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배제한 무분별 사용 태반주사 파문 재현 우려

 석면 함유 화장품 및 의약품 파동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관련 업체들이 공개되고 이를 사용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거세지면서 해당 업체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 식약청에 대한 집단 소송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이번 파문은 특히 미용 관련 산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집중 포화를 맞은 태반주사에 이어 지난달 줄기세포 화장품의 수입·제조를 금지하는 내용의 화장품 원료지정 규정 개정이 입법예고 된데다 이번 석면 파동까지 일어나면서 그야말로 집중사격을 받은 셈이기 때문이다.
 미용 관련 의료시장 및 제약업계도 후폭풍을 맞고 있다.
 또 석면 파우더 및 석면 함유 의약품 파동으로 야기된 소비자 손해배상 움직임이 먼저 내홍을 겪은 태반주사제로까지 확대될 조짐으로 관련 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효과 없는 주사제 유통 불신 조장

 태반주사에 대한 끊임없는 지적이 제기되자 식약청은 태반주사제의 유용성 검증을 위한 "태반주사제 임상 재평가"를 실시, 시중에 유통 중인 28개 제품 중 11개 제품에 "효과가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

문제의 제품은 유용성을 입증하지 못 한 4개사, 자진 품목 허가를 취소한 6개사, 임상시험 결과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1개사 등의 제품이다. 해당 제품들은 곧 허가가 취소됐으며 유통 중인 제품에 대해서는 전량 회수·폐기 조치가 내려졌다.

 식약청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 국내에 도입된 태반제제에 대해 허가한 효능은 안면홍조, 피로, 심계항진 등을 포함한 갱년기 증상 개선이다.

그러나 2000년대 초부터 일부 의료기관에서 탈모, 성기능 개선, 피부노화 방지, 비만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만병통치약으로 입소문을 타며 수요가 증가, 결국 무분별한 사용이 도마 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식약청은 효과없는 제제는 시장에서 퇴출시킨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줬으나 이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다. 의료계는 태반주사 전체에 걸친 불신 풍조가 우려된다는 입장이다.

28개 제품 중 11개 제품이 퇴출, 40%의 제품이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는 곧 60%의 제품은 효과가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이기철 사업이사는 "태반주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현대의학에서 질병치료에 쓰이기 시작한 것도 70년 이상이 지났다"며 "불법유통 등으로 충분한 검증이 안 된 일부 제품들이 유통된 것이 문제지 태반주사의 효과 자체를 부정하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압구정 오라클피부과 박지윤 원장도 "비타민이 결핍된 사람에서 비타민 투여 시 확실한 효과가 있는 것처럼 태반주사도 폐경기 여성의 갱년기 증상 완화에서 임상적인 효과를 보이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젊은 여성들에서는 효과가 미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임상재평가에 따라 태반시장에서 퇴출명령을 받은 제약사들은 해당품목을 적법절차대로 수거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일부 업체는 현재 2주 투여의 허가 용법·용량 기준을 바탕으로 한 임상재평가 기간은 임상 현실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며 4~6주 용법으로 다시 한번 효용성을 입증해 재허가를 받겠다는 계획이다.

현행 식약청 태반주사제 국내 시판 허가 기준은 1981년 일본에서 실시한 임상시험 결과에 따른 것으로 2주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비급여 항목 의존 의료 구조도 문제

 태반주사 파문으로 잠시 시끄러웠지만 노화방지 의료시장의 규모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을 모양새다. 눈을 뜨면 새로운 시술들이 속속 등장,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최근 들어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시술이 "자가혈 피부 재생술"이다.

 일명 "피주사", "혈액주사", "PRP"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 시술은 혈액 내 PRP(platelet rich plasma)를 이용한 시술로 환자에게서 채취한 혈액으로부터 각종 성장인자가 함유된 혈소판을 활성화시킨 혈장인 PRP를 추출해 피부 병변에 주사하는 것이다.

 PRP는 1970년대 미국에서 악안면기형 교정을 위한 골 재생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처음 쓰였다.

이후 골이식, 임플란트 등의 시술에서 협착률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다가 상처치유 촉진, 염증, 재생, 화상, 궤양, 방사선 치료 후 피부질환 등에도 효과가 있다고 밝혀지면서 1990년대부터 미용 분야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PRP의 활용도가 높아진 데는 이를 분리해내는 장비의 역할도 크다. 과거에는 세포분리기 등을 통해서만 PRP를 얻을 수 있었지만 원심분리기가 등장하면서 분리가 용이해졌다.

개원가 시술 노하우는 "비밀"
 표준화된 치료법 마련 시급


 시술방법은 15cc~25cc 정도의 혈액을 채취해 원심분리기에 넣어 혈장과 적혈구로 분리, 혈소판을 다량 함유하고 있는 하단부의 혈장을 이용해 시술한다.

전용 채혈키트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채혈키트는 스위스에서 수입하는 "리젠"과 미국에서 수입하는 "마젤란"이 대표적이다.

키트의 원리가 간단해 일부 국내업체에서도 제조·판매하고 있으며 국내사 제품일 경우 비교적 단가가 낮다. 개원가에 따르면 자가혈 피부 재생술의 시술가격은 병원에 따라 다르지만 최하 100만원 이상으로 보통 200만원선이다.

대개 PRP 추출에 사용되는 ACR 채혈키트의 사용여부와 제조사에 따라서 가격 차이가 난다. 비싼 비용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지만 비용 대비 효과를 검증할만한 데이터도 없다는 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국내외 학술대회에서 발표되는 연구결과도 대조군 연구가 아닌 시술받은 환자들의 만족도나 개선정도를 발표한 것에 불과하다. PRP 시술은 직접 채혈해 성분을 추출한다는 점에서 감염관리, 단독요법보다 레이저, IPL 등과의 병합요법 시 효과가 극대화 된다는 점에서 시술자의 술기가 중요하다.

 그러나 개원가에서 직접적인 수익과 연관된 자신의 술기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불문율이다. 최근 들어 PRP 관련 연수강좌도 많이 열리고 있지만 전반적인 방법과 임상효과 등만을 밝힐 뿐 개인적인 노하우는 알려주지 않는다.

B산부인과 모 원장은 "PRP는 아직까지 충분한 경험이나 연구가 없어 시술자의 테크닉에 의해 효과가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있다"며 "때문에 개인의 고유한 기술이나 시술방법 등을 공개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PRP 시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병합요법의 선택과 후속처치로 국내 제조된 키트보다 수입된 키트가 혈장 농축 정도가 우수하지만 후속처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치료 효과를 상향평준화하기 위해서는 표준화된 치료법을 공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기철 이사는 "자가혈 피부재생술 효과에 대해 아직까지 충분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의학은 과학적인 학문이기 때문에 표준화된 방법이 구축되지 않아 결과가 들쑥날쑥하면 안 된다"며 "그러나 현재는 산부인과, 피부과, 가정의학과 등에서 각자 나름의 방법을 고수하고 있는데다 상업적인 아이템이라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어 효과검증이 어려운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일선 개원의들은 이 시술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하면서도 결국 효과는 시장이 말해줄 것이란 주장이다. 효과가 없다면 회전이 빠른 미용시장에서 곧 도태될 것이란 것.

그러나 시장에서 도태된다면 이를 시술한 의사나 업체들은 환자들에게 경제적인 손실을 주게 된 꼴이 된다. 비급여 항목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의료구조도 문제지만 의사들의 학자적인 자세도 요구된다.

 자가혈 피부재생술은 아직까지 감염의 문제나 효과에 대한 찬반 논란이 있다. 그러나 최근 피부미용 뿐 아니라 통증완화나 회음부 수술에까지 적용되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어 무분별한 확산으로 인한 제2의 태반주사 파문까지도 우려된다.

 한편 태반주사, 자가혈 피부이식 등의 미용치료는 의협 차원의 연수평점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대다수로 학계에서는 아직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신양식 연세의대 마취통증의학과 교수(전 의협 학술이사)는 "해당 교과 프로그램이 진료권 확보를 위한 의도가 보이고 참고문헌이 적거나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한 것이면 연수평점을 부여하지 않는다"며 "평점 부여 기준을 객관화, 개량화 할 수는 없고 교육위원회에서 결정하는 부분으로 과학적인 에비던스를 가장 중요하게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