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역할 과소평가 말라

의료의 공공성을 감안할 때 전 국민이 누구나 필요할 때 균등하게 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목표 아래 시작한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제도는 그 공과를 따지기 전에 의료의 문턱을 낮추어 삶의 질을 높였다는 데에 그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의 근본 취지를 살리면서 처음 도입시 낮은 경제수준에서 저렴한 수가를 통한 의료의 혜택을 주려 했던 과거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여 제도 개선을 통해 더욱 더 발전시켜 국민 건강에 근간이 될 수 있는 제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의료계가 일방적으로 매도되기보다 저렴한 수가를 통한 의료의 혜택이라는 현재의 건강보험제도가 유지된 데에는 의료계의 희생과 기여가 있었다는 점도 무시되어서는 안된다.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의료수가에 대한 의료계의 수가 인상은 20여년 동안 지속적으로있어 왔으나 건강보험료가 유일한 재정원이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른 의료 시혜 확대로 결국 국민과 의료계가 부담을 나누어 갖게 되었다.

새로이 상대가치(RBRVS) 도입으로 인하여 달라진 것은 없고 다만 이전과 같은 양의 보험재정을 각 직종·학회별로 나누는 배분 방식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의료계는 새로 도입된 제도의 적용과 이의 개선 등에 매달려 있으며 여전히 도입 초기의 혼란에 따른 군별 불균형 문제와 이의 조정 등 다루어야 할 문제가 많이 남아 있다.

즉 전체 의료 재정이 커지지 않는 한 상대가치 자체의 의의는 모든 의료 행위의 가치를 상대평가하여 줄을 세워 봤다는 정도일 것이다.


상대가치 적용의 문제점

진단검사의학과에서 다루고 있는 의료 행위(검사)의 상대가치 적용의 문제점과 향후 예상되는 문제점은 첫째, 상대가치 점수의 구성 요소인 전문의의 역할(인건비)이 너무 과소 평가되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 같이 기술의 발달로 검사 장비가 자동화되면서 마치 연탄 공장에서 석탄가루(검체)만 집어 넣으면 연탄(검사결과)이 찍혀 나오는 단순한 것으로 인식하여 검사 전문의의 역할이 폄하되고 있다.

하루에 이러한 자동화 장비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검사 결과를 개별 환자의 상태와 일일이 확인을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정확하고 정밀한 검사 결과 보고를 위해 통계 개념을 도입한 정도관리 기법을 기본으로 인력(의료기사), 장비 및 시약 등의 관리 및 문제 해결(분석전, 분석, 분석후 단계)의 노력이 투입된다.

둘째, 시약 재료비가 상대가치 안에 포함되어 있어 한 검사 항목에 다른 시약 또는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 같은 수가를 적용받는다는 것이다.

재료비를 별도로 하여 상대가치를 새로 정하는 방법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검사 시약에 대한 평가 및 이의 군별 분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현행 검사 종목의 분류가 과거의 틀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서 급격하게 발달하고있는 새로운 검사 방법을 수용하지 못하여 기존 항목에 억지로 준용해야 하거나 새로운 항목으로 신설되어도 기존 항목과의 형평성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요즈음 의료용구로 지정이 추진되고 있는 DNA chip의 경우 진단 검사를 목적으로 개발된 것이므로 기존의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를 하거나 기존의 진단 시약을 의료용구로 지정을 하고 이에 따른 관련 법규 등의 제반 사항을 정비하여야 할 사항이다.

넷째, 환자 진료를 하는 다른 진료과와 달리 장비 및 검사실 설비 등의 고정비 투자 부분이 크다는 특성이 있으나 이에 대한 구성비가 작고, 장비의 경우에도 다양한 가격의 장비를 이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를 평균 내어 장비 가격으로 설정하여 상대가치를 정하고 있다.

수입 또는 제작 장비들도 군별로 분류를 하고, 가격이 싼 장비를 이용하더라도 환자 진단에 유용한 결과를 제공할 수 있는지 여부는 검사실 신임 제도와 같이 전문가가 평가하는 시스템에서 평가하고 차등화하여 효율적인 재원 이용을 유도하여야 할 것이다.


심사기준·지침·삭감

심사기준·지침 및 삭감에 대하여 살펴보면 2000년 7월 보험자가 주관하던 심사업무가 제 3자인 건강보험 심사평가원 설립으로 많은 기대가 있었으나 역시 재정적인 부분의 뒷받침 없이는 합리적인 심사가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부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예를 보면 CBC 검사에는 RBC, WBC, Hct, Hb, Plt. 등의 검사가 포함되어 있으며, 검체가 주입되면 자동으로 상기 항목을 측정하여 보고한다.

이렇게 1회에 여러 항목이 측정되는 것은 이들이 혈액학 검사의 기본이며 상호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장비의 개발도 이러한 방향으로 된 것이다.

그러나 2003년 들어 어떤 기관은 RBC를 어떤 기관은 Plt.(혈소판) 청구액을 삭감하고 있다.

CBC 상대가치 산정은 보통의 혈액학 장비가 위와 같이 작동되고 있음을 전제로 하여 심평원과 약속된 내용이지 개별 소항목을 따로 산정하여 합한 것이 아니므로 적절하지 못하다.

또 다른 예는 당뇨 환자에서 1~2개월마다 환자가 내원하여 그 간의 혈당 변화 추이를 볼 수 있는 HbA1c의 삭감 예이다.

이전까지는 임상의의 선호도에 따라 외래 내원시에 검사 의뢰를 하는 항목이며 특별히청구 삭감이 없었으나, 어느 날부터 삭감이 되어 문의전화를 해보면 적혈구의 life span이 120일 정도이므로 3개월에 한 번씩 검사를 해야 하는 것으로 심사기준을 바꾸었기 때문에 1개월 간격이나 2개월 간격으로 검사를 한 횟수는 청구에서 삭감을 한다는 내용이다.

적혈구의 life span이 120일인 것은 맞는 내용이나 우리 몸의 모든 적혈구가 같은 나이의 적혈구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HbA1c는 검사 대상의 6~8주 혈당 변화를 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최근 들어 일어나는 이러한 삭감 예는 아무리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해도 의료 재정 절감을 위한 무조건적인 삭감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위와 같이 최근의 삭감예 외에도 심사의 문제점은 결과를 전제로 한 삭감이다.

예를 들어 혈액암이 의심되어 골수천자를 실시하여 골수내의 조혈세포의 상태를 관찰한다.

이 때 형태(morphology)상으로 그 근원을 파악하기 힘든 세포가 관찰될 경우 치료 방침을 정하기 위해 이들 세포 표면에 있는 세포표지자 검사를 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환자가 ALL로 진단을 하게 되면 AML 감별진단을 위해 사용된 세포표지자 검사의 청구는 삭감되게 된다.

감별 진단이 필요해서 한 검사를 결론적으로 A가 나왔으니 B에 대한 검사 청구는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수혈에 필요한 혈액에 관한 검사의 경우에도 환자의 수혈에 필요한 혈액을 찾기 위하여는 단순히 ABO 혈액형이 일치한다고 해서 출고가 되지 않는다.

환자의 검체와 수혈용 혈액을 섞어 반응을 보는 교차시험은 ABO 외에 환자 몸에 들어가 용혈을 일으켜 수혈부작용을 유발하는 다른 항원들을 보기 위한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1pint의 혈액을 찾기 위해 여러 사람이 4~50pint의 혈액을 검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환자가 1pint를 수혈받으면 나머지 혈액에 시행했던 검사료는 청구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환자 상태가 좋아져서 수혈 취소가 되면 그나마도 청구하지 못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전문가 군을 믿지 못하고 수많은 의료 행위를 통제하려 하게 되면 의료의 질과 전문성에 손상을 입히게 되고 이는 환자의 손실로 돌아가며 이에 들어가는 의료분야 행정관리비용은 급증하게 될 것이다.


결 론

서로의 신뢰하에 일을 도모하고 만일, 심사기준 및 지침에 큰 문제가 있어 변경이 필요할 경우 해당 전문군과 토의하여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야만 심사평가원의 설립의의인 객관성, 전문성, 공정성을 살릴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의료의 발전과 재정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의료계도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여 전체를 매도할 수 있는 소수의 의료인에 대해서는 자정노력을 하여 환자 중심의 의료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이 두서없이 상대가치제도와 심사기준·지침 및 삭감예 등에 대해 기술하여 보았다.
 
앞으로도 어떠한 새로운 의료제도가 도입될지는 모르겠으나 너무 급진적으로 진행되어 또 다른 문제점이 야기되면 이는 국가적으로 큰 낭비가 될 것이다.

또한 다른 환경에서 운영되는 제도를 토양이 다른 우리나라에 일방적으로 도입을 하기전에 이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simulation을 거쳐 우리만의 특성이 있는 좋은 의료 제도로 만들어 갔으면 한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