신기증 신청자에 대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해 시신기증의 중요성을 인지시키면서 수혜자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이들에 대한 작은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는 것이 시신기증 활성화의 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 본부 이희종 부장은 시신기증 신청은 90년대 700여건에서 지난해 1만여건으로 크게 증가하고 있어 점차 활성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의대별 기증 편차가 커 문제가 되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의 예산 지원과 제도보완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시신기증은 의학발전을 통해 자손들의 건강을 돌보게 한다는 점에서 마지막 가는 길이아닌 영원한 삶의 시작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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