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산소 기피과 문제 심각...생명과 밀접
의료소송·형사처벌 우려도 커져
"인센티브, 기피과 유인책으로는 미봉책...현실 모르는 이야기"

[메디칼업저버 김나현 기자] 기초 진료과목이자 필수의료로 꼽히는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과목 전공의 기피가 심화되고 있다.

인센티브와 같은 기피과 유인책이 시행되고는 있지만, 의료 현장의 전공의들은 기피과목의 위험부담을 고려한 현실적인 수가보상체계 등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최근 5년간 전공별 전공의 지원현황'에 따르면 산부인과의 지원율은 2017년 104.1%에서 올해 88.7%로 하락했고, 소청과는 2016년 123.9%에서 올해 78.5%로 45.4% 하락했다. 외과도 올해 88.1%의 지원율을 기록했다.

내과 전공의 지원율은 올해 110.1%로 다른 필수의료 과목보다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정형외과(187.8%), 재활의학과(181.4%), 피부과(152.2%) 등 타 인기과에 비교했을때는 턱없이 낮은 수치였다.

 

필수의료 기피, 의료 현장에서도 체감

일자리 부족·의료소송 등 원인으로 지적

이른바 '내외산소'에서 수련 중인 전공의들은 이와 같은 기피현상을 실제로 체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23기 대한전공의협의회 부회장을 역임했던 가톨릭중앙의료원 서연주 내과 전공의는 "내외산소 분야의 전공의 기피를 처절히 체감한다"며 "외과는 가톨릭중앙의료원을 통틀어 지원자가 1명, 소아과는 0명이라고 들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메이저과를 지원하려던 친한 후배들도 진로를 변경해 영상이나 피부과에 인사드렸다는 소식도 접한다"며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 친구들의 입장도 이해돼서 마음이 씁쓸하고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가 더욱 걱정이 된다"고 덧붙였다.

전공의들은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일자리 부족, 각종 의료소송 위험, 낮은 수가 등으로 꼽았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서울병원 4년차 외과 전공의는 "외과는 수술이 많기 때문에 밤새 수술하고 노력해도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며 "실제로 소송을 당하는 교수님도 있다. 우리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에 항상 걱정되고,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외과 전문의를 따도 일자리가 없는 것도 문제"라며 "경영자 입장인 병원에서도 수술을 할수록 적자가 나고 소송에 휘말리는 과목은 피할 수밖에 없다. 주변에서도 외과와 관련된 수술을 하고 외과 의사로 살아가는 사람은 절반이 안된다"고 설명했다.

서 전 부회장도 "생명을 다루는 과들이 각종 의료소송과 형사처벌 위협에까지 노출되는 시대다"라며 "과목을 선택할 때 주변에서도 다들 말렸다. 아무리 사명감으로 희생을 감수하고 선택해도 후배들에게 선뜻 그 길을 권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익명을 요구한 4년차 소청과 전공의는 "과거에 전공의를 경쟁으로 선발할 때에는 아동병원이 호황기를 누렸고, 영유아검진 등 국가지원이 잘 돼있었기 때문에 '먹고 살만한 과'라는 인식이 있었다"라며 "출산율 저하는 예측했던 부분이라 알면서도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각종 신생아 중환자실 사건 고발을 보면서 소송 위험을 우려한다"며 "지원할 때 코로나19로 소아과가 진료수익에 타격을 받는다는 말이 들리다보니까 경제적인 부분에서 망설이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전공의들은 인력부족으로 인한 업무 과잉도 호소했다.

서 전 부회장은 "심정지 등 응급상황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을 때 어떤 환자를 먼저 살려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 너무나 큰 자괴감이 들었다"며 "환자를 살리려고 내과 의사가 됐는데, 어떤 환자가 죽게 될지 고민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 의료가 빨리 정상화돼 환자들이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후배들은 이런 비참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길 간절하게 바란다"고 덧붙였다.

외과 전공의는 "큰 병원이라도 인력부족은 항상 있다. 경증환자들도 큰 병원으로 몰려 환자가 더 늘어나고 1인당 맡는 환자도 많아진다"며 "응급실에 근무할 때 환자가 갑자기 늘어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인센티브 줘도 안할 사람은 안한다"

필수의료 위험부담 고려한 수가 및 법적 지원 필요

정부에서 외과, 응급의학과 등 기피과로 분류되는 과목 전공의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소청과 전공의는 "인센티브를 월급만큼 준다고 해도 안할 사람이 하지는 않는다. 미봉책일 뿐"이라며 "전공의는 4년이고 이후에 환자를 볼 기간은 30~40년인데 '월급을 올려주면 기피과로 오겠지'라는 생각은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대신 생명과 밀접한 필수의료인 만큼 위험부담을 고려한 현실적인 수가와 법적 지원이 갖춰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소청과 전공의는 "진료를 보고난 뒤 지급하는 돈을 개선해야 한다. 내외산소는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고소·고발의 위험을 안고 있다"며 "정부에서 수가를 책정할 때 위험 부담을 포함해 수가를 지급해야 하는데, 필수의료니까 저렴하게 진료해줘야 한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에는 고소·고발을 당해도 본인이 부담을 떠안게 되고, 병원에서도 그런 과 의사를 쓰지 않게 될 것"이라며 "정부가 필수진료를 확대하고 싶다면 위험 부담까지 포함한 수가 보상체계를 만들어야 향후에 그 과를 가려는 전도유망한 인재들이 유입된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3년차 산부인과 전공의는 "난소암은 발견됐을때부터 중증도가 높고, 기저질환이 없더라도 임신이라는 과정에서 중증도가 높아지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 상황에서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의 생각차이가 있기 때문에 적당한 법적 지원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가가 가장 큰 문제다. 지방에서는 필수수술도 하지 못하는 곳도 많아지는 것 같다"며 "수가가 개선되지 않으면 어떤 의사도 수술을 안할거고, 병원도 진료를 안해 결국은 지방의료원이 무너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서 전 부회장은 "먼저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교과서나 최신 가이드라인 기준보다 심평원 급여 삭감 기준을 먼저 따져야 하고, 정당한 진료 행위라도 급여 기준에 해당치 않으면 병원이나 의사 월급에서 깎이는 상황이 무기력함을 불러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이어 "예측불가능성이라는 의료의 특수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과실치사 및 형사처벌 같은 사법권개입 상황에 필수과 의사로서 회의감을 느낀다"며 "의사 개인의 희생으로만 짊어져온 필수의료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누군가의 삶에 도움...보람 매우 크다"

한편 전공의들이 소위 기피과로 꼽히는 과목을 선택한 이유는 대부분 사명감으로 귀결됐다.

서 전 부회장은 "내과는 힘들고 고되지만, 가장 늙고 병든 환자들을 돌보고, 생명을 다루는 중추적인 역할을 해 의학의 꽃이라고 불린다"며 "학문 자체도 재미 있지만 환자들이 가장 아프고 힘든 순간에 함께 할 수 있고, 누군가의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보람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소청과 전공의는 "노인을 치료하고 연명치료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명의 시작점에서 남은 삶이 많은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중요하다"며 "예를 들어 60세 노인을 치료해 기대수명을 80세까지 늘릴 수 있지만, 1살 아기를 치료하면 남은 80년의 인상을 바꿔줄 수 있다. 물론 아이들을 좋아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외과 전공의는 "처음에는 외과가 멋있어 보였고, 죽어가는 환자를 살린다는 사명감도 있었다"고 했고, 산부인과 전공의는 "개인적인 보람과 관심, 흥미 때문이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화가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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