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약은 삼감부터 하고 본다?

별도 의료행위 불인정

간질 환자들 중 약 20%는 현재의 약물에 잘 반응하지 않는 난치성 간질이다.

이 중 일부는 간질수술의 대상이 되는데, 환자는 간질수술을 받기 위하여 어떤 검사들이 필요하며, 검사의 내용, 비용, 수술의 종류, 내용, 수술의 예후 및 비용에 대하여 먼저 알고 싶어한다.

즉, 간질수술전검사와 간질수술에 관하여 설명과 상담이 필요하며, 전문의 또는 전문간호사가 약 1시간 동안 설명 책자를 이용하여 시행해야 한다.

따라서, 최소한의 인건비는 인정이 되어야 하는데 최근 심평원에서는 별도의 의료행위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정내렸다. 급여 100분의 100 또는 비급여로 요청하였는데도 말이다.

대학병원의 경우 반나절에 5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 환자에게만 1시간을 추가로 배정할 수 있겠는가.

별도의 의료행위가 아니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도 무조건 인정할 수 없다는 식의 결정 태도는 의료환경을 더욱 열악하게 하고 낙후시킬 것이다.

▲개선책: 현행의 낮은 진찰료 하에서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열악한 의료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교육·상담료를 인정하는 것이다.

소요된 시간에 맞게 최소한의 인건비를 인정하여 주어야 중환자나 난치성 환자의 진료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정부 당국자는 이해하기 바란다.

이것은 환자를 위한 것이지 의사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미국의 경우는 진료시간에 따라서 차등 진료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1시간 이상도 진료와 상담이 가능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겨우 7분을 적정 진료시간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이것은 중환자나 복잡한 난치성 환자에게는 턱도 없이 부족한 진료시간이다.


고가약의 무조건적인 삭감

고가약을 사용하면 삭감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의사는 같은 효과를 보인다면저가약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는 것이 환자와 보험재정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필요한 경우에 고가약을 사용하여도 삭감한다면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불행이다.

환자는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므로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되고 의사는 적절한 약을 사용하지 못함으로써 정신적인 고통을 받을 뿐만 아니라 후에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면 고소를 당할 수 있을 것이다. 약물에 대한 부당삭감의 예를 들어본다.

1. IV gamma-globulin: 귈렝-바레 증후군(Guillain-Barre synd-rome)에서 호흡장애가 발생하여 호흡기를 착용하는 경우에만 급여가 인정된다. 하지만 이 질환이 호흡을 못할 정도로 진행하면 이미 회복이 매우 늦어지고 후유증이 많이 남게 된다.

반면 호흡장애가 오기전에 사용하면 더 빨리 회복되고 후유증도 적게 된다.

외국에서는 병세가 진행될 경우 호흡장애가 오기 전에 투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심평원에서만 투여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환자에게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치료를 하지 못하게 하여 심각한 후유증으로 평생 장애인으로 살거나 사망에 이르게 하는 규정을 어떻게 시행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2. 항우울제의 사용: 뇌졸중, 치매, 간질 등 뇌의 기질적인 질환에는 우울증이 병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와 같은 기질적인 우울증에는 부작용이 적은 신항우울제의 투여가 적절하다.

왜냐하면 과거의 항우울제는 간질발작을 유발할 수 있고, 뇌졸중이나 퇴행성 뇌질환의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평원에서는 신항우울제를 2달 이상 사용하려면 무조건 정신과에서 진료와 투약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이는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더욱 불편하게 하고, 진찰료를 2중으로 지출하게 하며, 특히 뇌의 기질적인 질환에 전문성이 적은 정신과에서 단독으로 투여하게 되면 원인 뇌질환의 치료가 어려워진다.

당연히 신경과에서 같이 투여할 수 있어야 한다.

우울증이 계속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정신과의 협진이나 우울증 척도검사에서 2달 후에도 우울증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 신항우울제를 계속 투여할 수 있도록하여야 한다.

3. 뇌염의 약물치료 : Acyclovir는 Herpes simplex 뇌염의 유일한 치료제이다.

이약은 정맥으로 주사하게 되어 있고, 10~14일 동안 투여하게 되어 있는데, 10일만 투여하면 불완전한 치료가 되거나 재발률이 높은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이 뇌염은 치료가 늦어지거나 불완전하게 치료되면 심각한 후유증이 남거나 사망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약값이 비싸다는 이유로 10일 이후에 투여된 약에 대하여는 삭감하고 있다.


뇌 CT의 부당한 삭감

급성 두통으로 응급실을 내원하는 경우가 많다. 두통의 원인으로는 긴장성 두통, 편두통에서부터 뇌출혈, 뇌종양, 뇌염, 뇌손상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매우 심한 두통을 호소하고 뇌압의 상승을 시사하는 구토 등의 증세가 동반되면 당연히 뇌 CT(computed tomography)를 촬영하여 뇌출혈 등의 기질적인 원인이 있는지 확인하여야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CT를 시행하여도 결과가 정상으로 나오면 삭감한다.

CT검사의 목적은 뇌에 기질적인 이상이 의심될 때 그 존재를 진단하기 위함이다.

당연히 결과는 정상 또는 비정상으로 나올 수 있다.

그런데, 결과가 정상으로 나오면 인정하지 않는다.

질병의 정확한 진단을 위하여 시행하는 검사는 정상으로도 나올 수 있다.

원인을 찾기 위하여 CT를 시행하는 것인데 결과가 비정상인 경우만 급여를 인정한다니세상에 이런 규정이 어디에 또 있는지 모르겠다.


고가약 사용의 절제

사실 최근에 개발되는 약들은 매우 고가이다. 예를 들면 비슷한 작용을 하는 약인데 하나는 20년 전에 개발된 것으로 한 알에 200원인데 비하여 다른 약은 몇 년 전에 개발된 것으로 한 알에 2,000원이다.

10배의 차이가 난다.

물론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의사가 약을 선택할 때는 ①효과 ②부작용 ③복용 방법의 편리성 ④비용 등을 고려해야 한다.

두 약 중 효과와 부작용에서 유의한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당연히 값이 싼 약을 선택하는 것이 원칙이다.

일반적으로 신약은 예전 약에 비하여 부작용이 적은 것이 특징이다.

물론 예전약을 투여하여 부작용이 발생한다면 값이 비싸더라도 신약을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부작용이란 모든 환자에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효과가 비슷하다면 값이 저렴한 약을 먼저 사용하여 본 후 신약의 사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한가지 병에 많은 종류의 약을 사용하는 것도 가급적 자제해야 하겠다.

물론 질환이 난치성인 경우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약이 필요하다.

하지만 투여하는 약의 수가 많을수록 약물 상호작용과 부작용이 많아지고 복용이 어려워지므로 치료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종합하여 가능하면 투여하는 약물의 수를 적게 하고, 약물을 선택할 때는 저렴한 것을먼저 선택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이렇게 되면 비싼 약값으로 나가는 보험재정을 많이 줄이게 되고, 이것을 저평가된 진찰료와 다른 의료행위의 수가를 정상화하는데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진찰, 즉, 자세한 문진과 이학적 검사가 환자의 치료에 가장 기본이 되고 가장 중요한 부분임을 다시 상기할 때가 되었다. 이것이 선진국형 진료이다.

정부는 위와 같이 저가약 사용을 장려하기 위하여는 각 진료과의 전문학회가 주관이 되어서 약물 사용지침서를 작성하여 배포-교육하도록 하고, 그 효과에 따라서 각 학회에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법을 개발하길 바란다.


맺 음 말

정부의 복지관계자들과 언론 관련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 친절하고 자상하게 설명을 잘 해주면서 진찰하면 환자는 의사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진다.

의사에 대한 신뢰도는 치료에서 가장 중요하다. 신뢰도가 높을수록 환자는 의사의 지시를 잘 따르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런데, 과거 TV 방송이나 신문은 검증 없이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면서 의사들을 매도하기 일쑤였다.

이는 성실하고 열심히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대부분 의사들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환자들의 의사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려서 치료를 방해하는 행위이다.

모든 국민에게 손해를 입히는 이러한 것은 자제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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