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같은 기증 장기, 절차 때문에 못쓰게 되기도

뇌사자 판정·효율 분배·신속 처리 보완 시급

 국립장기이식센터(이하 KONOS)에 접수된 장기기증 희망등록자 현황을 보면 평소 30여건에 불과했던 장기기증 희망자 수가 추기경 선종일인 지난달 16일 평소의 2배 가량인 69건으로 늘더니 181건, 293건, 819건까지 급격한 상승세를 보였다.

그러나 819건을 정점으로 697건, 251건, 153건으로 줄어들고 있어 최요삼 선수의 장기기증 이후 보였던 반짝 열풍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작년 1월 초 권투시합을 마친 뒤 뇌사상태에 빠졌다가 끝내 의식을 찾지 못하고 숨진 최요삼 선수가 장기를 기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장기기증 의사를 밝힌 신청자가 평소의 3∼5배 수준으로 늘어난 바 있다. 그러나 "최요삼 효과"는 불과 두 달을 넘기지 못했다.

뇌사자 장기이식 스페인의 10분의 1

 현재 KONOS에 등록된 이식대기자는 고형장기대기자 1만709명, 각막·골수대기자 7355명으로 약 1만8000여 명이다. 장기 기증 희망자는 9만5271명으로 이식대기자 수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


 그러나 희망자는 단지 희망자일 뿐 실제 장기 이식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다. 2008년 KONOS에서 승인된 장기이식은 생체기증자 1590명, 뇌사기증자 256명으로 대부분 생체기증에 의존하고 있는 실태다.

뇌사자 장기기증을 통해 이식할 수 있는 장기는 고형장기만 7~8개. 각막, 뼈, 조직까지 포함하면 그 가치는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생체이식의 경우 신장이나 간엽 등 신체 일부를 한 사람에게 기증할 수 있지만 뇌사자 장기이식은 몇 사람에서 많게는 수십명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이다.

 2007년 기준 인구 1백만명당 뇌사 장기기증률은 미국 26.6명, 영국 13.2명, 스페인 34.3명, 프랑스 25.3명인 반면 우리나라는 3.1명에 불과하다. 이는 뇌사에 대한 인식 부족과 신체손상을 꺼리는 유교문화의 영향 등으로 기증이 활성화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뇌사자 장기기증률이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의 대기시간도 길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장기 이식 대기자의 평균 대기 시간은 신장 3년 6개월, 간의 경우 2년 10개월을 기다린 것으로 조사됐다. 또 2003년 703명, 2004년 783명, 2005년 770명, 2006년 860명, 2007년 989명의 환자들이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했다.

 1998년 125명, 1999년 162명에 달하던 뇌사 기증자는 2000년 KONOS 출범 이후 64명으로 급감했고 2002년에는 36명으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불법 장기매매를 근절하고 공정한 장기 분배를 실시하고자 설립된 KONOS가 공정하게 장기를 분배하는 목적은 달성했지만 잠재 뇌사자를 발굴해 전체 장기 기증의 파이를 키우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인센티브제도는 임시 방편 불과


 정부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2003년 잠재뇌사자를 발굴하는 병원에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인센티브제도는 한 명의 뇌사자로부터 얻은 두 개의 신장을 뇌사자 발굴 병원에 하나, 남은 하나는 HOPO(보건복지가족부로부터 지정받은 의료기관 내 뇌사자 장기관리센터)에 주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인센티브제도 시행 이후 2005년 91명이던 뇌사 기증자는 2006년 141명, 2007년 148명으로 증가했다. 큰 폭은 아니지만 기증자 증가라는 결과를 낳은 것.

 그러나 인센티브제도는 적지 않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대한이식학회 한덕종 이사장은 "인센티브제도를 시행하면서 장기이식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며 "장기 분배의 공정성을 위협하고, 효율적인 장기이식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센티브제도는 신-췌 동시 이식과 같은 다장기 이식에도 문제를 야기한다. 당뇨병과 신부전증을 동시에 갖고 있는 환자의 경우 신장과 췌장을 동시에 이식받아야 하는데 신장을 먼저 기증받아야 하는 현행 제도 때문에 환자의 상태가 나빠져도 속수무책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잠재뇌사자를 많이 확보할 수 있는 일부 대형병원이 장기를 독점할 수 있다는 문제점도 있다.

 한 이사장은 "시간이 지체돼 버려지는 장기가 발생하는 일은 막아야 할 것"이라며 "수요자가 발생하면 장기들을 바로 줄수 있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장기이식에 있어 인센티브제도를 시행하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뇌사판정 제도 불합리

 까다로운 뇌사 판정 기준도 문제로 지적된다. 무엇보다 의학적 원칙에 맞춰 공정하게 진행할 수 있는 법·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것.

 실제 현행법에 따라 일반병원에서 잠재뇌사자를 신고할 경우 뇌사판정에 필요한 시설, 장비, 인력을 갖춘 의료기관으로 환자를 이송해 전문의사와 진료의사의 2회에 걸친 뇌사소견 진단 이후 6인 이상 10인 이하의 뇌사판정위원회가 소집돼 최종적으로 뇌사판정을 내리게 되는데 주말이나 야간에는 위원회 소집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뇌사자의 상당 부분이 주말이나 야간에 발생한 교통사고 환자라는 점을 생각하면 제도의 불합리성이 더욱 드러난다. 실제 뇌사판정 절차에서 상당한 시간이 소요돼 기증장기가 이식에 부적합한 상태가 돼 폐기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계명대 동산의료원 연구용역결과보고서(책임연구자 조원현)에 의하면 2007년 5월부터 10월까지 동산의료원에 신고된 잠재뇌사자 47명 중 20%에 해당하는 9명이 과도한 시간지체로 상태가 나빠져 기증이 불가했으며 실제 장기기증이 이뤄진 사례는 23%인 11명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유족반대(12명)와 기준 요건 미달(15건)도 많았다. 현행법 상 환자가 생전에 장기기증 의사를 밝혔어도 유족 중 단 한사람이라도 이에 반대하면 장기기증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10년만에 법 개정 착수

 최근 한나라당 이애주 의원은 잠재뇌사자 신고의무제 도입과 장기구득기관의 설립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전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애주 의원은 "잠재뇌사자 신고 의무화로 뇌사자 수가 늘어나면 뇌사기증자 규모도 증가할 것"이라며 "장기구득기관을 설립하면 불필요한 시간지체를 최소화해 뇌사기증자의 장기가 보다 양호한 상태에서 이식될 수 있고 기증받은 장기가 버려지는 불상사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건복지가족부도 앞으로 가족 동의 절차를 없애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여의치 않을 경우 동의를 받아야 하는 가족을 두 명에서 한 명으로 줄이기로 했다. 뇌사 판정 절차도 간소화, 앞으로 전문의 진단만으로 판정하거나 위원회 구성을 간소화하는 쪽으로 바뀐다.

 복지부 손영래 공공의료과장은 "10년 전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 처음 제정될 당시엔 뇌사 남발을 우려해 엄격한 안전장치를 마련했으나 이제는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며 "각계 의견을 수렴해 5월 중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가을 정기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