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다니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유명한 알프스 부근의 작은 마을인 체르마트에서는 시계탑을 없애고 주민들도 시계를 갖지 않음으로써 인간의 바이오 리듬을 극대화했다는 보도를 오래 전에 접한 바 있다.

어차피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 살아가게 되어 있는 터이지만 인간 스스로가 시간을 분, 초, 더 나아가 이른바 "마하"단위로 쪼개기 시작하면서부터 인생이 풍요롭기보다는 각박해지고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사는 자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현대는 3-S, 즉 스피드, 스포츠, 섹스의 시대라고도 하지만 알고 보면 그 모두가 시간의 강박관념 속에서 이루어지고 승부가 나는 일들이다.

후기 산업사회에서의 살아남기도 정보와 순발력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교육현장도 속성재배가 근간을 이루고 입시위주의 교육도 시간과의 싸움에서 결판이 난다.

디지털 시대에 돌입하면서부터는 곳곳에 설치된 숫자표기의 점멸하는 분초의 돌진을 따라 인간의 마음은 항시 무엇엔가 쫓기는 심경으로 가슴이 조여드는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싫든 좋든 사람들은 사방 팔방에서 그들을 지긋이 응시하며 무언의 압력을 가해 오는 시간의 가르침에 의하여 지배당하고 있는 듯이 보여진다.

일찍이 발명왕 에디슨은 그의 성공의 비결을 묻는 후학들에게 이르기를 "시계를 보지마라…"라고 말했다.

단 하루를 시계없이는 못사는 것으로 여기는 현대인들에게 혼란스러운 충고처럼 들린다.

속독법을 기술의 차원에 습득하는 현대인에게는 독서의 참뜻과 사색의 여백도 이미 설 땅을 잃었다.

유장(悠長)한 성품과 무위자연(無爲自然)이 생활인의 덕목으로 여겨지던 어른들의 시대에는 시간의 개념은 폭넓고 넉넉한 공간적 개념으로 여겨지기도 하였지만 바이오리듬에 의한 절기와 때의 짐작은 지혜롭기 이를 데 없다.

통도사(通度寺)에서 만난 구하(九河)라는 고승은 노쇠하여 눈도 안보이고 귀도 들리지않으며 오로지 촉각과 영감만을 가지고 때를 알아맞추는데 그 오차가 단 10분을 넘지 않았다고 어떤 언론인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스님은 빗물을 손바닥에 받아보는 것만으로 이 비 끝에 어느 법당 앞의 모란이 꽃망울을 터트릴 것이라고 예언하는가 하면 아침 안개를 얼굴에 씌어보고 종각 곁의 단풍잎이 오늘부터 붉어질 것이라고 했다.

마루에 내려쪼이는 햇살을 손바닥으로 받아 보고 시간을 분단위로 알아내는가 하면 볕의 따습고 차고는 물론 볕의 무겁고 가볍기까지도 가려내었다고 하니 그 신통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인간은 누구나 그 몸속에 시계를 가지고 있음이니 이른바 "바이오 리듬"이 그것이다.

인간이 편리에 의하여 만들어 낸 시계가 인간을 지배하면서부터 오히려 바이오리듬은 그 기능이 퇴화해 버렸고 그 리듬에 의하여 유지되어 오던 건강까지도 혼란이 거듭되면서 쇠잔하여 버렸다.

이제 인간은 시계에 의하여 지배되고 시간의 위세 앞에서 자기를 주체못하는 "시계인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로봇처럼 인간의 두뇌 속엔 강제로 주입된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는 대로 우왕좌왕 방황하는 꼭두각시가 되어버린 형국이 되고 말았다.

주어진 시간을 자기 것으로 하여 창조적으로 시간을 부리며 사는 "카이로스(kairos)적시간관"은 항상 곁에서 채근하며 재촉하는 듯 눈을 흘기며 서 있는 시계의 위엄에 눌리어 버리기가 일쑤이고, 자신의 자유와 행동을 시시각각 죄어드는 시계의 초침속에 스스로 가두어 버리고 말았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인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빨리빨리", "어서어서" 문화도 따지고 보면 시계인간이 갈 수 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의 한 전형일 터이다.

언제부터인가는 시계에 권세자의 이름이나 휘장을 새겨서 은급이나 하사품으로 사용하게 되고(필자인 불초 이사람도 한때는 봉황이 새겨진 대통령 하사품 시계를 차고 으시대기도 하였다), 얼마전 총선 중에 승승장구 기고 만장하던 여당의 핵심인사가 시계에 자기 이름을 새겨서 돌리다가 구설에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이 모든 해프닝도 따지고 보면 "시계인간"이기에 누리는 업보일 것임이리라.

인간의 참 건강과 행복은 시계인간의 틀에서 과감히 벗어나 건전한 바이오 리듬을 되찾을 때 쯤에야 비로소 얻게 될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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