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한숨 소리, 새해엔 웃음 소리로




조 현 찬

한림대의료원 부의료원장. 진단검사의학과


 지난 16일 열린 대한혈액학회 올해 마지막 이사회를 끝으로 본인에게 주어진 이사장으로서의 직책이 종결됐다.

 이사장으로 지난 2년 동안 진행했던 업무 내용으로 무엇보다도 지난해 대한혈액학회 50주년 통합학술대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던 일이라고 하겠다.

특히 카우산스키(Kaushansky) 미국혈액학회 회장, 피베(Fibbe) 유럽혈액학회 회장, 이께다(Ikeda) 일본혈액학회 이사장 등 세계적으로 혈액학계를 대표하는 모든 분들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줬다.

국제학술대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각국을 대표하는 학회장들이 모두 참석한 일은 그 동안 전무했다는 김건상 대한의학회장의 귀띔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통합학술대회는 대한혈액학회 뿐만 아니라 대한조혈모세포이식학회,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및 대한수혈학회가 모두 참여해 그야말로 국내 혈액학 및 수혈학을 망라한 전문가들의 학술잔치가 됐으며 회원들도 적어도 격년 주기로 통합학술대회를 개최할 것을 주문하며 만족감을 보였다.

 이러한 공감대를 형성하기까지는 이사진으로 함께 참여한 이종욱 총무이사(가톨릭의대)와 김선희 학술이사(삼성서울병원)의 노력이 절대적이었다.

 혈액학회 창립 50년 만에 처음으로 회원명부록을 발간했는데 1000여명 회원의 인적사항을 모두 파악하고 정리하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그 동안 계속 증가만 했던 평의원을 회칙에 맞게 조정할 수도 있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었으며 열심히 노력한 박찬정 회원관리위원장(울산의대)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박선양(서울의대) 전임 이사장 때부터 시작한 대한혈액학회 50년사 편찬작업도 마무리해 "대한혈액학회 50년사" 책자를 만들 수 있었던 일도 큰 보람으로 다가왔다.

 이를 계기로 역대 임원진들과의 간담회도 가졌는데 오래 전에 은퇴한 홍창의(서울의대), 이삼열(연세의대), 김상인(서울의대), 손근찬(단국의대), 한지숙(연세의대) 명예교수님들의 학회 발전을 위한 많은 충고는 향후 학회 발전의 밑거름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학회의 필요성과 역할이란 가장 우선적으로 학술활동을 활성화 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3년 전에 조직된 11개의 학술연구회는 이제 안정기로 접어들었고, 새로운 재생불량빈혈 연구회도 창립해 활성화의 발판을 더욱 공고히 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회원들이 국내에서만 안주하지 않고 세계화하는데 발판을 마련하고자 일본 연수제도를 신설, 첫해 5명의 회원에게 연수 기회를 제공했다. 앞으로는 구미 각국까지 연수지원 제도를 확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길 바래본다.

 6년 전 개설된 대한혈액학회 홈페이지를 개편하면서 학술논문의 온라인 등록체계를 확립하고 논문을 심사하는데 국제적인 수준의 체제를 마련했다.

무엇보다도 온라인 검색으로 학회지 창간호부터 모든 내용까지 볼 수 있도록 한 점은 대한혈액학회가 처음인 것으로 안다.

 일반 국민에게도 가까이 다가가는 학술단체로 그 역할을 수행하고자 보건복지가족부와 함께 "혈액주간"을 제정한 것도 보람있었던 일이었다. 홍보대사를 임명하고, 처음으로 학회원들이 직접 헌혈에 동참하는 혈액전문가의 헌혈 활동도 전개했다.

 혈액질환 환자들을 돕기 위한 관련단체와 연계를 강화해 환자들에게 다가가는 학회로서의 위상을 드높였다고 자평한다. 특히 한국혈액암협회와 6차례에 걸친 지원사업, 한국혈우재단에서 개최한 "동아시아혈우병 포럼(East Asia Hemophilia Forum 2008)"을 후원했던 일 등은 혈액학회 이사장으로 가장 보람된 행사였다.

 의학계에서도 관심사로 대두됐던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스프라이셀 보험등재를 많은 회원들의 노력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점도 간과할 수 없겠다. 환자 편에 서서 무엇이 진짜 이들을 위한 일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가톨릭의대 성모병원의 비급여 진료비 사태는 여전히 진행 중이어서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보험심사평가원의 진료비 심사 모순점을 부각시키고, 의료계의 관심사를 한마음으로 엮을 수 있었던 기회가 됐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사건이었다.

 올해는 특히나 의료계의 수심이 깊었던 한해였다. 고질적인 저수가로 인한 도미노 현상들은 의료계 전체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으며 비인기과로 낙인찍힌 산부인과와 외과계 지원율이 갈수록 바닥을 치고 있다고 하니 먼 훗날 수술하는 의사들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일각의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다.

 이미 흉부외과 수술실에서는 전문간호사들이 전공의들의 영역을 대신하고 있으며 교수들 사이에서는 "전공의 데리고 수술하는 것은 꿈이 된지 오래다"라는 뼈아픈 농담이 오가기도 한다.

 경제위기에 의료계의 한숨도 커져만 간다. 이럴 때일수록 의료계는 과감한 도전을 시도하고 정부는 의료수가 및 제도 개선 등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의료계가 활기를 되찾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 어렵고 위험한 진료 분야일수록 그만큼의 인센티브를 주고 가치를 인정해줘야 한다. 의사들 역시 경제논리에 따른 특정 진료과에만 매달리지 말고 순수의학이나 외과계의 영역을 스스로 구축하고 가치를 상승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런 기회를 통해 혈액학회 이사장으로 지낸 지난 2년과 의료계의 한해를 뒤돌아보며 느낀 생각들을 하나하나 글로 써내려가니 감회가 새롭다. 새로운 한해에 대한 많은 생각과 계획이 그려지면서 기분 좋은 설레임까지 밀려든다.

 "세상에 늦은 건 없다. 공부하자. 그리고 남이 개척 못 한 길, 힘들지만 그 곳으로 나아가자"는 개인 블로그에 올려놓은 글귀이자 내 삶의 모토이다. 어려울수록 제자리에 안주하지 말고 초심을 잃지 말되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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