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향한 불신과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 겹쳐 젊은의사 중심으로 폭발
의료계 내부 다양한 관계갈등 수면 위로…다른 입장 이해하려 노력해야
전공의 의존 시스템 심각성 확인…인력확대 집착 말고 근본 개혁 필요

ⓒ메디칼업저버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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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정윤식 기자] 전국의사 총파업이 지난 8일 전공의들의 업무 복귀로 일단락 됐지만 단체행동이 남기고 간 후유증을 해결하는 게 의료계의 시급한 숙제로 남았다.

이번 총파업이 곪아 있던 상처인 정부와 의료계의 극심한 불신, 나아가 젊은 의사와 선배 의사간의 세대 갈등을 수면 위로 올렸고, 이 상처를 봉합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 시각이 존재한다.

아울러 인턴과 전공의에 의존하는 수련병원 시스템의 민낯이 드러났다며, 단순 의료인력 확대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 근본적인 개혁이 무엇인지부터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파업 과정 속에서 드러난 수많은 갈등 요소로 뒷심 부족

이번 전국의사 총파업이 시작된 계기는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등 소위 '4대악' 의료정책 발표 때문이다.

특히 정책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의대생과 전공의, 전임의 등 젊은의사가 주축을 이뤘다.

이들은 지난달 7일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2020 젊은의사 단체행동'을 통해 파업의 시작을 알렸고 일주일 후 대한의사협회가 전면에 나서면서 분위기는 고조됐다.   

젊은의사가 파업의 시작을 알렸다면 정부와의 강대강 대치 속 파업 열기에 찬물을 끼얹고 의료계 내부 갈등의 시작을 알린 것은 의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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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과 의료계의 합의 및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의 합의에서 의협 최대집 회장이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를 비롯해 젊은의사 비대위를 절차상 패싱했다는 논란이 일었던 것이다.

의협과 대전협 비대위의 이 같은 갈등 이후 방향성을 잃은 투쟁은 급격히 사분오열되기 시작, 비슷한 갈등이 반복 표출돼 각자도생의 길을 걷는 모양새가 됐다.

의협을 비판할 때까지만 해도 같은 목소리를 내던 전공의들끼리 의견 충돌이 생겼고, 결국 대전협 비대위 박지현 위원장 및 집행부 전원 사퇴 후 새로운 비대위가 출범했다.

이 과정에서 전임의들과 일부 전공의들이 먼저 병원으로 복귀했으며, 의대생들은 함께 투쟁한 전공의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지 못한 것에 서운함을 나타냈다.

하지만 대전협 신(新)비대위마저 업무복귀를 결정하면서 사실상 모든 전공의들이 병원으로 돌아갔고, 이번에는 국시거부 찬반을 두고 의대생들끼리 의견이 엇갈렸다.

이처럼 정부와 의료계, 의협과 병협, 선배의사(의협)와 후배의사(대전협), 개원의와 교수, 전공의와 전공의, 전공의와 의대생, 의대생과 의대생 등 다양한 갈등이 상존했던 게 이번 파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세대·이념 갈등 투영? 입장·시각 차이 따른 불편함? 

이번 파업에서 전공의가 종주단체인 의협보다 더 강성을 띤 이유는 정부에 대한 불신 즉, '믿지 못 하겠다'는 이유에서다. 

20년 전인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때 선배 의사들과 한 약속을 적극적으로 지키지 않았고, 이후에도 의료계와 지속적인 마찰을 겪은 정부의 말은 명문화하지 않는 이상 믿을 수가 없다는 것.

이는 정부와 의료계가 그동안 어떤 관계였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여기에 젊은의사들은 같은 정책이라도 받아들이는 무게감이 선배들과 달랐기 때문이란 얘기도 있다.

서울의 한 개원의는 "의대생 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학습했기 때문에 불공정에 대한 반감이 누구보다도 굉장히 컸을 것"이라며 "파업의 계기가 된 의대정원 증원과 공공의대도 절차적으로 불합리 하다고 판단해 기성세대보다 분노를 더 많이 느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우리 사회 젊은이들은 전반적으로 중장년 세대가 겪은 경제적 번영을 자신들은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에 살고 있다"며 "의료계도 이번 정책에 있어서 별 관심이 없는 기성세대 의사와 발등에 불이 떨어져 어쩔 줄 모르는 신세대 의사간의 갈등이 투영됐다"고 덧붙였다.

즉,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시작했지만 의사 선·후배 사이 혹은 생각이 다른 의사들끼리의 갈등을 수면 위로 불러일으킨 발판이 됐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다수의 선배 의사가 응원이나 기부금을 통해 투쟁을 지원했을 뿐 실질적인 도움을 준 사례는 많지 않고, 심지어 기성의 대표나 다름없는 의협이 젊은의사를 패싱한 것은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 한다는 성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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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을 요구한 한 젊은의사는 "기성세대 의사와 젊은의사가 이번 단체행동을 바라보는 시선의 온도 차이는 극명했다고 생각한다"며 "결과적으로 파업을 마무리 지은 것도, 피해보지 않은 것도 기성세대"라고 강조했다.

의료계의 한 원로는 이번 파업의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중재에 나섰지만, 세대갈등에서 오는 시각차이가 커 조율하기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원로는 "꼭 의료계만의 문제는 아니나 가치관이 전혀 다른 세대간의 갈등이 무엇인지 크게 느꼈다"며 "젊은의사들 입장에서는 직접 경쟁에 놓이게 될 자신들과 달리 선배의사들의 경우 정책의 파급 효과를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듯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통해서 풀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없다"며 "원로들이 나름 열심히 뛴다고 뛰었지만 서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의견차이가 있었던 것이 안타깝다"고 부연했다.

한편 어느 직역이든 구성원들 간에 일정한 수준의 불편함은 서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다.

경기도의 한 개원의는 "의료계 구성원들 간에 심각한 갈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입장이 서로 달랐던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서로를 해하거나 특별한 이득을 얻으려는 의도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의료계에 세대갈등과 이념갈등이 만연했다고 보긴 힘들다"며 "세대와 관계를 떠나 각자의 입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선택하는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전공의에 의존하는 수련병원 시스템 민낯 드러나
대형병원 서비스도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 입증

이와 함께 파업으로 인해 전공의가 장기간 떠나 있으면서 진료와 수술을 대거 축소하는 선택을 해야 했던 수련병원의 위태로운 시스템이 민낯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형병원의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가 사실은 수련을 가장해 저렴한 인건비로 인턴과 전공의들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제공될 수 있었다는 게 증명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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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단순히 의사 인력을 늘리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닌 국민이 원하는 높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어떤 인력 구조를 갖추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수도권의 한 병원장은 "애당초 우리나라에서 나름 대형병원이라고 불리는 곳들조차 전공의를 제외하면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의료취약지에 더 많은 의사를 배치하거나, 인력을 증원하는 것보다 시급한 일은 기존 의료기관들의 인력 구조를 재설계 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단, 국민이 바라는 질 높은 의료서비스의 지속 제공을 위해서는 적정부담과 적정수가를 기반으로 재설계해야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정부, 의료 문제 및 정책 다루는 예산부터 늘려야
의료계, 국민이 공감하는 정책 연구 꾸준히 늘려야  

그렇다면 이번 정책추진에서 정부의 패착과 의료계의 부족했던 점은 무엇일까?

일부에서는 정부가 의사를 마치 도구인 것처럼 인식해 정책을 추진하려 한 것이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등의 정책이 일종의 '볏짚'이라면 의료계와 구체적인 논의 없이 부실한 정책을 추진해도 괜찮다고 생각한 안일한 인식이 '불'을 지폈다는 것이다.

강남의 한 개원의는 "정부가 의사를 도구화해도 된다는 인식이 있으면 건강한 정책이 절대로 탄생할 수 없다"며 "애초에 전문가 집단으로 배려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고 비판했다.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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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의료 문제 및 정책을 다루는 영역에 좀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수도권 의과대학의 한 원로교수는 "의료기관이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시설, 장비, 인력, 전문성 습득 등에 적극적인 예산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며 "말로만 의료가 공공재적 성격을 가졌다고 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의료계 또한 온실 속에서 벗어나 사회에 관심을 갖고 우군을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그동안 의사들의 시야가 너무 좁아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고 본다"며 "의사 스스로가 국민에게 자율정화의 모습을 보이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정책 연구 등을 지속하면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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