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협, 종주단체 의협보다 앞선 7일 오전 7시부터 24시간 파업 예고
의대협, 7일부터 14일까지 수업 및 실습 전면 거부…대전협 지원사격
발등의 불 복지부, "대화하자"…수련병원은 대책마련 긴급회의 돌입해
박지현 회장, "의대정원 확대 전면재검토 외에는 대화 없다" 강경 의지

대한전공의협의회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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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정윤식 기자] 쉽사리 발화하지 않던 대한의사협회의 총파업 불씨가 전공의들로 인해 의료계 전역으로 빠르게 옮겨 붙는 모양새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오는 7일 전국 전공의 업무 중단을 예고했기 때문인데, 의료계 종주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 꾸준한 총파업 경고에도 흔들림 없이 정책을 추진해온 보건복지부마저 전공의들의 강경한 모습에 긴장한 상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사실상 젊은 의사들이 총파업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며 의협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총파업과 같은 집단행동을 통한 대정부 투쟁에 있어서 전공의, 병원계, 의대 교수들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 의협 단독으로는 동력 확보가 힘들다는 것을 재차 보여준 것 같아 아쉽다는 의견도 있다. 
 

"의대정원 확대 전면재검토 외에는 타협 없다"

우선 대전협은 오는 7일 오전 7시부터 다음날(8일) 오전 7시까지 24시간 업무 중단에 나설 채비를 마쳤다.

지난 1일 대전협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전국 전공의 대표자 회의에서 1개 단위 병원 기권 외에 참석한 전국의 모든 수련병원이 업무 중단을 의결했다.

당초 대전협은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 분만실, 투석실 등 필수유지업무 진료과 전공의는 제외하기로 했으나 갑작스럽게 입장을 선회, 이들까지 포함한 전 영역 전공의의 업무를 전면 중단하기로 하면서 군불을 지핀 상황이다.

단체행동 장소는 서울, 경기·인천, 강원, 제주, 대전·충청, 광주·전라,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 8개 지역별로 상이하고 이들은 야외 집회 후 헌혈릴레이와 철야 정책토론 등의 실내행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특히, 대전협은 매년 8월 중순에 실시하는 차기 회장 선거(제24대)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2014년 3월 10일 전국의사총파업 당시 의협회관에서 참석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모인 전공의들 (메디칼업저버 DB)

현재 입후보자 등록이 완료됐으나 대전협이 비상대책위원회 체계로 전환됨에 따라 회장 선거 일정까지 미루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즉, 총성만 울리길 기다릴 뿐 투쟁과 단체 행동에 나서기 위한 모든 준비를 갖춘 셈이다.

일찍이 대전협은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정원 확대 등을 두고 복지부, 여당 지도부, 보건복지위원회 위원 등과 정책의 문제점을 진단하기 위한 목적의 간담회를 추진했으나 무산됐다.

무산된 이유에 대해서도 듣지 못해 애초에 소통할 생각이 전혀 없던 게 아니냐는 전공의들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 이유다.

대전협 박지현 회장은 "7일 이전에 의대정원 확대 및 공공의료 정책안을 두고 전면재검토 하겠다는 것 이외에는 정부와 일절 대화하지 않겠다"고 밝혀 전국 전공의 단체행동 돌입이 사실상 기정사실화 됐음을 알렸다.
 

의대생도 대전협 지원 사격 결정…수업·실습 거부

전공의와 함께 또 다른 젊은 의사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의대생들도 의대정원 확대에 반발, 수업 및 실습 거부를 통해 대전협에 힘을 싣기로 했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조승현 회장은 지난 3일 의대협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심사숙고 끝에 의대협 집행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한다'고 밝혔다. 

조 회장에 따르면 전국 의과대학 40개 단위 의대생은 전국 전공의가 업무를 중단하는 7일부터 일주일 후인 14일까지 수업과 실습을 전면 거부한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로고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로고

이를 빌미로 학칙 등 교내 내규에 명시된 방식 이상으로 유무형의 압력 및 불이익을 주는 의과대학은 단위 명을 공개하겠다고 엄포까지 놓았다. 

앞서 조 회장과 의대협 이사진은 지난 1일 광화문 광장, 청와대, 헌법재판소, 국회의사당,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시위를 진행한 바 있다.

의대생은 아직 의사 면허가 없기 때문에 총파업에 동참할 수 있는 방법에 한계가 있으나, 학생 신분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방식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조 회장은 "전공의 파업이 확정되면서 의대협도 수업 거부와 실습 거부를 통해 화력을 더하자고 결정됐다"며 "항상 긴밀하게 논의하는 대전협과 함께 로드맵을 짜고 협업할 계획이니 양옆 동기와 선후배의 손을 잡고 참여해 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이들의 맏형인 의협은 해당 열기를 이어받아 △첩약 급여화 △의대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원격의료 등을 4대 악법으로 규정하며 대정부 요구사항을 발표, 오는 12일 정오까지 정부의 공식적인 답변이 없을 경우 14일 제1차 전국의사 총파업을 단행할 방침이다.
 

발등에 불 떨어진 政, "대화로 풀자"…대체인력 논의 병행

전공의를 시작으로 전국 의사 총파업의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자 정부는 지난 2일 대전협, 의협 등 의료계와 대화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정부가 하고 있는 정책의 불가피성과 필요성을 설명하겠다"며 "시행 과정에서 의료계의 입장을 반영할 부분이 있으면 협조 속에서 정부 정책이 추진될 수 있도록 마음 터놓고 대화하겠다"고 제안했다.

중앙사고수습본부 손영래 전략기획반장도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은 예상치 못한 수요가 있을 수 있는데 필수분야까지 전공의 인력을 뺀다면 환자들에게 큰 피해가 될 수 있다"며 "대전협과 다시 대화를 하면서 이 부분을 설득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일선 전공의들과 대전협은 이 같은 복지부의 대화 요청에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의료계와 정부는 정책 결정을 두고 평행선을 달린 경우가 많았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1년만에 재개된 의정협의체의 의협 협상단(왼쪽)과 보건복지부 협상단 모습.  

박지현 회장은 "대화를 통해 현재의 교착 상태를 해결하자는 정부 측의 제안은 이미 대전협이 수개월 전부터 주장한 것"이라며 "집단행동이 눈앞에 다가오자 늘어놓는 정부의 변명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다른 대전협 관계자 A씨는 "우리는 대화를 통한 합의의 실마리를 찾길 바랐으나 정책 결정자들은 전공의 파업은 이미 예상된 바이고 결정된 정책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해 비통한 심정"이라며 "대화의 기회가 있었으나 의료계가 참석하지 않았다는 정부의 주장에 배신감을 느낀다"고 일갈했다.

정부는 대전협 설득과 별개로 전공의 업무 중단이 현실화 될 경우, 대체 인력과 수술 일정 등의 의료수요 축소 방안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손 반장은 "대한병원협회 등과 대체인력 확보 및 수술예약 일정 조정 등의 논의를 통해 함께 대응하려 하고 있다"며 "필수적인 분야의 전공의 인력을 줄이는 것은 국민에게 위해가 될 가능성이 크니 대전협이 다시 한 번 이 부분에 대해서 심사숙고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일부 수련병원들, 대책 마련 긴급회의 돌입
전공의 집단행동 이유 곱씹어 봐야 할 것

전공의 업무 중단을 대비해 일부 수련병원들은 이미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전공의들의 부재에도 의료 공백이 없도록 긴급회의를 진행하고 파업 참여율을 파악하는 등 적절한 방안이 무엇인지 찾고 있는 것이다.

서울소재 A 수련병원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전공의 파업 참여율이 어느 정도 되는지 조사하고 있다"며 "전공의들이 없어도 환자 진료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으나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B 대학병원 교수는 "응급실 등의 전공의는 하루만 없어도 공백이 크게 느껴질 만큼 중요한데 파업은 병원 입장에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3일 오전에 긴급회의에 들어가 전공의 파업에 대비한 병원 측의 준비사항을 점검했다"고 설명했다.

전공의 단체행동이 자칫 불법적 진료거부 담합이 될 수 있기에 이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휴가 사용을 권유하는 곳도 있다.

서울의 C 상급종합병원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응원하지만 병원 측에서는 전공의들의 파업을 적극 지지하지도, 적극 만류하지도 않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며 “다만, 파업으로 인한 혹시 모를 피해로부터 전공의를 보호하기 위해 되도록 휴가를 내고 참여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번 전공의 집단행동 예고를 두고 일선 의료계 관계자들은 본격적인 의협의 대정부 투쟁에 힘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6월 28일 정부가 첩약 건강보험 급여화 추진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의 집회 모습. (메디칼업저버 DB)
지난 6월 28일 정부가 첩약 건강보험 급여화 추진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의 집회 모습. (메디칼업저버 DB)

한 의료계 관계자는 "최대집 회장이 전공의 및 의대생 등 젊은 의사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의견 표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심경을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며 "정부의 악법에 대항하는 선배 의사들의 투쟁력에 전공의의 앞선 행동력은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환자 진료를 위해서라도 되도록 파업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취해온 전공의가 전면에 나서게 된 이유를 정부가 파악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전공의는 자신들이 의료현장을 떠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지 알고 있기 때문에 의외로 파업에 소극적이다"며 "그러나 이번에는 전공의들이 정부의 반복된 거짓말에 큰 배신감을 느낀 것이 초강수를 둔 도화선이 된 듯하다"고 평했다.

실제로 지난해 8월말 박지현 회장은 제23대 회장 당선 직후 "의협의 투쟁 방향이 전공의와 맞지 않는다면 동참하지 않을 수 있다"며 "그 뜻이 동일하다면 함께 하는 것일 뿐, 전공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할 것"이라고 소신을 밝히며 신중론을 펼쳤으나, 현재는 복지부가 간담회 등의 약속을 지키고 있지 않다며 날을 세우고 있다.

이 의료계 관계자는 "의협의 총파업은 매번 병원협회, 전공의, 의대 교수 등의 참여 없이는 반쪽짜리 집회가 된다는 한계를 보였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며 "정부와 병원계가 오히려 전공의 업무 중단 엄포에 가장 당황하고 반응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이런 현상은 여러 가지 의미로 굉장히 안타까우면서 아쉬운 일"이라며 "예정된 전국의사 총파업이 진행된다면 극대화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해 로드맵을 마련하는 것은 의협의 몫"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병원계의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대한병원협회 정영호 회장은 젊은 의사들이 파업하는 것은 안타까운 심정이지만, 병원계는 지난 10여년간 요구했던 의대정원 확대에 대해 찬성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정 회장은 "현재 수련병원들은 전공의들의 빈 자리를 교수진들이 대신해 진료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병협은 회원병원이 경영상 어려움을 호소하고, 지원을 요청할 경우 지원할 수 있도록 제반 사항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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