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사 총파업 통해 전공의에 의존하는 수련병원 시스템 민낯 드러나
해외에 비해 열악한 정부 지원…값싼 노동력으로 인식하며 제도 뒤쳐져
입원의학 활성화, 해결방안 중 하나이나 대체재로 인식되면 도돌이표

이미지출처: 포토파크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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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김나현·정윤식 기자] 전국의사 총파업으로 인해 분명하게 확인돼 풀어야 할 숙제로 남은 수련병원의 전공의 의존도.

전공의가 장기간 의료현장을 떠나 있으면 서울의 대형 대학병원마저 외래와 병동 운영에 차질을 빚고 수술을 대거 축소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이는 수련병원이 갖고 있는 위태로운 시스템이 민낯을 드러냈다는 지적인데, 전공의가 사유재산과 다름없는 입장에 놓인 상황에서는 해결책이 요원하다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즉, 의료는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다는 언급을 말버릇처럼 하는 정부가 정작 의사 교육과 양성 비용 지원 등에 있어서는 소극적인 게 가장 핵심적인 문제라는 것.

결국 수련병원의 높은 전공의 의존도는 말로는 공공재라며 현실은 사유재가 되도록 방치한 현 시스템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해외에서는 '전공의 교육=미래 의료 공공재 마련'으로 인식
미국 등, 교육과정 인건비 및 수련환경 개선비용 정부 부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2020년 2분기 기준으로 신고 된 지역별·종별 의사인력 현황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만 놓고 봤을 때 전국에 총 2만 261명의 의사가 존재한다.

이중 전문의 1만 2202명과 일반의 156명을 제외하면 총 7903명(인턴 1750명+레지던트 6153명)의 전공의가 상종에서 수련 중이다.

지역별로 편차가 심하긴 하나 전국 집계로만 단순 계산하면 상종에서는 전문의 10명당 전공의가 6.5명인 것이다.

소위 빅5라 불리는 초대형 상종을 별도 분류하면 서울대병원의 경우 총 1591명 중 전문의 826명/전공의 765명(일반의 포함)이고 이어 서울성모병원은 846명에 535명/311명, 서울아산병원 1646명에 1048명/598명, 세브란스병원 1177명에 821명/356명, 삼성서울병원 1352명에 829명/523명이다.

전공의 수련과 교육에 대한 정부 지원은 어떨까.

과거 2012년경 흉부외과 등 일부 기피과에 대해 전공의 1인당 50만원씩 연 27억원가량 지원이 이뤄졌으나 실효성이 낮고 다른 진료과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이후 전공의 육성 등 의사양성을 위한 직접적인 지원은 크게 없는 상황.

하지만 여러 선진국에서는 전공의 교육을 미래 의료 공공재 마련으로 인식, 교육과정에 드는 인건비뿐만 아니라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비용까지 정부 예산 및 보험료 등을 통해 상당 부분 부담 중이다.

실제 지난 2017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발간한 '전공의 수련 및 근무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미국은 전공의 교육과 수련에 드는 재정적 비용을 정부와 보험자가 부담하고 있다.  

우선, 직접지원 규모를 살펴보면 전공의 1명당 직접 교육비용의 약 20%에 대한 비용(약 1억 4000만원)을 메디케어(Medicare)에서 지원하고 있으며 이는 연간 약 3조원 규모다.

간접지원은 전공의 수련을 잘 수행하기 위해 수련병원이 감당해야 할 낮은 생산성, 대기 인력, 시설 및 공간 등 기회비용을 보상하는 지원을 뜻하는데, 메디케어에서 전공의 인건비를 직접 지원하는 프로그램의 2~3배 정도의 예산을 간접지원 프로그램으로 지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전공의 수련교육에서 메디케어는 직접지원으로 20%, 간접지원으로 40~50%의 비용을 담당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70%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외의 나라들도 정부 지원이 구체적이고 적극적이다.

캐나다는 전공의 임금과 지도전문의 인건비를 정부가 담당하고 있고, 영국은 전공의 수련비용을 국가가 전담한다.

호주도 전공의 1명당 약 9000만원의 급여를 지원 중이며, 일본은 초기 연수(졸업 후 2년) 기간 동안에는 정부가 100% 지원하고 후기 연수 때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부분 지원한다.

고려의대 안덕선 명예교수는 "전공의 교육은 공적 자금이 투입되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며 "병원 경영자들이 전공의를 싼값의 인력으로만 다루려고 해 우리나라의 전공의 수련·교육 제도는 많이 뒤쳐져 있다"고 지적했다.
 

공공재라고 부르고 싶으면 국가 책임 높아져야
직·간접 지원 등 방식에 있어서 사회적 합의 필요

의료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의사 양성 과정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지 않으면서 공공재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이는 수련병원이 전공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과 연관돼 있다고 지적했다.

수도권의 한 상급종합병원 외과계 A 교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처럼 정부의 지원 아래 양성되는 것도 아니고 정부가 돈을 들여 국시와 전문의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도 아닌데 공공재라는 표현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B 전문의는 "자꾸만 공공성 얘기를 하는데 이는 수련비용을 국가에서 지원하는 유럽 등 서구에서나 부를 수 있는 모델"이라며 "우리나라에서 수련병원의 개념은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단순히 의사가 많은 대형병원이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는 수련비용을 국가가 아닌 경영자가 책임져야 하니 병원은 수익을 내야하고, 결국 전공의가 수익을 내야 하는 대상이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며 "전공의는 배우러 온 입장인데 이들이 없다고 병원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심각하게 생각할 문제"라고 부연했다.

즉, 의사양성을 위한 비용부담과 수련과정은 마치 사유재처럼 병원장에게 맡겨놓고 공공재라고 언급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의미다.

ⓒ메디칼업저버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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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병원 대부분이 입원한자를 거의 전공의에게 의존하게 된 것은, 애당초 의료계가 기형적으로 성장하면서 생긴 이상한 틀이 원인이라는 의견도 있다.

전공의 의존 문제는 단순히 수련병원 시스템에 한계가 있어서 발생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고, 의료계 일부의 지엽적 문제가 아닌 전체 의료시스템이 왜곡됐기 때문으로 본 것이다.

수도권의 한 수련병원 내과계 C 교수는 "국가가 전공의 수련비용을 지원한다고 한들, 단순히 지원법 하나만 달랑 만든다고 해결되진 않을 것 같다"며 "저수가 체계가 모든 것을 비틀었고 그러다 보니 병원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공의를 피교육자 신분보다는 저렴한 노동력으로 이용해 왔다"고 언급했다.

만약 의사양성과 관련해 적극적인 국가지원이 필요하다고 정부와 의료계가 조금이라도 공감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게 이들의 제언이다.

그만큼 수련병원의 전공의 의존도는 지원 방법의 논의 단계에서부터 풀어야 할 실타래가 많다는 뜻이다.

또 다른 수련병원 외과계 D 교수는 "일각에서는 정부 지원이 커지면 진짜 공공재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전공의 의존도의 심각성을 정부와 의료계가 같이 인식하고 있다면 합의의 과정을 빨리 이뤄낼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며 "수련비용을 지원하려면 세금이 투입돼야 하기 때문에 국민을 이해시키는 일도 필수"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전공의의 인건비를 책임지는 게 가장 합리적인 지원인 것인지 아니면 책임지도전문의 교육, 시설·환경 정비, 시뮬레이션 센터 구축, 프로그램 개발, 기회비용 등을 함께 고려해 다양한 지원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인지 등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B 전문의는 "직접적인 지원인 전공의 인건비와 생활비 등에 있어서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다면 교수들이 전공의를 가르치면서 잃게 되는 시간에 대한 손실, 각 학회에서 개발하는 교육 커리큘럼에 투입되는 자원과 노력 등 간접비용이라도 지원해야 한다"며 "굳이 따지자면 현재 의료질평가지원금이 있지만 병원의 순위 경쟁을 부추기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해결책 중 하나가 입원전담전문의?…대체재 인식 없어야 가능

한편, 전공의가 아닌 전문의 위주로 병원이 운영되기 위해서 본사업을 앞두고 있는 입원전담전문의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데 이견은 없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내과계 E 교수는 "입원의학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 생겨났다"며 "입원전담전문의 제도가 그 예인데, 파업 대비용이 아니라 전공의 의존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입원전담전문의제도의 안정적인 정착과 더불어 전공의가 1~2년차 때는 집중적으로 수련을 받고 3~4년차 때는 진료 현장에 직접 투입돼 책임을 스스로 질 수 있게 하는 형태로 수련기간을 변화시켜야 교육, 수련, 근무가 철저히 분리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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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입원전담전문의가 전공의 의존도를 줄이는 데 일정 부분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전공의 대체인력'이라는 인식이 절대 생겨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의 F 입원전담전문의는 "이번 파업에서 의료현장을 지키는 입원전담전문의의 역할이 분명히 있었고 한 축을 담당한 것은 확실하다"며 "그런데 '비상진료패키지'라는 이름을 달고 정부가 입원전담전문의에게 일반진료를 허용한 것은 마치 입원전담전문의를 전공의 대체인력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 신호를 줘 아쉽다"고 전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28일 전공의 집단휴진 사태로 인한 의료공백 개선방안으로 입원전담전문의와 중환자실 전담전문의의 일반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한 바 있는데, 이는 자칫 잘못된 인식을 일선 병원들에게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른 G 입원전담전문의 또한 "입원전담전문의가 전공의와 일을 분담하는 것은 맞지만 전공의가 없어도 병원이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 구축과 정부의 지원이 핵심"이라며 "비상시에 전공의를 대체할 것처럼 은연중에 비춰지도록 하는 것은 옳지 않고 입원전담전문의 제도 정착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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