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부 양영구 기자

[메디칼업저버 양영구 기자] 가끔 이 세상 어느 것보다 복잡하고 중요한 기계를 사용설명서 없이 쓰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바로 '뇌'다.

뇌는 슈퍼컴퓨터보다 더 정확하게 물체를 인식하고, 그 어느 인공지능(AI)보다 뛰어난 학습 능력을 자랑한다.

그런데 어떤 때는 문방구에서 파는 싸구려 계산기보다 곱셈을 못할 때도 있고, 어제 점심으로 뭘 먹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때 보면 뇌는 분석을 통해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나의 생존 확률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생존도구가 아닐까 싶다.

최근 우리나라는 무더위 만큼 뜨겁다.

코로나19(COVID-19)가 전국적으로 재확산되는 아비규환 속에서 의료계는 파업 중이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여러 보건의료정책 가운데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이 총파업에 나서게 한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의대생들도 나섰고 전공의, 전임의들은 더 적극적이다.

파업이 심각해지자 보건복지부와 의료계는 23일 협상 테이블을 펼쳤지만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24일에는 정세균 국무총리와 만나 실무협의를 통해 의견을 조율하자는 데 합의했지만, 정작 실무협의에서 복지부와 의료계는 또 다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양측의 공방이 계속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휴진·휴업 등 위법한 집단 실력 행사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며 경고성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호기심에 봤던 책에서 행동경제학에는 기존 선택에서 벗어나길 싫어하는 '현상유지 편향', 현재에 비해 미래가치를 과소평가하는 '쌍곡할인', 새로 얻는 것을 통한 행복보다 가진 것을 잃는 불행을 더 크게 느끼는 '손실회피 편향' 등의 이론을 접할 수 있었다. 

이 이론들을 보면서 어쩌면 뇌는 나 자신을 위한, 또 내 편을 들도록 만들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 

이성적 실천이 아니라 나와 너, 내 편과 다른 편, 친구와 적을 구별하기 위한 도구 말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가끔 내 편의 말은 언제나 옳고 정의롭지만, 상대편의 주장은 들을 가치도 없다. 

특히 내 편보다 더 중요한 존재인 나 자신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불쌍하지만 가장 정의롭고 옳다.

가만 보니 정부와 의료계 모두 생존에 유리하도록, 절대 합리적이지 않게 진화한 '뇌'를 제대로 사용하는 듯 하다.

이 시국에 정부와 의료계가 선택적 분노를 표출하고 엄포를 놓는 정치적 대처가 내 편을 가르고 그 정당성을 포장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뇌는 언제나 자신의 정당성을 가장 과대평가하기에 지금 나에게 가장 확실한 것이 어쩌면 가장 틀리고, 나에겐 상식이 어쩌면 가장 비합리적이고 위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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