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VD 치료전략 선택 하나 더 는 것

TIPS 연구로 주목받는
폴리필


 폴리필 개발에는 고려해야 할 점들이 많다. 약물 간 상호작용, 부작용 위험과 정제 크기의 부담, 약물 방출시간 조절 등 기술적 요인들의 해결을 전제로 하고 있다. 여러 약물 주성분을 하나의 알약으로 만들어 안전하고 편하게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겠냐는 의문들이 제기돼 왔던 것도 바로 이 때문.

폴리필 개발 배경

 서울대병원 심장내과 김효수 교수(대한심장학회 학술이사)는 폴리필 개발을 CVD 예방·치료동향 변화에 따른 당연한 귀결로 해석했다. 현재의 CVD 가이드라인은 과거와 비교해 크게 강화된 성격을 띠고 있다. 고혈압의 경우 과거 수축기혈압 150mmHg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140mmHg 역시 적절한 운동정도가 처방되는 수준이었다. 현재는 140/90mmHg에서 약물치료가 시작된다.

120~139/80~89mmHg는 고혈압 전단계로 불리며 CVD 예방을 위해 운동·식이 등 사전관리가 요구되고 있다.

 이같은 추세는 고혈당·이상지혈증 등 심혈관위험인자를 구성하는 여러 요인들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과거에 정상이었거나 낮은 수치에서 보다 빠르고 적극적인 조절로 CVD를 예방할 수 있었다는 과학적 검증들이 축적된 결과다.

 이렇다 보니 운동이나 식이 등으로 관리가 가능했던 범위까지 약물치료가 확대되는 동시에 한 사람이 여러개의 약물을 복용하는 변화가 발생했다. 요즘 임상현장에서는 항고혈압제에 스타틴, 아스피린을 병합해 처방받는 환자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폴리필 개발은 CVD 관리의 다른 변화를 형성하고 있는 심혈관계 위험인자 종합관리(Global CV Risk Management) 패러다임과도 맥을 같이 한다.

위험인자가 동시에 다발될 경우 CVD 위험증가가 단순 산술적 합산에 그치지 않고 배가된다는 과학적 검증에 근거한 것으로 위험인자 간 교차대화를 통한 동맥경화 악화의 시너지 효과가 원인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 경우 고혈당 환자에서 고혈압이나 이상지혈증 위험도까지 높아지는 만큼 보다 빠르고 적극적인 관리가 요구된다. 현재의 CVD 예방·치료는 전체 위험도를 고려해 개별인자보다는 여러 위험인자를 동시에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전략적 접근을 택하고 있다.

약물 증가에 따른 비용·순응도 문제

 이같은 트렌드의 변화는 한 환자가 CVD 예방을 목적으로 최대 5~6개까지 약물을 복용하는 다제요법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여기에는 낮은 순응도와 고가의 비용 등이 걸림돌로 제기된다. 전세계 CVD 사망자의 80%가 집중되는 개도국의 경우, 여러 약물에 소요되는 비용부담이 결국 순응도와 연결돼 질환관리의 최대 장애물이 되고 있다(Lancet 2006;368:679-686).

 처방약물에 대한 낮은 순응도는 북미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문제다. 이는 약물의 수가 늘어날수록 더 심해져 많은 경우에 치명적 결과를 야기한다(JAMA 2006;297:177-186).

 이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인식되는 것이 폴리필이다. 정제의 크기 등 여러 기술적 요인들이 우선적으로 해결돼야 하지만, 4~5개의 약물효과를 알약 하나 만 먹어도 얻을 수 있다면 순응도가 향상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또한 폴리필을 구성하는 여러 약물들은 이미 특허가 만료된 제네릭 제품들을 사용한다.

 "TIPS" 연구에 논평을 게재한 캐논 박사에 따르면, 현재 해당 폴리필을 구성하는 제네릭 약물들은 모두 합해 월 17달러에 불과하다.

기적의 신약?

 이론적으로만 따진다면 폴리필의 실현은 현재의 CVD 관리동향과 이에 따른 문제점을 일시에 해결할 수 있는 쾌거라 불릴 만도 하다. "TIPS" 연구의 발표에 세계언론이 다소의 흥분을 담아 보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폴리필에 따라 붙는 여러 가지 애칭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One-size-fits-most(하나로 대부분을 해결)", "Magic bullet(마법의 탄환)", "Dream come true(꿈의 실현)" 등에는 "기적의 신약"이라는 뉘앙스가 강하게 담겨 있다.

 폴리필 혜택에 대한 맹목적 지지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 알약 하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과도한 기대 또는 인식이 대중에게 잘못 전달될 수 있다. 기우일지도 모르겠으나, 폴리필의 성공적인 발매 시 보험재정 절감에 혈안이 돼 있는 보건당국이 다제요법 처방의 삭감기준을 폴리필 요법으로 삼아 의사들의 선택에 제한이 가해질 수도 있다.

맞춤치료와 상반…선택은 의사 몫

 폴리필은 또한 최근의 맞춤치료 트렌드와 상반된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CVD에서 맞춤치료는 위험인자가 몇개인지, 위험인자를 가지고 있는지, 스텐트 시술환자인지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목표치가 달라진다. 이는 약물투여의 강도가 달라짐을 의미한다. 또한 수술 등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에 따라 필요한 약물을 선택할 수 없거나 중도에 빼야 하는 사례도 발생한다.

 이렇게 개별환자에 대한 분석이 완료됐다 해도 적합한 치료선택을 찾는데는 일차약물의 선택 - 용량조절 - 병용약물의 선택 - 용량조절 등 여러 단계의 미세한 조절과정을 거친다.

김효수 교수는 이를 "파인튜닝(fine tuning)"이라 부르며, 선택과 결정은 전적으로 의사의 판단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폴리필은 이상의 튜닝과정을 배제한체 하나의 틀을 미리 정해 놓고 약물선택을 규정지어 놓은 "레디 메이드(ready made)" 요법이다. 김 교수는 섬세한 치료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선진국에서 의사들이 폴리필을 무턱대고 쓰기는 힘들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섬세한 치료 어려워

 폴리필의 목적을 그대로 임상에 적용하려면, 대상은 구성약물이 타깃으로 하는 위험인자를 모두 갖고 있거나 해당 약물들을 병용해 별도로 복용하고 있는 환자들이 돼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발현되지도 않은 위험인자를 치료하는 오버트리트먼트(overtreatment)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폴리필은 기본적으로 각 약물의 저용량을 담고 있다.

 폴리필의 목적을 만족시키는 위험인자 다발 환자에게 복용시킬 경우, 고용량이 필요함에도 저용량으로 치료받는 언터트리트먼트(undertreatment)의 사례까지 고려해야 한다.

 바로 이러한 변수들 때문에 의사의 "파인튜닝" 작업, 즉 맞춤치료가 필요한 것이다. 일차적으로 약물을 선택하고 용량을 조절하며 하나하나 첨가해 가는 과정에서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선택을 하게 되면, 이를 근거로 폴리필의 처방이 결정돼야 한다.

즉 환자분석과 조절을 거쳐 해당 위험인자의 포괄적인 치료가 요구된다면, 그리고 비용이 문제로 부각된다면 폴리필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김효수 교수는 폴리필이 마법의 탄환이라기 보다 CVD 치료전략에 하나의 선택이 더 추가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외국의 한 심장학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폴리필은 이미 존재한다. 운동을 통한 생활요법이 바로 그것이다"고 밝혔다.

 폴리필이 CVD 극복에 기여할 수 있는 성과임은 분명하지만, 이를 만병통치약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임상현장의 현실에 대한 무지의 소치다.


■폴리필 개념 등장에서 임상시험까지

2003년 6월
영국 울프슨예방의학연구소 닉 왈드와 말콤 로(Malcolm Law) 교수, "BMJ(2003;326:1419-1424)"에 발표한 "심혈관질환(CVD) 80% 이상 감소 위한 전략" 보고서에서 폴리필 개념 사용.

2004년 9월
"BMJ(2004;329:589)"에 "폴리필은 심장질환 예방판도를 변화시킬 수 없다" 제목의 논평 발표돼. 닉 왈드 교수의 폴리필 개념과 관련 임상적용 가능성과 안전성 및 비용효과에 대한 의문제기.

2005년 5월
"BMJ(2005;330:1035-1036, 1059-1063)"에 CVD 이차예방에 있어 다제요법 효과 확인한 연구결과 발표긽 영국 노팅햄대학 줄리아 히피슬리 콕스·캐롤 쿠프랜드 교수 "허혈성심질환 환자에서 스타틴·아스피린·베타차단제 3제요법이 모든 원인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 크게 줄였다(83%)" 발표.

2006년 8월
미 하버드의대의 토마스 가지아노(Thomas Gaziano) 교수팀긾 개도국에서 아스피린·칼슘길항제·ACE억제제·스타틴 다제요법 효과와 비용 조사결과, 고위험군 환자의 심혈관질환 사망위험 절반으로 줄여주고 비용효과적인 것으로 확인(Lancet 2006;368:679-686).

2006년 9월
세계심장학회의(WCC)에서 스타틴·ACE억제제·아스피린을 혼합한 폴리필이 오는 2009 또는 2010년에 스페인에서 발매될 것이라고 발렌틴 퍼스터(Valentin Fuster) 세계심장연맹(WHF) 회장이 발표.

2007년 1월
인도 "Dr. Reddy"s Laboratories", 아스피린·ACE억제제·심바스타틴·아테놀롤 혼합한 폴리필 임상시험 돌입했다고 언론보도.

2008년 9월
영국 자선단체 웰컴트러스트(The Welcome Trust)와 영국심장재단(BHF) 후원 과학자들이 스타틴, 아스피린, 항고혈압제를 혼합한 레드하트필(Red Heart Pill)에 대해 임상시험에 돌입한다고 영국 가디언지 보도.

2009년 3월
인도 "Cardila Pharmaceuticals"의 "폴리캡(Polycap)"에 대한 2상임상 결과 발표.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