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업저버 신형주 기자] 의대정원 확대로 인한 20여일 간 진통을 겪은 의료계의 파업 사태가 봉합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파업 사태를 중재해야 할 병원협회의 존재감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전공의들과 의대생, 전임의들이 의료현장을 떠나 파업을 시작한 것은 정부의 성급한 의대정원 확대 발표가 원인이다.

제대로 성숙되지 못한 의료정책을 갑작스럽게 발표하면서 의사협회를 비롯한 이해당사자인 전공의, 의대생들이 반발하면서 파업까지 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보건의료계의 최대 단체인 대한병원협회의 존재감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첫 단추를 잘못 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가 의대정원 확대 발표 이후, 병원협회 정영호 회장은 김강립 차관과의 간담회에서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를 찬성하며, 매우 감사드린다'는 말을 하면서 의료계의 공분을 샀다.

그 결과, 병원협회 부회장이었던 김영모 사립대병원협의회 회장과 고려대학교의료원 김영훈 의료원장을 비롯한 대학병원급 병원협회 임원들이 줄줄이 정 회장의 발언을 비판하면서 사퇴했다.

급기야, 대학병원급 병원장들은 중소병원계와 별개의 병원협회를 만들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병원협회는 현재 이번 파업사태가 잠잠해지길만을 조용히 관망하고 있다.

국립대병원장협의회, 사립대병원장협의회, 수련병원협의회 등 병원협회 소속 단체들이 전공의들의 파업에 찬성하면서도 의료현장의 어려움 호소하고 있지만 병원협회는 어떠한 성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병원협회는 교수, 봉직의, 전공의, 간호사 등 50만 보건의료인력을 거느린 최대 보건의료단체지만, 이번 사태에서 그 존재감에 걸맞는 역할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정부 입장에서는 의사협회의 파업 보다 응급환자 및 중증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병원계가 소속된 병원협회의 파업 여부에 더 긴장할 수 밖에 없다.

정 회장이 김 차관과의 간담회에서 의료계의 분위기를 파악해 조금 더 세련된 반응을 보였다면, 병원협회는 지금보다 훨씬 넓은 운신의 폭으로 중재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모 대학병원 A 병원장은 "이번 젊은 의사들의 파업 사태에 대한 키를 쥐고 사태를 진정시키는 역할은 병원협회의 몫이었다"면서 "하지만, 정 회장이 첫 단추를 잘못 꿰면서 병원협회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그동안 병원협회는 보건의료정책에 대해 뛰어난 정치력과 신중한 대응을 통해 실리와 함께 원만한 해결 방안을 제시해 왔다.

하지만 이번 극강으로 치달은 의대정원 확대 갈등에서는 그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했다.

아직 전공의 일부가 파업을 지속하고, 의대생들이 국시를 거부하는 등 여진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병원협회가 예전의 중재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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