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처방·반작용약 병용 예방 위한 약물 복용력 관리 필요

 일산에 사는 권승복(83)씨는 저녁식사 후 서랍장을 뒤지고 있다. 그가 꺼낸 것은 커다란 비닐봉투. 안에는 당뇨병과 심질환 환자인 그가 2개월 동안 복용할 약봉투들이 뒤섞여 있다. 1회분 약제 가짓수만 해도 6~7개. 과연 그가 2개월 동안 아침, 점심, 저녁에 복용할 약을 제대로 구분하며 복용할 수 있을까?

 2007 건강보험통계연보를 보면 노인 환자의 비율은 전체의 26%이다. 한편 65세 이상 노인환자 80명을 대상으로 한 국내 연구보고에 따르면 평균 복용약물수는 7개였고, 최고 27개를 복용하는 환자도 있었다. 또한 자신이 복용하는 약물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환자가 50%에 달했다. 노인환자의 다약제복용(polypharmacy) 현황과 문제점을 보여주는 숫자들이다.

 대부분의 노인 환자들은 혈관질환, 관절염, 위장관장애 등 여러가지 질병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약제를 복용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캔자스대학병원 노화센터 레어드(Rosemary Laird) 교수에 따르면 약물부작용의 가장 큰 위험인자는 다약제복용으로 약물 수가 증가할수록 위험도도 증가한다.

 다약제복용은 또한 약물 비순응도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이기도 하다. 울산의대 이종식 교수(서울아산병원 신경과)는 "실제 노인 환자들이 너무 많은 가짓수의 약물을 복용하다보면 환자 자신이 치료를 포기하고 있다가 병이 악화되어 내원하는 경우가 상당수"라고 말한다.

 분당서울대병원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을 통해 4제 이상 복용 환자의 처방현황을 살펴본 연구를 보면 처방비율이 높았던 아미트립틸린의 경우 203명의 처방 환자 중 6명만이 우울증상의 치료를 위해 사용됐고, 신경염 및 통증치료에 사용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병원약사회지 2005;22:104). 만일 이 환자가 우울증으로 정신과를 내원할 경우 중복처방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을까?

 한편 파킨슨병 치료중인 환자가 다른 병원을 내원해 치매증상을 호소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기존에 복용하던 파킨슨병약은 항콜린성약물, 치매약은 콜린성약물로 서로 반작용을 하게 되지만 의사와 환자는 이 상황을 모르게 된다. 이종식 교수에 따르면 이같은 경우가 드문 사례는 아니다.

 노인 환자는 처방약을 확인하고 기억하는 능력이 떨어지기에 잘못된 복약을 할 가능성이 높다. 약물과 한약의 병용으로 인한 합병증도 문제가 된다.

 이같은 무의도적인 약물오남용은 환자에게 쓸 데 없는 비용을 지출하게 한다. 그렇기에 다약제복용에 대한 모니터링은 환자 개인을 떠나 사회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날짜별 약물포장 환자 순응도 높여줘
전원시 꼼꼼한 의사소견서 작성 필요


캐나다의 경우 전문의는 진료 소견서를 구체적으로 작성하여 환자를 의뢰한 가정의에게 다시 보냄으로써 환자는 통합적인 관리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사진은 전문의가 가정의에게 보내는 소견서.

 노인 환자의 약물오남용 모니터링을 위해서는 병원 및 국가 차원의 통합적인 해결책 마련이 요구된다.

약사·간호사 기여도 높여야

 ◇병원= 먼저 초진 환자에 대한 약물복용력 확인이 필요하다. 의사 혼자 약물 모니터링을 진행하기는 어렵기에, 의사가 주요 역할을 하되 약사, 간호사 등 기타 전문인력이 기여할 수 있다.

 이들은 인터뷰를 통해 과거 복용력 및 약물관련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외래의 경우 노인환자에게 한 약국을 지정해 두고 주치의의 개념으로 약사를 이용하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효과적인 모니터링을 위해서는 약물목록을 만들 수 있도록 복용중인 모든 약물을 가져오도록 한다. 또한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이 목록은 내원시마다 업데이트해야 한다. 환자에게 그들이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능하다면 건강보조제 복용여부에 대해서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비타민이나 가벼운 진통제, 항알레르기약제 등의 경우 약이라고 생각을 안하고 가볍게 지나쳐 버리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와파린 복용 환자가 은행잎 추출물 또는 비타민E를 복용할 경우 출혈위험이 증가하는 등의 약물상호작용 위험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가족이 있는 경우라면, 환자의 기억에 의존하지 말고 가족들에게도 물어서 완전한 목록을 확보하도록 노력한다.

 그밖에 의사가 컴퓨터를 이용해 처방을 내리는 OCS(Order Communication System)에 임상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을 결합시켜 처방 오류를 감소시킬 수 있다.

동일 계열의 약물이나 같은 약을 중복처방시에 의료진에게 경고하는 시스템을 개발하여 활용할 경우 노인 환자가 여러 과에서 진료를 보더라도 한 의료기관 내에서는 같은 계열이나 같은 약의 중복처방을 감소시킬 수 있다.

 처방시 다약제처방을 지양하고자 하는 의사들의 노력도 필요하다. 위장보호제, 간장제, 노화방지제 등 노인 환자에 일반적으로 끼워주는 약물들의 경우 특히 사전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약물복용력 관리 시범사업

날짜·시간별 약물복용 체크가 가능한 포장 용기를 이용해 노인 환자의 약물복용 순응도를 높일 수 있다.

 ◇국가=국가의료보장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캐나다는 처방약 및 의료용구의 비용을 지원하는 정부기관이 Pharmanet을 운영하고 있다.

이 시스템을 통해 진료의는 환자의 약물복용력 전체를 열람하는 것이 가능하고, 캐나다 보건당국은 중복처방으로 인한 보험재정 낭비를 막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A라는 의사로부터 처방받은 약물이 다른 병원의 B라는 의사가 처방한 것과 중복되지 않는지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건복지가족부는 환자의 약물복용력 관리를 위해 약사의 역할을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중이다.

약국에서 조제시 기록하도록 하는 미국의 PDM(Pharmacy Data Management) 시스템을 모델링하는 시범사업(경기 고양시)이 올 상반기 중 실시될 계획이다.

 병원에서 약제를 처방받은 환자가 약국을 방문해 조제시 약사가 이를 실시간으로 입력하도록 함으로써 심평원 자료를 토대로 환자의 약물복용력 조회가 가능토록 하는 시스템이다. 복지부 의약품정책과 오창현 사무관에 따르면 "시범사업 결과에 대한 평가과정을 거쳐 2010년 하반기에는 전국적인 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이다."

교육·캠페인 등 학회 노력 필요

 ◇기타= 학회는 약물남용으로 인한 부작용 사례에 대한 교육 및 컨트롤에 조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노인환자들이 처방약물 리스트를 항상 가지고 다니는 캠페인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 한편 약국에서 약제 포장시 달력 형태의 버블팩을 이용하여 복용여부를 체크하도록 하는 것도 효과적일 수 있다.

 가정의 제도가 정착된 북미, 유럽 등의 경우에는 가정의가 전문의에 의뢰하면, 전문의는 의사(가정의)가 볼 소견서를 꼼꼼히 준비하고, 자기 전문분야 약물만 처방하기에 중복처방으로 인한 약물오남용을 예방할 수 있다.

 영국은 다약제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에 대한 국가적 예방책으로 7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매년 약물복용 현황을 체크하도록 권고한다.

4제 이상 복용 환자는 6개월 단위로 모니터링한다. 개인정보 침해가 우려되는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스웨덴은 진료의가 환자 ID를 입력시 약물을 포함한 의료기록 열람이 가능하게 하고 있다. 선진국들이 약물오남용 예방을 위해 국가적으로 마련하고 있는 다양한 노력들을 엿볼 수 있다.

 이종식 교수는 "의사 외 인력을 활용하여 모니터링을 한다고 해도 환자당 5~10분 이내로 진료를 마쳐야 하는 한국의 의료환경에서는 한계가 있지만, Pharmanet과 같은 시스템과 버블팩은 우선적인 접근이 가능한 해결방법"이라고 말한다.

뒤늦게 우리 정부도 전국적인 약물복용현황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고 나선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도움말;
- 이종식 울산의대 교수·서울아산병원 신경과
- 오창현 보건복지가족부 의약품정책과 사무관
- 최창규 CMP Korea 개발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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