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휴진한다" 몰래 문 연 동네의원...서울시의사회장 의원도 진료

대한의사협회는 14일 의대정원 증원 정책에 반발, 집단휴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날 집단휴진에 참여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진료한 의료기관도 많았다. 정상 진료를 진행한 동네의원의 모습.
대한의사협회는 14일 의대정원 증원 정책에 반발, 집단휴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날 집단휴진에 참여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진료한 의료기관도 많았다. 정상 진료를 진행한 동네의원의 모습.

[메디칼업저버 양영구 기자] 대한의사협회가 14일 개원의를 중심으로 한 집단 휴진에 돌입했다.

보건당국이 지역의료 격차, 필수 진료과목 의사 부족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뜻을 재확인하면서 의협과의 협상이 물거품이 됐기 때문이다.

의협은 집단휴진 전날까지 개원가에 참여를 독려하고 나섰고, 휴진율이 31.3%(14일 오전 기준)에 이르렀지만 우려했던 의료공백 대란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네의원 중심 집단휴진에 의료공백 우려했지만...

이번 의료계 집단 휴진은 2000년 의약분업 사태, 2014년 원격의료 반대 이후 역대 세 번째다. 

2014년 당시 개원의 집단휴진 참여율은 의협 추산 49.1%, 복지부 추산 20.9%였다.

이날 전국 곳곳의 의원급 의료기관은 '병원 사정상' 또는 '여름휴가'를 위해 휴진한다는 안내문을 내건 채 문을 열지 않았고, 일부는 오전만 진료한 뒤 곧바로 문을 닫기도 했다.

때문에 일부 환자가 불편을 겪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진료 공백에 의한 큰 차질은 없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4일 기준 각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확인한 결과, 1차 의료기관에 해당하는 개원가 3만 3836곳 중 1만 584곳, 31.3%만 휴진신고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집단휴진을 진행한 14일, 정상적으로 진료 중인 동네의원들 모습.
집단휴진을 진행한 14일, 정상적으로 진료 중인 동네의원들 모습.

실제로 일부 동네의원은 14일 휴진하지 않은 채 정상적으로 진료하는 곳이 많았다.

의대정원 확대 등 정부의 의료정책 전반에 반발하며 집단 휴진이라는 강공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상당수 동네의원에서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아 휴진 참여율이 예상보다 높지 않았다. 

본지가 14일 30곳의 수도권 동네의원의 진료 유무를 확인한 결과, 하계휴가 일정을 포함해 진료를 하지 않는 곳은 8곳에 불과했다.

10곳 중 2곳(약 20%)만 집단휴진에 참여한 것이다.

이 가운데 총파업에 따른 집단 휴진을 명시한 곳은 2곳에 불과했다. 그나마 1곳은 오전에 진료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처럼 휴진율이 저조한 데는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밥그릇 챙기기'라는 비판 시선을 우려한 고민과 함께 동네의원이 겪는 어려움이 현실로 투영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생존 경쟁에 놓인 동네의원은 지역 주민들에게 '찍히면' 진료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휴진에 참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집단성향이 강한 의료계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의사들끼리 '위장 휴진'을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서 약 30%대 집단휴진 참여

집단휴진 참여율을 지역별로 보면 약 30%대(12일 기준)를 유지했다. 구체적으로 서울시와 강원도가 19%였고, 경기도 30%, 경남 32%, 충북 30% 정도로 조사됐다.

각 지자체들은 집단휴진에 대비해 비상진료체계를 가동, 비상연락망 유지 등으로 대응했다.

이처럼 전국 동네의원들이 집단휴진에 적극적이지 않은 가운데 지역의사회 수장 격인 서울시의사회장이 운영 중인 의료기관도 집단휴진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논란이 일 전망이다.

이날 본지가 서울시의사회 박홍준 회장이 운영 중인 청담동 소재 의료기관을 찾은 결과, 오전에 진료를 진행하고 있었다. 

서울시의사회 박홍준 회장이 운영 중인 청담동 소재 이비인후과는 14일 정상 진료를 진행했다.
서울시의사회 박홍준 회장이 운영 중인 청담동 소재 이비인후과는 14일 진료를 진행했다.

특히 이날 집단휴진에 참여, 진료를 하지 않는 것처럼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내부에서는 정상적인 진료가 이뤄지고 있었다.

이처럼 '위장 휴진'의 모습을 보이자 의료계 일각에서는 비판 목소리가 높다.

한 개원의는 "최근 전공의들과 간담회를 하며 투쟁 선봉에 서겠다는 그가 진료를 하고 있다는 게 충격적이다"며 "그를 믿고 투쟁에 참여한 서울시의사회 회원들과, 그에게 기댔던 의대생, 전공의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준 것"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또 다른 개원의는 "젊은의사들도 가세한 이번 대정부 투쟁에 의료계 지도자가 동참하지 않는 것에 실망을 넘어 분노한다"며 "이제라도 젊은의사 위주의 의쟁투를 만들어 성과를 얻을 수 있는 투쟁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박홍준 회장은 "저의 의원은 이미 파업이 결정되고 난 이후부터 모든 외래환자는 예약이 전면 취소된 상태였다"며 "거의 모든 직원이 파업당일 휴무인 상태에서 정상진료는 불가능한 상태이며, 입원환자를 위한 최소 기능 유지가 마치 평소와 동일하게 정상적인 외래진료를 하고 있는 듯 비춰지는 것에 대해 유감"이라고 해명했다.

실제로 서울시 소재 동네의원의 휴진율은 낮았다. 서울시에 따르면 14일 오전 10시 기준 19.1%의 휴진율을 기록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12일 이후부터 휴진율은 19%대 수준에서 머물렀다"고 설명했다.

 

政, 업무개시명령 엄포 놨지만...'휴가'로 소명 가능

앞서 복지부는 의료계가 집단 휴진을 예고하자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의료기관에 휴진 여부를 신고하도록 했다. 지역별로 일정비율 이상 휴진율이 초과하면 환자 진료 등을 위해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한 것.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인과 의료기관 개설자는 정당한 사유가 없다면 이를 따라야 한다.

이를 어기면 복지부장관이나 지자체장이 1년 범위 내에서 업무를 정지시키거나 개설허가 취소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또 재판을 통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휴진 신고에 부담을 느끼는 만큼 별도의 신고 없이 단순휴가로 휴진을 진행할 수 있어 집단휴진 참여 파악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편, 의료계 일각에서는 집단 휴진 등 대정부 투쟁이 장기화될 공산이 크다고 본다.

의협이 4대악 의료정책으로 규정한 △공공의대 설립 △한방첩약 급여화 △비대면진료 육성 등을 놓고 정부와 의료계가 타협접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의협은 정부가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2차, 3차 집단휴진도 고려하고 있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인력 공백이 계속되면 필수 진료과를 제외한 진료를 대폭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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