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제약사 잦은 협상결렬로 출시 지연 피해 커

복지부 "체결률 80%" 업계·환자 체감과 거리 멀어


 지난해 도입된 의약품 선별등재방식(Positive list system)이 시행 1년을 넘기면서 신규의약품의 보험약가 받기가 낙타가 바늘 구멍을 뚫기보다 어렵다는 하소연이 제기되고 있다.

 약제비 절감을 통한 건강보험재정 안정과 비용대비 효과가 우수한 의약품을 국민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에서 제도가 도입됐지만, 최근 공단과 제약회사 간 잇단 약가 협상 결렬로 필수의약품이나 중증환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제품 출시가 지연되고 있어 정부와 제약회사가 함께 비판을 받고 있다.

 또 보험의약품 약가 결정시 심평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심사를 통과했지만 공단과의 약가 협상이 결렬되는 경우가 많아 보험약가 결정이 너무 깐깐하고 일관성이 없어 제도가 더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이러한 논란과 관련 보건복지가족부는 최근 해명자료를 내고 2007년 12월말 기준으로 신약 약가 협상은 25건을 개시 이중 체결 8품목, 결렬 2품목, 진행 15품목으로 협상 체결률은 80%라고 밝혔다. 복지부는 지난해 총 등재 신청 129품목(자진취하 20개) 중 1차 경제성평가 결과 통과된 품목 25개, 비급여 결정 14개, 진행중인 품목 70개였으며 이중 총 25개 품목이 약가 협상을 체결했거나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 제약업체나 환자가 피부로 느끼는 체감은 매우 다르다.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BMS의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스프라이셀의 경우 지난해 1월 식약청 승인을 받고 1년이 넘게 약가 협상이 지연되고 있어 약 공급이 늦어지고 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건강세상네트워크 등은 최근 해당 업체 규탄 방문과 심평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 회의시 항의집회를 했다.

 한국BMS측은 스프라이셀 약가협상에 대한 공식입장을 통해 심평원이 전문의학회 의견수렴과 전문가회의를 통해 필수의약품으로 인정했음에도 공단과 복지부가 정당한 이유나 설명 없이 협상 불가능한 가격만을 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A병원 교수는 "경제성평가 자료는 급여를 결정하는 여러 기준 중 하나일 뿐"이라며 "약가 결정시 비용-효과와 함께 환자에 대한 임상적 중요성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국내 시판 허가를 받고도 약가 결정이 미뤄져 출시가 늦어지고 있는 제품은 얼마나 될까.

 스프라이셀 외에도 한국노바티스가 지난해 선보인 당뇨병치료제 가브스와 2006년 12월 출시한 만성B형간염치료제 세비보, 연 1회 정맥투여하는 골다공증치료제 아클라스타 등도 대표적인 사례에 든다. 또 한국릴리의 골다공증치료제 포스테오와 GSK의 유방암치료제 타이커브 등도 약가 등재 신청이 유보되거나 결렬됐다. 국내 업체들의 경우 종근당의 프리그렐과 대원제약의 펠루비정은 대표적인 예이다.

 종근당은 프리그렐이 개량신약이라는 점을 내세워 최초 오리지널 약가의 75% 수준을 제시했지만 공단 측은 개량신약경제성평가세부기준에 따라 임상적 유용성이 향상되지 않고 등재된 제네릭이 있는 경우 오리지널 약가와 제네릭 약가의 가중 평균가, 퍼스트제네릭 가격중 낮은 가격으로 한다는 방침에 따라 지난해부터 협상이 결렬됐다.

 이와 관련 종근당은 최근 심평원에 퍼스트제네릭 약가인 68% 수준에서 약제결정신청을 다시 접수했다. 이는 곧 개량신약이라도 개발 업체가 경제성평가 자료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제네릭과 동등하게 평가하겠다는 복지부의 방침을 적용받은 것이라는 평가이다.

 종근당 관계자는 지난해 말 신약개발조합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개량신약 개발에 투입되는 국내 제약회사들의 노력을 단지 비용-효과라는 경제성평가 잣대로만 바라보고 있어 국내 제약업체들의 개발 의지를 꺾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원제약의 경우 NSAIDs 계열 관절염치료 신약으로 지난해 4월 식약청의 신약허가 승인을 받았음에도 9월이 되어서야 비급여 판정을 받았다.

 이에 대해 한국제약협회 관계자는 개량신약은 정부가 자료제출의약품으로 규정, 경제성평가 자료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약가를 제네릭이나 그 이하 수준으로 책정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새 정부가 경제를 우선시 한다고 했음에도 국내 제약산업을 고사시키는 약가정책이 과연 타당한지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복지부가 의약품사용량-약가 연동제 실시에 대한 근거를 담은 고시를 공포하면서, "경제성평가 및 약가협상이 이원화되어있고 이에 따라 보험의약품 등재 업무의 일관성 유지가 곤란하다는 감사원의 지적을 받았다"고 스스로 인정, 약가 협상의 일관성 없이 1년간 제도가 시행됐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이와 관련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약물경제성평가가 보험등재 가격 결정에 중요한 방안이 될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가격 결정 수단처럼 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특히 외국계 업체와 달리 약물경제성평가를 독자적으로 수행할 충분한 인프라가 없는 상황을 정부가 고려하지 않는 점이 아쉽다며, 개량신약이나 국산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투여된 비용이나 노력을 인정하지 않고 해당 제품을 제네릭과 동등하게 바라보려는 정책 관점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제약업계는 물론 의료인들과 환자들은 경제 우선과 규제 철폐의 새정부 국정지표에 맞게 깐깐한 보험의약품 약가 결정보다 현명한 약가 결정을 하는 정부의 변화된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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