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한 파업 23일에 최종 완성…일선 수련병원들 의료공백 체감
의협, 총리·여·야에 대화 제안…대전협, 국무총리와 면담 우선 실시
진정성 논의 시작…코로나19 대응에 참여하나 단체행동 철회는 아직

한 전공의가 지난 21일 건대입구역 인근에서 1인 피켓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기자
한 전공의가 지난 21일 건대입구역 인근에서 1인 피켓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기자

[메디칼업저버 정윤식 기자] 지난 21일부터 무기한 업무중단에 돌입한 대한전공의협의회가 파업 3일차인 23일 국무총리와 만나 진정성 있는 논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COVID-19) 확산세가 심상치 않은 현 시국을 고려해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진료에는 적극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단, 대전협은 전공의 파업 철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젊은 의사 자가격리, 병원과 거리두기'라는 슬로건으로 무기한 파업을 시작한 21일 오전 7시부터 국무총리 면담이 성사된 23일 오후 8시 30분까지 정부와 의료계가 3일 동안 기록한 팽팽한 줄다리기 과정과 일촉즉발의 상황을 되짚었다.
 

21일 오전 7시부터 인턴과 4년차 레지던트 업무중단

우선, 대전협 비상대책위원회가 사전에 구상한 로드맵에 따라 21일 오전 7시부터 전국 수련병원 인턴과 4년차 레지던트가 진료 현장을 떠났다.

이들은 평소 병원 내 환자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진료에 전념했지만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등 정부의 일방적 정책 추진과 불통에 젊은 의사들이 병원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와 그 절실함을 표현하기 위해 1인 릴레이 시위에 나섰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순차적 업무 중단을 실시하면서 홈페이지에 공지한 카드뉴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순차적 업무 중단을 실시하면서 홈페이지에 공지한 카드뉴스.

전국의 모든 전공의가 지정된 장소에서 약 30분씩 릴레이 피켓 시위를 통해 정부 정책을 전면 철회해야 한다고 외쳤다.

이와 함께 대전협 비대위는 국회와의 연속 간담회를 통한 '투 트랙(Two Track)' 전략으로 젊은 의사들의 단체행동에 당위성을 높였다.

앞서 18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자와 만난 이후, 20일에는 이종성 미래통합당 의원, 21일에는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22일에는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자와 연속 간담회를 연 것이다.

하지만 이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코로나19의 전국적 확산을 막는 것이 우선이라며 전공의 업무 복귀를 요청했다.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해찬 대표는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지금 상황에서의 파업은 전혀 온당치 않다"며 "정부는 파업을 결행한다면 어떤 타협 없이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전협은 이해찬 대표의 발언이 '유감'이라며 오히려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당 대표가 당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등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1일차, 병원 진료 큰 문제 없었지만...

의·정 갈등은 풀릴 기미 보이지 않아

이와 관련 일선 수련병원들은 인턴과 4년차 레지던트만 이탈한 파업 1일차이기 때문에 진료에 큰 어려움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으나, 장기화 될 경우에 닥쳐 올 의료공백은 피할 수 없다며 불안감을 나타냈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인턴과 4년차만 빠져나간 파업 1일차에는 교수와 임상의의 백업으로 특별한 어려움이 없었다"며 "장기화 대비책에 대해서 논의 중"이라고 언급했다.

의협 조승국 공보이사가 의사 면허번호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는 모습.(페이스북 갈무리)

수도권의 또 다른 대학병원 관계자도 "진료할 수 있는 의료진이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데 앞으로가 걱정"이라며 "진료와 입원 예약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파업 1일차 오후, 대한의사협회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먼저 정책을 전면 철회하면 파업을 철회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피력한다.

의협 최대집 회장은 "정부가 직접 정책을 철회하지 않으면 예정대로 26일~28일 전국의사 총파업을 진행할 것"이라며 "만약 정부가 먼저 정책을 철회한다면 총파업을 잠정 유보하겠다"고 전했다.

이와 별개로 온라인상에서는 정부가 파업에 참여한 전공의들을 향해 '의사 면허 정지' 가능성을 시사하자 '내 면허부터 정지하라'며 면허번호 챌린지가 활발히 이뤄졌다.

이 챌린지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내 면허번호는’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각자의 의사 면허증이나 의사 면허 번호를 쓴 종이를 들어 보이는 단체 행동을 말한다. 

의협 조승국 공보이사는 "페이스북에 국민을 볼모로 잡은 정부는 젊은 의사들에게 의사 면허 정지를 운운하며 겁박하고 있다"며 "전공의 의사 면허를 정지하려면, 먼저 내 면허부터 정지하길 정부에 부탁한다"고 적었다.
 

22일 오전 복지부 박능후 장관 대국민 담화…의료계 설득

파업 2일차인 22일에는 3년차 레지던트가 인턴과 4년차의 뒤를 이어 파업에 동참한다. 

이에 이날 오전 11시, 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

대국민 담화 안에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를 전국으로 확대한다며 더 늦기 전에 의료인들이 의료 현장을 지켜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의료계가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에 대해서는 수도권의 상황이 안정된 이후 의료계와 논의 과정을 거쳐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박 장관은 "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의 결단에 뜻을 함께하고 국민을 위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며 "병원에서, 응급실에서,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생명을 구하는 의료인 본연의 역할로 복귀해 달라"고 말했다.

단, 의료인들이 진료현장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 필요한 조치를 모두 실행하겠다는 경고의 메시지도 동시에 남겼다.

그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은 국민이 정부에 부여한 최우선적인 의무이기 때문에 만약 의료인들이 진료 현장을 지키지 않으면 이를 엄격하게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장관의 이 같은 발언에 대전협은 또 다시 격하게 반응하며, 서로의 입장을 좁히기에 충분하지 않은 발언임을 지적했다.

대전협은 '박능후 장관의 대국민 담화문에 대한 입장'이라는 성명서를 통해 "부디 일방적 통보 방식을 버리고 함께 논의를 시작하자"며 "수도권 코로나19의 안정 이후에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모호한 표현과 말장난은 그만두고 국민을 위해 협력할 때"라고 언급했다.
 

선별진료소 문 닫는 곳도…의대협 수어 악용 논란 공식 사과

전공의 무기한 업무중단이 2일차에 접어들면서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실시하는 선별진료소를 닫는 곳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가톨릭대서울성모병원이 선별진료소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공지한 모습.
가톨릭대서울성모병원이 선별진료소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공지한 모습.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은 '파업으로 인한 의료인 부족으로 코로나19 검사를 시행하지 않습니다'라는 공지를 병원 응급실 입구에 부착했다.

정부는 서울성모병원 같이 선별진료소를 운영하지 못하는 사례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 중임을 밝혔다.

중앙사고수습본부 윤태호 방역총괄반장은 "가톨릭대서울성모병원처럼 선별진료소를 운영하지 못하게 된 병원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고 있다"며 "단지 전국 보건소의 선별진료소는 아직 닫은 곳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날 젊은 의사 협의체 중 하나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가 수어를 악용했다는 논란에 휩싸여 공식 사과를 하게 되는 일도 발생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의대협은 대전협과 함께 배수의 진을 치고 정부 정책 철회를 최전선에서 외친 의대생들로 이뤄진 협회로, 파업 기간 동안 '덕분이라며 챌린지' 포스터를 배포하고 회원들에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할 것을 권고했다.

'덕분이라며 챌린지'는 정부가 코로나19 방역 참여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존경한다'는 의미의 수어를 사용해 전개한 '덕분에 챌린지'를 뒤집어 차용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농아인협회가 '농인의 수어를 악용하지 말라'고 촉구하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덕분에 챌린지'의 취지를 훼손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등 논란이 일었다.

논란이 된 '덕분이라며 챌린지' 손 모양 피켓.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기자
논란이 된 '덕분이라며 챌린지' 손 모양 피켓.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기자

특히, '덕분이라며 챌린지'에 쓰인 손 모양은 수어 사전에 존재하지 않으며 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남을 저주한다'는 뜻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농아인협회는 "의사들의 이익에 농인의 수어를 악용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이에 의대협은 22일 "이 챌린지는 코로나19 방역이 의료진 덕분이라며 추켜세우던 정부가 정작 의료정책에 의사들의 의견은 반영하지 않은 실태를 알리기 위함이었다"며 "수어 사전에 없는 손 모양이라도 기존의 수어와 대비돼 농인들에게 상처를 주게 됐다"고 사과했다.
 

23일 전공의 파업 완성…일선 병원들, 의료공백 서서히 체감

파업 3일차인 23일, 1년차와 2년차 레지던트까지 파업에 동참하면서 대전협 비대위의 단체 행동이 완성됐다.

전국 전공의들이 23일 모든 전공의가 파업에 동참하게 됐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가운을 벗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사진 위쪽은 해운대백병원, 아래쪽은 부산대병원.  

이날 오전에는 전국 수련병원 로비 등에서 전공의들이 가운을 벗는 퍼포먼스가 열렸다.

단계적으로 시행한 전공의 업무 중단에 모든 연차의 전공의가 참여했다는 것을 대내·외로 알림과 동시에, 정부의 정책이 철회될 경우 언제든지 진료 현장으로 돌아오겠다는 의지를 품은 행위였던 것이다. 

반면, 전공의가 떠난 수련병원들은 3일차에 접어들면서 의료공백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당장 외래 진료와 입원을 평소보다 줄이고 경증이나 시술의 경우 수술 일정을 조정하거나 분산한 것이다.

아울러 세브란스병원 등 일부 상급종합병원은 응급실로 오는 중환자를 받지 못한다며 신규 환자 유입을 줄이는 경우도 있었다.

한 사립대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파업이 장기화되는 마당에 전임의까지 파업에 참여하게 되면 평소보다 훨씬 진료를 줄일 수밖에 없다"며 "예약을 줄이고 중증 외의 수술 일정을 조정하고 있지만 의료공백을 피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의협, 23일 여·야에 긴급 간담회 개최 공문 발송

23일 오후 의협은 코로나19가 예상보다 심각하다고 판단, 국무총리와 국회 여·야당에 긴급 간담회 개최를 제안하는 공문을 보냈다.

의협 김대하 대변인은 "엄중한 위기 사태를 맞고 있는 코로나19와 관련해 의정간의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라며 "의대정원 확대, 첩약 급여화, 원격의료 추진, 공공의대 신설 등 4대악 의료 정책에 대해 대화를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자고 긴급 간담회를 제안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이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만남을 제안한 것"이라며 "엄중한 현 상황에서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알렸다.

이에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의협의 공문에 응답하고 의협 최대집 회장, 서울시의사회 박홍준 회장 등과 국회에서 20분가량 비공개 면담을 진행했다.

이어 정세균 국무총리와 의협과의 만남은 24일(오늘) 오후 2시로 예정됐다.
 

의협보다 앞서 국무총리 만난 대전협…진정성 있었다?

의협이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는 동안 대전협은 의협보다 먼저 정세균 국무총리와의 만남을 진행했다.

이날 대전협과 국무총리와의 면담은 오후 8시 30분에 시작해 약 2시간 30분가량 실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총리는 비공개 면담 시작 전 모두발언에서 "도움을 주기 위해 전공의들이 결단을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정부도 상응하는 조치를 잘 취할 것"이라고 했으며, 이에 대전협은 "결론이 나는 날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대화의 시작이자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면담 이후 24일 0시경, 대전협 관계자는 "정부가 전공의를 포함한 의료계와 진정성 있는 논의를 시작했다"며 "엄중한 시국을 고려해 전공의들이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진료에 적극 참여하기로 했으나 단체행동 철회를 의미하진 않는다"고 짧게 평했다.

한편, 대전협과 국무총리와의 면담에는 박능후 복지부장관, 구윤철 국무조정실장, 문승욱 국무조정실 2차장, 김성수 국무총리 비서실장, 장상윤 사회조정실장, 김영수 공보실장, 대전협 박지현 회장, 김진현·서연주 부회장, 김형철 대변인, 김중엽 서울대병원 전공의협회장 등이 참석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