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호 회장 '환영' 발언 후폭풍...임원 6명 줄줄이 사퇴
사립대병원협회·지역의사회, 병협 공개비판 나서

지난 14일 여의도 공원에서 열린 '4대악 의료정책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총파업 궐기대회' 현장

[메디칼업저버 김나현 기자]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방침에 일찌감치 찬성입장을 밝혔던 대한병원협회가 이를 반대하는 다른 의료단체로부터 비판 여론을 받으며 난감한 입장에 처한 모습이다.

먼저 지난달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오는 2022년부터 10년간 한시적으로 의대 정원을 늘려 총 4000여명의 의사 인력을 추가로 양성하고, 공공의대를 확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대한의사협회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총파업 등 강경대응을 경고한 반면, 병협은 당정협의의 발표에 같은 날 환영의 입장을 즉각 밝혔다.

협회는 "정부의 400명 의대 입학정원 증원은 의료현장에서 의사 수급 부족 문제를 개선하기에 충분치는 않지만, 이제라도 의료 현장의 고충을 헤아려 의사 인력 확충의 방향성을 제시한 것은 다행"이라고 했다.

지난 5월 병협 정영호 회장이 직무개시식을 갖는 모습.

병협 정영호 회장은 지난 병협 회장 선거에서 의사인력 증원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만큼 더욱 적극적으로 환영의 입장을 취했다.

특히 정 회장은 지난 12일 보건복지부 김강립 차관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의대정원 확대 방침으로 병원의 인력난이 해소될 수 있다는 취지의 적극 찬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에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사립대학교 의료원장 일부가 병협 임원진에서 사퇴하는 등 병협은 내부 갈등에 휩싸였다.

병협은 지난 4월 정 회장이 당선된 후 12명의 부회장, 20명의 상설위원장으로 집행부를 꾸린 바 있다.

병협에 따르면 지난 13일 대한병원협회 임원이었던 김성덕 중앙대의료원장, 김영모 인하대의료원장, 김영훈 고대의료원장, 박종훈 고대안암병원장, 유경하 이화의료원장, 이태연 날개병원장 등 6명이 최근 병협 임원직을 사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모두 병협이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으며, 사퇴 이후에도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병협 깊이 반성하라" 병협과 선긋기 나선 의료계 단체들

병협 임원직을 사퇴한 김성덕 의료원장이 회장을 맡고 있는 대한사립대학병원협회는 병협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협회는 지난 14일 오전 임시 이사회를 개최한 후 공공의대 설립계획 등 정부의 정책에 대해 전국 67개 사립대 병원의 입장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는 지난 18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구체적 대책 없는 정책 제안에 대해 협회 내는 물론 의료계 각 직역과 충분한 의견수렴 절차도 없이 조건 없는 찬성 입장을 밝힌 병협은 깊이 반성하라"라고 촉구했다.

이어 정부를 향해서도 "의대 정원 증대, 의대 증설 문제는 각 대학에 상상을 초월하는 재정적 부담, 인력난, 시설 및 장비 난을 초래하는 문제"라며 "복지부, 교육인적자원부, 기획재정부 등 정부 각 부처는 물론 교육의 당사자인 대학과 병원의 의견수렴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정책임을 직시하라"고 비판했다.

병협 임원진에서 사퇴한 김영모 의료원장이 이끌고 있는 사립대학교의료원협의회도 같은 날 의대증원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며 병협을 언급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의대증원을 한다 해도 필수의료 인력 부족 및 지방의료 공백 해소 등 목적 달성을 위한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방안을 먼저 제시 후 추진해야 한다"며 "현재의 의대증원 계획은 이러한 의료계의 우려가 반영되지 않은 일방적인 정책이므로 원점에서 재논의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어떠한 경우에도 국민 보건 건강이 위협을 받아서는 안 되고 정부와 의료계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한다"며 "의협과 병협은 직종별 연합 단체로서 현 사태와 관련해 자중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지역의사회도 병협의 행보에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경남도의사회는 지난 13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병협이 회원의 총의 없이 복지부에 찬성 의견을 밝힌 것은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대한제국을 일본에 팔아먹은 자들과 무엇이 다른가"라며 "정 회장은 의사를 의료전문가로 생각하기보다 병원 이익을 위한 부속품처럼 여기고 있기에 정부 정책에 동조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현재 병협에서는 이러한 목소리와 의사 총파업에 대해 별다른 공식 입장을 내고 있지 않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의료계는 의견 통일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병원장은 수익을 내는 경영자 입장이라 의사수를 늘려야 한다는 것에 어느 정도 동의할 것"이라며 "다만 상급종합병원, 개인병원 등 다양한 종류의 병원이 있기 때문에 어떤 병원을 운영하느냐에 따라 의견 통일이 되기 힘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사수를 정말 늘려야하는가 부터 원점에서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며 "병협에서 입장차이가 있는 병원의 모든 의견을 수렴하고 논의하는 과정이 다소 부족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도권 중소병원장은 "병협에서는 입장을 취하는 것보다 경과를 보는 것처럼 보인다"며 "병협 내에서 의견을 모아가는 과정에서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안이 제시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의대정원 확대가 정 회장의 공약이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며 "의대정원 확대와 관련해 과정상에서 보완이 필요할 수 있어도 가야 할 방향의 논의는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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