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에 거는 사회 기대치 높아 비난도 거세
윤리적 감수성 높이기 노력 호응 폭 넓어져



"의사들에 대한 비난은 당연"

 "인간 생명을 다루는 의료는 한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분야이고 그만큼 의사들에 대한 책임의 무게도 무겁습니다. 의사들에 대한 사회적인 기대가 크기 때문이죠. 의사들의 도덕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때 의사들이 지나친 비난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요."

 의사들이 도덕적, 윤리적인 문제가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의사들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높기 때문에 조금의 실수에도 혹은 잘못에도 의사들에게 쏟아지는 비판과 비난은 거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의료윤리의 본질이다.

 "의료윤리교육"이란 이런 것이다. 의사의 윤리적 감수성을 높이는 것으로, 사회적 책임과 임무가 막중한 의사들이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주어진 윤리적 감수성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면 안된다는 기본에서 출발한다.

그러기에 의료라는 현장을 가장 잘 알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의료계가 그 윤리적 감수성을 높이는 선봉장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의료윤리, 교육에서 출발해야"

 한국의료윤리학회는 11년 역사에 200여 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는 아직은 그리 크지 않은 학회이다.

그러나 대부분 회원들이 학생들에게 "의료윤리"를 교육하고 있기에 이들의 파급효과는 크다.

예방의학과와 같은 기초학문 교수부터 가정의학과, 중환자내과, 마취과, 외과 등 임상교수들까지 다양한 전문 분야의 의사들이 이 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05년 세계의료법학회를 유치해 성공적으로 치른 이후 의료윤리교육학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어요. 최근에는 의료윤리만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고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조만간 회원이 400여 명으로 늘어날 겁니다."

 한국의료윤리교육학회는 1997년 전국 20개 의과대학 의료윤리 관련 교수 35명이 각 대학이 공통된 학습목표를 만들자며 의기투합해 만든 학회로 울산의대 홍창기 교수, 가톨릭의대 맹광호 교수, 연세의대 김일순 교수 등이 주축이 돼서 창립했다.

 학회 창립 1년 만에 "의료윤리학 학습목표"를 만들고 의료윤리 교육의 틀을 만들었다. 창립 당시 의료윤리를 교육하는 의대가 30% 정도였는데 11년이 지난 지금 모든 의대가 100% 의료윤리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고, 몇몇 전문과에서는 전공의 시험에 윤리과목을 넣기도 하니 그동안 학회가 쏟은 열정을 짐작케 한다.

현재 모든 의과대학에서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는 의료윤리 교과서도 의료윤리교육학회의 결과물이다.

 최근에는 의대생뿐 아니라 전공의나 개원의들을 상대로 한 교육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각 전문학회와 함께 진행한 전공의 윤리교육프로그램이 최근 윤곽을 드러냈으며 개원가의 현실에 적합한 교육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개원의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학회의 문을 열어 놓았다.

"통섭, 학회의 숙명"

 "의료윤리를 깊게 들어갈수록 법과 상당부분 연관이 있어요. "의료-윤리-법" 이 세 가지 학문에 대한 학제 간 융합연구를 통해 의사들이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적응해나가는데 필요한 통섭학문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학회의 숙명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의사들에게 "이런 행동은 하면 안된다"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도 하고 "의료현실에서 이런 문제는 윤리·법적인 면에서 이렇게 해결하면 된다"라는 지침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에는 의사들이 하지 말아야 할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행동 50가지를 정리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앞으로 의료-윤리-법을 융합해 분과별 학문의 경계를 넘어 지식의 대통합인 통섭의 학문으로 발전시킬 겁니다. 의사들이 주체가 돼서 의료계뿐 아니라 전 사회적인 윤리적 감수성을 높이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구요."

 사회 전체적인 윤리적 감수성을 끌어올리는 것은 의료윤리와 관련된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발생하는 소모적인 분쟁에 대한 지침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은 카렌 퀸란 사건이나 베이비 M 등의 사건에서 수년 간의 공방 끝에 그 문제에 대한 해결을 짓고 윤리적 기준을 마련했습니다. 국가나 사회, 언론이 사건을 원만히 해결해서 병원 현장을 윤리적인 환경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 거죠,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해결을 지연시키는 역할이 더 큰 것 같아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것이 의학이 통섭을 추구해야 하는 숙명과도 같은 이유이다.

"할 일이 많습니다"

 윤리가 결국 법으로 향하고 법의 규정은 정책으로 이뤄지는 것이니 의료관련 정책결정에도 많이 참여할 계획이다. 의료현장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법적인 테두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미래의 치료로 불리는 생명과학연구에 있어 윤리적인 건강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훌륭한 연구결과라도 모래 위의 성이 불과할 것이다. 때문에 의료윤리의 역할이 더욱 크다.

 "의료윤리는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스스로 사유하는 능력을 키우고 분석해서 자신의 의사결정 과정을 가르치는 학문입니다. 그래서 토론이나 역할극, 판례분석 등 다양한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됩니다. 이런 점에서 쉽지 않겠지만 앞으로 의료인들과 생명에 관여하는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의료윤리를 몸안에 흡수하도록 더욱 노력해야지요."

 또 의료윤리에 대한 중요도에 무게감을 실어주기 위해 의사국가고시에 의료윤리 문제를 포함시키는 것도 검토 중이다.

 "학회 차원에서 차근차근 접근하고 있고 아마 멀지 않은 시점에 이뤄질 겁니다. 한 두 문제를 더 맞추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를 통해 더욱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자극이 되라는 취지입이다."

 정책 참여, 교육 확대, 의사국가고시 반영 등 학회의 할 일이 많다. 그만큼 학회의 열정이 깊다는 의미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의사들이 윤리적으로 존경받을 만한 행동을 하고 나아가 전 사회의 윤리적 감수성을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그날이 그리 멀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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