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외국인정책 "건강"은 쏙 빠져

다문화정책 여러부처서 각각 내
범국가적 공론화 아직 먼발치에


제1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 확정

 건국 이래 사실상 첫 번째 외국인정책이 확정됐다.

 외국인정책위원회(위원장 한승수 국무총리)는 지난 달 17일 향후 5년간 시행할 "제1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을 심의·확정했다.

 비록 앞서 시행된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에 따른 정부의 책무 이행에 불과하지만 정부가 이제라도 다문화사회와 가정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이다. 또 유엔이 정한 "세계 이주민의 날"인 12월 18일 하루 전에 발표한 점을 미루어 볼 때 적어도 시의성만큼은 칭찬 받을 만하다.

 이번에 확정된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은 외국인 처우에 대한 최초의 5개년 국가계획이다. 정부가 기치로 내건 비전은 "외국인과 함께 하는 세계 일류국가"로 ▲적극적인 개방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 ▲질 높은 사회통합 ▲질서있는 이민행정 구현 ▲외국인 인권옹호 등 4대 정책목표와 13대 중점과제를 확정했으며, 이를 위해 5년간 약 6127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법무부 김병철 사무관은 "2012년까지 총 51가지의 정책과제를 추진, 내년 사업에만 1007억 원이 소요될 예정"이라며 "그간 각 부처에서 개별적으로 추진해 온 외국인정책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종합적,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세계적으로 우수인재 유치와 사회통합정책이 강화되고 있고 국내적으로도 저출산·고령화 및 인구 순유출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체류 외국인 증가, 다문화사회로의 본격 진입 등 정책 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적극적인 외국인정책이 요구됐다고 덧붙였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한글 교육과 문화체험에 편중돼있다.


12개 부처가 발담궈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에는 예산을 심의하는 기획재정부를 포함해 총 12개 부처가 각자의 정책과제를 갖고 있다.

전체 15개 정부부처 중 통일부, 국방부, 환경부를 제외한 모든 부처가 이번 정책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이다.

다각적인 외국인정책이니 만큼 정부도 가능한 모든 부처가 참여하는 전 방위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란 긍정적인 해석도 가능하겠다.

 그러나 너도나도 뛰어든 정책이 실제 수요자들의 필요충분 요구를 고루 충족할지는 의문이다.

새 이슈인 다문화를 선점하려는 부처들의 경합으로 각 부처가 해야 할 본연의 사업보다 좋은 평가를 받을만한 사업을 공략해 결국 정책의 과밀과소 현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개최한 "다문화정책 10대 과제" 토론회에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홍기원 문화정책팀장은 "다문화정책에 대한 담론이 조금씩 확대돼 왔는데도 부처별 영역을 초월한 범국가적 차원에서의 공론화가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며 "문체부 역시 본질적인 문제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문화적 지원사업"과 같은 쉬운 사업 개발에 치중해 왔다"고 지적했다.

 지난 11월 대전에서 열린 다문화가족 사회통합지원 포럼에서도 대전발전연구원 박노동 책임연구원은 "각 부처마다 산발적으로 이뤄지는 정책이 연계되지 않아 사업이 중복되고 예산낭비와 비효율적인 전달체계로 인한 서비스 누수를 피할 수 없다"며 "이슈가 될 때 무조건 퍼붓는 소나기식 정책에 불과하다"며 보여주기 식 정부 정책에 대해 꼬집었다.

 정부 각 부서에서 이뤄지는 다문화가정에 대한 지원사업의 목적은 같지만 그 접근방법은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 즉 다문화가정 구성원을 위한 각종 지원형태를 나타내고 있는데 지역이나 시행기관에 따라 유사한 내용이 명칭만 다르게 실시되고 있는 것.

특히 외국인들의 국내 정착을 지원하기 위한 기본사항인 "한글교육"은 여러 부서에서 공통적으로 실시하는 가장 빈번한 사업이며 그 다음이 다문화가정 구성원에 대한 복지 관련 사업이다.

 정부의 지원 정책은 일시적이거나 실적 위주의 대응방안이 되서는 안된다
. 각 부처의 중복된 지원으로 인력과 자원이 낭비되고 있으며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다문화가정 지원이 더디게 이뤄지는 요인이다. 부처 간 중복사업을 방지하기 위해 외국인정책위원회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일년에 한번 갖는 정기회의에서 모든 문제를 다루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다.


51개 정책과제 중 건강문제는 없어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소나기식 정책으로 인한 과밀과소 현상을 지적한다.

실제 이번 외국인정책위원회가 확정한 51개 정책과제 중 보건 및 건강 문제에 대한 정책은 찾기 어렵다.

 엘리트 외국인 유치가 이번 외국인정책의 골자로 우수 인재들의 이중국적을 허용하고 창업·구직 비자 및 간접투자 이민제도를 도입하는 등 전체적으로 우수 인재 유치와 효율적인 인력 활용 및 관리에 정책의 무게 중심이 실린 것.

보건 관련 지원은 외국인에 대한 사회보장수급권 확대와 외국 의료기관을 유치해 진료 편의성을 제공하겠다는 정책 등 생활환경 개선의 측면에 그치고 있다.

 국제결혼 이주여성들을 위한 정책 역시 이들의 건강 문제에는 인색하다.

복지부 역시 안정적인 사회정착을 위한 사회통합프로그램 표준화 이수제와 한국어·한국문화 이해교육 확대, 통번역 등이 주요 정책과제로 건강 관련 사업은 찾기 힘들다.

그나마 임신·출산 지원과 아동양육 지원서비스 확대 두 가지가 직접적으로 보건 및 건강에 관련된 사업이나 모자보건에 국한된 점은 국제결혼 이주여성에게 저출산에 대한 순기능을 기대하는 것.

 2008년 들어 복지부 내 저출산고령국에 다문화가족과가 신설된 점만 봐도 정부가 국제결혼 이주여성들을 한국사회의 저출산과 고령화를 대비한 자원으로 봤다는 점을 드러낸다. 정부 역시 다문화가족 증가가 저출산·고령화 억제 기제와 이중언어 및 다문화적 감수성을 갖춘 글로벌 인재 제공이라는 순기능이 있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이런 맥락이라면 이들의 건강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전북대 설동훈 교수는 "국제결혼 이주여성 실태조사 및 보건-복지 지원 정책 방안"에서 이들 이주여성이 한국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세 가지 측면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첫째는 한국사회가 이들에 대해 보편적 시민으로서 보건 및 복지에 대한 수급권을 부여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와 부여한다면 어느 수준이 적절한가에 대한 검토, 둘째는 가족의 다양성과 관련된 문제로 이들을 가족정책의 대상으로 포괄하는 문제의 검토, 셋째는 이들의 보건과 의료에 관련된 사항의 면밀한 검토다.

 현재 한국사회는 국제결혼 이주여성을 보편적 시민으로 보고 이들에게 보건·복지 수급권을 부여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고 있다.

 아직 어느 정도 수준의 지원이 이뤄져야 하는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정부 역시 이주여성을 단순히 저출산에 대응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 생각한다면 누군가의 아내와 어머니가 아닌 이주여성 자신의 건강을 살필만한 실질적인 지원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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