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문화·출산 이민초기 "3중고"

어린나이 준비없이 출산…정서적 문제 야기
음식 안맞아 저체중, 적응 후엔 과체중 다반사
의료지원 근거 될 보건실태 조사 이뤄져야

문화 충격으로 정신적 고통 겪어

 국제결혼 이주여성들이 한국에서 처음 직면하는 문제는 언어·이질적 생활환경 등에서 비롯되는 문화적 충격이다. 여기서 파생되는 부적응이나 다름의 표현이 차별을 유발하고, 이는 곧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스트레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산후우울증 역시 정신건강 문제와 결부된다. 어린 나이에 충분한 지식이나 준비 없이, 한국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채 이뤄지는 임신·출산은 문화적 스트레스와 결부돼 정서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산후조리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일방적 수용 요구와 이에 대한 부적응도 문제다. 보건당국은 현재 공공의료를 통해 결혼 이주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도움을 주고 있으나, 산모의 정신건강은 간과되고 있다.

 ◇사례 1
 입국한지 1년된 여성으로 출산한 지 3개월이 지났으나, 가족들의 배려가 없고 여전히 언어소통이 어려워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으며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사례 2
 입국 1년된 여성으로 임신 7개월째 태아가 여아(女兒)라는 것을 알고 시어머니의 태도가 변했다. 딸아이를 낳은지 8일 됐는데 이혼하고 본국으로 돌아가라고 한다(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 상담).
음식과 영양

 결혼 이주여성들의 건강검진 결과를 분석한 정혜원 이화의대 교수(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는 이들이 처음 겪는 건강상의 문제가 저체중이라고 지적했다. 아직은 단편적 연구들에 불과하지만, 상당수에서 여성들이 초기에 음식 부적응으로 저체중 위험에 처해 있다가 적응 후에는 과다체중·비만이 문제가 된다는 것.

 우리나라에서 최근 수십년 사이 식습관의 서구화가 진행되면서 만성질환 유병률도 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자국의 전통적 식습관을 유지해 오던 이들이 단기간에 서구식으로 전환할 경우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조사해봐야 할 부분이다.


지난해 11월 20일 대한의사협회와 한국건강관리협회가 인천 동구보건소에 마련한 결혼 이주여성 무료검진 행사에 참석한 여성이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며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임신과 출산

 "문화충격", "음식 부적응", "임신·출산" 등은 결혼 이주여성들이 한국생활 초기에 겪어야 하는 3중고다.

최근 결혼 이민여성들의 평균연령은 20대 초반 또는 이보다 낮은 반면, 남편은 만혼(晩婚)인 관계로 결혼 또는 한국이주 즉시 임신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들에게 임신 또는 성행위에 대한 결정권이 부여되지 않는 경우가 존재한다는 것.

이렇다 보니 한국생활에 아직 적응이 안돼 심신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생애 가장 중요한 신체적 변화를 겪게 된다.

 ◇사례 3
 입국한지 1년 2개월 됐으며, 첫 아이가 태어난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둘째를 임신하라고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이 강요했다. 효과적인 피임방법을 사용해야 할 것 같고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싶다고 밝혔다.

 ◇사례 4
 입국 1개월된 여성으로 남편이 강제적으로 성행위를 하며, 특히 폭력을 한 뒤에 성행위를 해서 온 몸에 멍이 들고 생식기도 아프다며 자살하고 싶을 정도라고 호소했다(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 상담).

경제 문제로 인한 의료접근 제한

 2005년 설동훈 교수의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결혼 이주여성들이 한국인을 택한데는 "경제력이 나은 한국에서의 삶(30%)", "본국가족 경제적 지원(8%)", "한국에서 취업하기 위해(4%)" 등 경제적 이유가 대부분 작용했다.

 그런데 같은 연구에서 취업 중이라고 밝힌 59%의 결혼 이주여성들에게 일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가족 생계유지(26%)", "생활비 보충(25%)", 자녀교육비 충당(17%)" 등 대부분이 경제적 문제를 언급했다.

 지난 1년간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했거나 중도에 치료를 포기한 경우는 18%였는데, 이유는 "치료비 문제"가 60.4%로 가장 높았다. "일 중단 시 수입감소"가 17.9%, "건강보험료 체납"이 4.2% 등 경제적 이유로 인한 병원치료 포기 사례는 총 82.5%에 달했다.

 건강보험 혜택을 못받고 있는 비율은 설 교수 연구에서 24%였다. 2007년 정혜원 교수 연구에서는 14%, 2008년 보건사회연구원 김혜련 박사의 연구에서 11%로 점차 줄고는 있지만 여전한 모습이다.

결혼 이주여성의 경우 일반적으로 건강보험 가입에 큰 문제가 없으나, 이혼이나 가출 시 또는 어떠한 사유로든 남편이 가입시키지 않을 경우 보험혜택을 받지 못해 보건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근로현장에서의 건강

 또 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근로현장에서 결혼 이주여성들의 건강이다. 설 교수 연구에서 이들의 직종은 음식점 종업원·주방장·가정부 등 서비스직(52%), 공장노동직(14%), 단순노무직(8.2%), 농어업(5.1%) 순이었다.

 평균 주당 노동시간은 47.2시간으로 2003년 내국인 여성(45.6시간)에 비해 길었다. 월 근로소득은 100~199만원이 49.1%, 100만원 미만도 39.8%에 달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결혼 이주여성들의 근로현장 노동조건과 안전문제를 심층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없다. 이들이 어떠한 형태로 고용되고 근로환경이 모성보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은 앞으로 관심을 쏟아야 할 부분이다.

 ◇사례 5
 한국에 온 지 얼마 안돼 취업을 했으나 추석을 전후해 과도한 업무를 하다 현장사고로 팔이 잘려 나가는 산업재해를 당했다(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 상담).

건강정보가 없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국제결혼 이주여성들에게 현재 또는 향후 건강문제가 발생할 소지는 물론 의료취약계층으로서 사회문제를 노출할 가능성이 높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우리사회에서 어머니들의 건강은 곧 가정의 건강과 직결된다. 이들의 건강문제와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의 폭증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관심과 정부차원의 지원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혹자는 단편적인 데이터에 근거한 추측만으로 무작정 지원책을 펴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할지 모른다. 맞는 말이다.

 현재 우리사회와 정부의 결혼 이주여성 또는 다문화가정에 대한 보건·의료지원 사업들이 이같은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가장 문제되는 것은 정책의 근간이 될 결혼 이주여성의 보건실태에 관한 대표적 근거자료가 아직 없다는 점이다.

 10만명 이상에 해당하는 우리 국민에 대한 건강정보가 부재하다. 현시점에서 이용 가능한 자료는 "국제결혼 이주여성 실태조사 및 보건·복지 지원 정책방안(2005년) 보고서, 설동훈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동아시아 결혼 이주여성의 코호트 구축 및 기반조사(2007년) 보고서, 정혜원 이화의대 산부인과학교실 교수", "국제결혼 이주여성 생식건강 실태조사(2008년) 중간보고, 김혜련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등에 불과했다. 여타 자료들은 모두 각 지역 단위에서 소규모 표본조사의 형태로 이뤄지는 단편적이고 산발적인 조사결과였다.

 그나마 검진을 통한 건강정보가 대규모로 반영된 것은 정혜원 교수의 연구가 유일하다. 통합적 연구체계의 확립이 아쉽다.

코호트 연구 필요

 현재 보건당국은 한국인유전체역학조사 사업을 통해 국민들의 환경·유전적 요인의 특성별로 질병발생 원인을 규명하고 있다. 국민의 특성을 고려해 가장 적합한 건강관리·유지와 질병예방 및 치료 대책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국제결혼 이주여성들을 한국사회의 국민으로 본다면 이들을 대표할 수 있는 유전체역학조사 역시 당연하다.

 현 단계에서 건보공단 자료가 이들의 건강실태에 대한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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