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건강보험은 2조원에 가까운 차입금으로 급여비를 지급하고 있는 재정파탄에 빠져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취임한 이태복 장관이 건강보험재정안정화야말로 보건복지부가 전력을 기울여서 해결해야 할 중대한 과제라고 강조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재정파탄으로 국민들이 극히 불안해하고 있으며 건강보험제도 자체를 불신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3조원이 넘는 준비금을 적립해두었던 건강보험이 이처럼 재정파탄에 이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은 1998년부터 건강보험통합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면서 급여범위와 수준을 확대해 재정지출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음에도 그에 대응한 보험료수입의 확충이 미흡했던 것이다.

특히 통합을 앞두고 조합들은 보험료를 인상하기보다는 준비금을 소진했고, 통합 이후에는 보험료를 적기에 적정수준으로 인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의약분업의 시행으로 급여비지출이 일시에 50% 이상 급증했기 때문이다.

외래진료와 약국이용으로 끝나던 환자들이 외래진료를 받아야 처방전을 받을 수 있고, 처방전이 있어야 약국에서 조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함에 따라 의료이용이 급격히 늘었다.

게다가 의사와 약사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외래진료와 약국조제 수가를 급격히 인상하고, 환자의 진료비부담을 덜어주려 본인부담률을 낮춘 것이 재정지출의 급증을 부추겼던 것이다.

이를 보면 보건복지부가 재정지출이 얼마나 늘어날 것인지를 예측해 보험료수입을 확충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국민건강보험법 규정대로 준비금을 전년도 급여비 지출총액의 50% 수준으로 적립하도록 철저히 지도감독하지 않았기에, 재정파탄은 불가피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고 지금 건강보험통합과 의약분업을 포기한다고 해서 재정파탄이 즉각 해결될 문제도 아닌 것 같다.

따라서 건강보험재정안정화를 위해서는 국민들에게 고통분담을 요구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전에 복지부는 국민들에게 정책실패에 따른 재정파탄의 책임을 솔직하게 사과하고 2001년 급여비 지출총액의 50%인 6조5천억원 전후의 준비금을 국고에서 일시에 지원해 보험재정을 안정화시켜야 한다.

그래야 보험가입자, 의사, 약사, 제약사 및 환자 모두 보험료인상, 수가와 약값 인하, 본인부담률조정 등 고통분담을 통한 재정안정화 방안을 수용할 수 있으리라 본다.

보험료인상은 피할 수 없어 보이나, 가입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의약분업 시행 전후로 급격하게 인상했던 외래진료와 약국조제 수가수준의 적정성을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평가해 조정해야 한다.

그리고 의약품 실거래가 상환제도 시행 이후 제약사의 몫이라 생각되는 약값 마진이 지나친 것은 아닌지 평가해 가격을 조정해야 한다.

물론 환자부담을 늘리거나 줄여야 할지도 결정해야 한다.

어떤 방안이든 이해당사자 모두 신뢰하는 한시적인 위원회를 구성하여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야만 한다.

위원회는 보험재정의 부담자와 사용자가 같은 수로 참여하고 공익위원은 양자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환자의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

부담자측에서는 재정부담규모를 감안해 정부 예산담당부처, 지역가입자, 직장가입자 및 기업의 대표가 참여하고, 사용자측에서는 재정지출규모를 감안해 개원의, 병원, 약국 및 제약사 단체의 위원을 위촉해야 한다.

그리고 공익위원은 양자가 신뢰할 수 있어야 하므로, 보건복지부가 2~3배수 추천한 후보 중에서 양측의 합의로 선정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 재정파탄에 빠진 건강보험의 건강성 회복과 내실화를 위해서는 누군가 부담해야하나 누구도 부담하려하지 않아 보인다.

때문에 국민적 합의를 이루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화합을 중시하는 이태복 장관은 재임기간 중에 어려운 이 일을 해내어, 건강보험재정안정화라는 역사적 소임을 다하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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