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정책 바로 가고 있나 -하-


노인진료비 증가 약가관리만으론 해결책 안돼

경제성 잣대로만 평가는 신약접근성 떨어뜨려



 정부의 약가 인하 방침이 다방면에서 이뤄지는 가운데 지난주 제약업계 초미의 관심을 끌었던 고지혈증치료제 경제성평가에 대한 결과가 일부 발표됐다. 또 보건복지가족부는 약제비 절감 정책의 일환으로 올 10월 1일부터 동일 의료기관내 진료과목이 다르다는 이유로 동일한 의약품이 중복처방되는 경우나 의약품이 소진되기전 중복 처방되는 경우를 막기 위한 중복처방 방지대책을 내놓았다.

 이는 포지티브리스트제도 도입을 필두로 시작된 정부의 약제비절감정책과 약가 인하가 앞으로 더 강화될 것이라는 단면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업계는 물론 관련 학회 등 전문가 단체들은 국민의 건강권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약가 인하 또는 보험의약품의 비급여 전환은 환자들의 건강을 심각히 훼손 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업계가 주장해온 약제비 절감정책 비판의 주 내용은 약제비 증가의 원인에 관점이 다르다는 점이다. 복지부나 업계가 함께 인식하고 있는 것은 고령화로 인한 노인의료비와 만성질환자의 증가로 약제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OECD기준으로 총 진료비에서 차지하는 약제비의 비중이 높고 연평균 약제비 증가율이 높아 약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업계는 고령화로 인한 노인 진료비에 대한 보다 정확한 대책 없이 단순한 약가 관리 위주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은 세계에서 초고속으로 진행되는 고령화를 감안할 때 전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또 정부가 주장하는 높은 약제비 비중은 수치상의 허구라고 비판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2003년 기준 우리나라 1인당 진료비가 705달러로 OECD 평균인 2318달러의 30% 수준으로 전체 진료비 자체가 낮아 약제비 비중이 높아보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한국제약협회가 최근 조사한 선진 7개국과의 보험의약품 가격 비교 결과 7개국 평균가의 48.4%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점에서 정부의 포지티브리스트제도가 비용대비 효과가 우수한 약을 선별 등재해 보다 좋은 약을 환자들에게 제공한다는 정부의 정책적 대안은 전혀 대안이 아니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특히 약의 가치를 임상적 유효성과 안전성을 기반으로 전문가인 의사들이 판단해야 함에도 오직 비용효과 우수함이라는 경제성평가 잣대로만 판단하는 것은 환자들의 신약이나 우수 의약품의 접근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 고지혈증치료제 시범평가사업의 과정 중 지질동맥경화학회나 심장학회 등이 제시한 전문가 단체 의견을 심평원이 다소 왜곡해 반영함으로써 비용대비 효과가 우수한 의약품을 급여 등재한다는 방침이 비용최소화 의약품을 선별해 등재하거나 약가를 그에 맞게 인하하는 것으로 결정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제약협회가 주최한 한 간담회 에서도 이같은 의견이 제기됐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약제비적정화 방안 중 신약에 대한 보험기준과 가격 결정에 있어 기존보다 장시간이 소요된다는 점(240일 이상)과 가격 협상과정이 심평원의 경제성평가 자료 검토와 공단의 별도 가격협상, 복지부의 최종 결정 등 이중, 삼중으로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는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새 정부의 방침과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는 결국 연구 의욕 저하, 국내제약산업 경쟁력 약화, 제약산업 예측가능성의 모호함 등의 문제가 발생된다는 것이다. 특히 사용량 연동 약가 인하의 경우 개별 업체의 재산권 침해 논란과 함께 반시장적인 정책이라며, 시장과 환자, 전문가인 의사들의 선택에 의해 사용량이 늘어나는 약에 대해 아무런 근거 없이 일률적으로 가격을 인하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결국 약제비 적정화방안은 각국의 약가제시스템을 원용한 조합품이라는 극단적인 비판과 함께 가격 협상 따로 경제성평가 따로라는 이중 규제가 과연 합당한 것인지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업계는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열린 제약협회 주최의 CEO조찬 포럼에서도 이러한 업계의 목소리는 다수 표출됐다. 의약품이라는 것이 생명과 직결된 공공재적 성격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신약 개발과 좋은 의약품을 국민에게 제공해야 하는 제약업체에게 상품으로써 의약품에 대한 합당한 가격과 시장 원리를 적용하지 않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지적이다. 한 업체 대표는 그렇다면 필수의약품이나 등재의약품에 대해 정부가 제약공사를 별도로 설립해 공공재로써 의약품을 공급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어떻겠냐는 우회적인 비판을 하기도했다.

 또 한 업체 관계자는 미생산, 미청구 품목의 일괄 삭제 방침과 관련 특허 소송이 진행중이거나 별도의 사유가 있을 경우 미생산, 미청구 기간을 연장해줘야 함에도 정부는 개별 품목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또 이번 고지혈증치료제에 대한 경제성평가와 관련 지난 16일 열린 제약업체 워크숍에서 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 보건의료경제성평가팀 고수경 박사(한국화이자제약 의학부)는 "심평원의 이번 평가는 비용효과를 고려한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경제성평가로 보기에는 분석 기준이나 논문 인용 등에서 많은 한계점을 보였다"며 "단순히 약가를 인하 하기 위한 목적으로 경제성평가를 차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정부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이 결국 국민의 건강권와 싸고 좋은 의약품의 공급이라는 목적을 두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다중 규제와 국민 건강권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환자들도 싸고 좋은 의약품을 원하고 있다면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무조건적인 약가를 인하할 것이 아니라 전문가 단체와 업계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는 약가 정책이 절실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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