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규제 "혹떼려다 혹붙여"

핵의학 의료행위를 정의하고 적정한 수가를 급여하려면, 현재의 제도에서 우선 진료행위를 정의하고, 진료행위의 상대가치를 정한 후, 진료행위가 적절하게 이루어졌는지 평가하는 세 단계가 적절히 이루어져야 한다.

이 중 핵의학 진료행위가 적절히 이루어졌는지는 원래 전문가평가(peer review)에 의하여야 하나,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관주도성을 반영하여 현재로는 심사평가원의 심사기준으로 획일화 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핵의학 분야 심사기준의 수립과 적용의 과거와 현재, 현실과 바람직한 모습 그리고 전문가 의견과 관리자의 관점을 설명하고 나아갈 방향을 짚어보려 한다.
 
핵의학 진료의 심사기준을 수립할 때 두 가지 관점을 조화하게 된다.

진료일반에 통용되는 기준과 각 환자의 특수성 즉 진료의 고유성이다.

진료일반에 통용되는 기준이라 함은 예를 들어 관상동맥질환자는 먼저 병력과 진찰로 선별하고 비침습적 검사를 한 후 침습적이지만 확정적인 검사와 아울러 관상동맥 성형술이나 스텐트 시술을 시행한다는 것과 같은 진단과 치료 재활의 큰 흐름을 말한다.

이런 통용기준에 검사 수가 기준을 함께 적용하면 값싼 검사를 먼저하고 나중에 비싼 검사를 하며, 값싼 시술을 먼저하고 비싼 시술을 나중에 하는게 당연해 보인다.

반면에 환자를 돌볼 때 실제 임상에서는 같은 범주의 질병이라도 환자마다 다르므로 진단과 치료의 전 과정이 고유하다는 특이성을 지닌다.

전문가로서 의사는 이런 특이성에 최선의 대책을 세워 훈련한 결과로 고도의 전문성으로 대처한다.

앞에 예로 든 관동맥질환 환자의 경우에 특정 검사 또는 치료방법의 단순한 수가보다는 그 검사의 성능, 놓치거나 잘못 짚었을 때의 의료비용, 대안 검사의 위험부담, 비용 등에 의해 결정되는 비용 총합에 의해 결정된다.

전문 분야인 핵의학 진료에 대하여 이런 합리적 증거를 바탕으로 판단할 때, 관동맥질환이 의심되는 환자의 85%는 값싼 운동부하심전도나 부하심초음파를 첫 검사로 수행하는 것보다 부하 심근 SPECT를 첫 검사로 수행하는 것이 유리하다.

각 환자에게도 좋을 뿐 아니라 의료자원의 분배효율성과 자원 사용에 따르는 삶의 질 향상의 측면(Quality-adjusted life year/Cost)에서도 훨씬 유리하다.

이런 증거에 따르자면 즉 관동맥질환이 의심되는 환자에서 운동부하심전도보다 훨씬 비싼 검사인 심근 SPECT는 운동부하심전도를 하지 않고 바로 시행하였을 때, 경직된 심사기준에 따라 삭감하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권장하여야 한다.

이런 합리적인 증거가 심사기준에 포함되어 있는가?

현행 요양급여체계에서 일종의 노하우로 심사평가원에서 축적하여 지니고 있는 핵의학분야의 심사기준은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가?

전문적인 입장에서 볼 때 이 심사기준은 비전문가가 일반원칙을 강조하여 만든 경향이 많다.

심사평가원은 지난 24년간 보험급여 청구에 첨부된 의료행위 설명 정보를 축적한 자료를 바탕으로 심사기준을 수립하였고, 사안별 특이성이 두드러진 경우는 학회에 의견 조회하거나 비상근 심사위원을 동원한 회의(비록 1년에 1번 3시간 짜리 회의이지만)를 통하여 합리성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이 심사기준은 아무런 검토, 감시, 재확립 체계가 받쳐주지 못하여 이 행위를 수행할 신규배출 의사와 전문의의 전문성에 필적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신규배출 의료인력은 우리 사회의 축적된 자원과 개인의 노력을 바탕으로 상향 표준화된 교육에 의해 산출되었으며 이 교육을 바탕으로 진료행위를 하고 있으므로 수년, 심지어 십수년된 심사관행으로 문서화한 심사기준이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증거기반의료(evidence-based medicine)를 시행하도록 수련 받은 의사들의 개별적 진료행위보다도 심사평가원이 지닌 실용적 기준이 총비용을 염두에 둔 비용효과 측면에서도 우월하다고 볼 수 없다.

필자가 비상근심사위원으로 쟁점이 된 개개의 진료 사례를 상세 평가한 경험에 의하면진료사례의 부적절성이 나타나는 경우보다 심사기준의 불합리함이 판명되는 경우가 잦았다.

관리체계하의 보험 심사기준이 의료 총비용을 줄이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음에도 오히려 부적절한 진료행위를 장려하는 기준을 적용하거나 총비용을 상승하게 하는 역설적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핵의학 진료는 일반 의료에 비하여 첨단기술을 사용하고 특별한 적응증을 지니고 있어서 그러한가?

아니다.

위에 예로 든 관동맥질환 진단의 예는 보편적인 질환의 진단 보기이며, 환자의 진료결과(outcome)를 감안한 의료기술평가(technology assessment)의 보편적 본보기이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결론은, 일반진료에서도 심사평가원의 심사노력이 오히려 총비용을 증가시키며, 의료의 질을 하향평준화하고, 국민·환자의 만족도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의심이다.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하여 복지부와 심사평가원은 의료계, 핵의학진료의 경우에는 핵의학전문의의 전문가평가(peer review) 체계를 기획하여야 한다.

다행히 의사협회에서는 상대가치 개정위원회를 통하여 심사기준에 대한 전문가평가 체계를 수립하는데 적극 나서겠다고 제안하였다.

심사평가원이 전문가의 전문적 노하우를 활용할 경우 의료의 질을 높여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한다는 대의명분을 얻게 되고 동시에 의료총비용을 줄일 수 있다.
 
심사평가원이 우선 할 일은 심사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공개한 기준은 재확립절차를 밟도록 체계화하여야 하고 적절하게 수립한 기준은 적절하게 적용하여야 한다.

진료적정성 사유제출요구·삭감부당경고로 이어지는 현행 심사기준 적용방식은 핵의학분야의 전문가의 입장에서 볼 때 행정력 낭비이고 자체 유발한 엄청난 비용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심사기준을 적용함에 따라 2000년 서울대병원의 부당삭감액이 연간 200억에 달한다는 것은 이런 불합리를 나타낸다.

교과서적 진료를 도모하는 국립 서울대병원은 부당삭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적정진료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심사평가원은 의료계와 학계에 위탁하여 비용효과성능을 높일 수 있는 적정진료를 정의하는 연구를 수행하여야 한다.

이 연구과제는 재정유발효과가 큰 진료행위를 우선적으로 대상으로 하여야 하고 임상역학자들과 의학전문가가 공동으로 잘 기획한 적정기간의 연구에 의하여 결론을 내리도록 하여야 한다.

이 연구결과가 제시되기 전에는 전문가의견을 바탕으로 진료행위를 평가하기 바란다.
 
전문가로부터 도출한 의견일지라도 배타적으로 문서화한 기준으로 바꾸어서 현재와 같이 심사평가원이 부당삭감용으로 휘두르고 있는 한 비용효과면에서 탁월한 적정진료는 어렵다.

의료의 특이성으로 보아 배타적 문서를 기준으로 한 심사는 비전문가에 의한 전문가평가라는 취약점을 벗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상태에서 적정진료여부를 판단하기 위하여 전문가의견을 의뢰하는 경우 들어갈 비용보다 심사에 의하여 발생하는 비용이 큰 경우는 심지어 심사를 중단하여야 한다.

전문가의견을 획득하기 위한 비용 자체가 큰 경우는 심지어 현행 진료관행을 표준으로 삼는 것이 좋다.

진료행위에 급격한 변동이 일어나는 경우 제한적으로 조사하면 된다.

관리자의 관점에서 보아도 정부와 심사평가원의 목표가 단기 의료총비용 상승을 막는 것이라면 의료외적 요인에 초점을 두는 것이 좋다.

수많은 민간요법, 보양제, 사이비의료에 들어가는 국민총생산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수행할 일이다.

약사의 의료행위는 대표적인 사이비의료에 해당한다.

잘못된 의료관행을 정의하고 국민 계몽과 홍보의 체계를 수립할 일이다.

고 이주일씨의 헌신으로 시작한 금연 운동은 최근에 정부가 수행한 사업 중에 가장 훌륭하며 동시에 국민의 총 의료비를 줄이는 좋은 시도였다.

방송의 오락 프로그램에 나타난 잘못된 의료 상식을 바로 잡는 체계를 만드는 일도 추진하여 봄직하다.

전문가로서 의사 또는 핵의학전문의를 훈련하는데 들어간 사회적 기회비용이 아깝다면이들의 전문성을 사용하라. 의사협회는 자발적으로 전문가 조언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미시적 진료비 심사는 특히 교육병원의 경우 불필요하다.

오히려 핵의학전문의가 담당하지 못한 따라서 의료의 질이 떨어지는 진료가 행해지는 것을 계도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좋다.

심사기준은 전문가평가에 준할 정도로 유연하고, 합리적이며, 발전가능한 상태로 유지할 체계를 만들라.

이 체계를 가동하여 비용효과성능에 대한 증거토대 의료가 수행되도록 하라.

우리나라에는 이미 의료의 질을 높이고 의료총비용을 절감하는 작업을 수행할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다.

우리사회가 가진 이 훌륭한 인적 인프라가 바로 고도로 훈련된 의사들이며 핵의학분야에서는 핵의학전문의이다.

대한핵의학회는 우리가 가진 전문성을 바탕으로 공익을 위하여 집합적으로 기여할 준비가 되어 있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