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 두고 전문가와 국회에서 지적 봇물 터져
질병관리본부 행정·연구·조직 모든 면에서 형식적인 형태 아닌 과감한 독립 필요하단 의견
이례적으로 대통령까지 나서 재검토 지시…차라리 질병관리처로 높이자는 주장도 나와

지난 9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질병관리청,
지난 9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질병관리청, 바람직한 개편방안은?' 정책토론회장 입구.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메디칼업저버 정윤식 기자] 코로나19(COVID-19) 탓에 촉발됐으나 앞으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는 말을 듣고 있는 질병관리본부의 질병관리청 승격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승격의 필요성까지는, 전문성과 독립성을 높이는 방향까지는, 전문가와 관계부처 간에 큰 이견이 없으나 승격 이후 조직 개편과정을 두고 행정안전부와 보건복지부가 과도한 욕심을 부리고 있다는 등의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보건연구원을 복지부로 이관하면서 질병청의 인원과 예산이 질본 때보다 못할 것이라는 우려 등이 그것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단순히 보여주기 식의 형식적인 형태로 질병관리청 승격을 진행할 바에는 현재의 질본을 그대로 두는 것이 낫다는 주장까지 전하고 있다. 
 

'독립은 과감해야 한다' 행정·연구·조직 등 과감한 개편 필요

행안부는 지난 3일 질본의 질병청 승격 및 복지부 복수차관제 등의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는 앞서 지난달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주년 특별 연설문을 발표하면서 세계표준 'K-방역' 시스템을 더욱 견고히 하기 위해 질병청 승격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그 의지를 공식화 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의료계 일각에서 행안부의 질병청 승격안이 빈 수레에 가깝다며 국립보건연구원 복지부 이관을 비롯해 문제점이 많다고 비판했다.

이에 복지부가 국립보건연구원은 감염병 연구만 하는 곳이 아니고 다양한 바이오헬스 산업 개발을 위해 질본의 본래 기능과 구분할 필요가 있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을 없어지지 않고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원점에서의 재검토'를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질병청이 국립보건연구원 복지부 이관 계획으로 인해 대국민적 쟁점이 됐지만,  연구뿐만 아니라 행정과 조직 구성 등에 모든 면에 있어서 과감한 개편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한림대강남성심병원 이재갑 교수(감염내과)는 "질병청 독립은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거버넌스, 연구, 지방행정 조직을 아우르는 정책과 시행 및 연구와 관련된 광범위한 문제다"라며 "인사권과 예산권의 진정한 독립을 위해서는 과감한 정책 기능의 이양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를 방문해 격려하고 있는 모습. (사진: 청와대 홈페이지 사진첩)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를 방문해 격려하고 있는 모습. (사진: 청와대 홈페이지 사진첩)

코로나19 대응을 통해 감염병 대응에 있어서 강화된 질병청의 필요성이 확인된 만큼 강력하고 효율적인 기관으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게 이재갑 교수의 주장인 것.

이어 서울의대 김윤 교수(의료관리학교실)는 "현재 법상으로 복지부장관의 업무이나 질본이 하고 있는 업무가 있는 등 복지부의 정책업무와 질본의 집행업무 역할이 제대로 분담돼 있지 않다"며 "질병관리청 설치부터 권역별 질병관리청의 설립, 시·군·구 보건소와의 협력까지 질병관리조직 통합을 통합 기능강화를 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특히, 국립보건연구원의 복지부 이관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적인 시선이 팽배하다.

이 교수는 "미국의 NIH처럼 보건의료 R&D 전체를 관장하는 구조로 갈 필요는 있겠지만 현 상황에서의 복지부 이관은 질본의 연구기능 뿐 아니라 정책기능을 훼손시킨다"며 "보건연구원을 복지부로 이관한다고 할지라도 국립감염병연구소만은 반드시 질병관리청 산하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과 행안부가 신설을 예고한 국립감염병연구소까지 복지부 산하로 가게 되면 질본 내 새로운 연구조직을 구성해야 하는데 중복의 소지가 생길 수 있고, 질본의 연구기능이 명목상으로만 남는 작은 조직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김윤 교수도 "보건연구원 복지부 이관 문제와는 별개로 이번 승격에 따라 필요한 연구 기능 수행을 위해 공중보건연구원을 질병청에 세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렇게 논란이 될 바에는 질병관리'처'가 낫지 않겠나?

질병청 승격을 넘어 질병관리처로의 승격이 있어야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한림대성심병원 정기석 교수(호흡기내과)는 "복지부에 반드시 복수차관제가 필요한 것은 확실하나, 이로 인해 보건 영역을 담당하는 차관이 질병관리청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아이러니함이 생길 것"이라며 "복지부와 질본이 모두 윈윈할 방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즉, 질병청이 소신 있게 감염병 관련 일처리를 추진하려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아야 하는데 복지부가 복수차관제를 도입하면 현 질본과 복지부의 상하 관계를 그대로 답습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인 것.

정 교수는 "복지부 복수차관제와 함께 질본의 역량을 강화하려면 '청'으로는 부족하고 '처'로 가야 한다"며 "그것이 국민을 위한 길이고 서로 간섭을 줄여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를 있끌 수 있는 방법이다"고 부연했다. 

지난 9일 국회도서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개최한 질병관리청의 바람직한 승격방안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의료계 관계자와 정부부처 관계자들.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지난 9일 국회도서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개최한 질병관리청의 바람직한 승격방안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의료계 관계자와 정부부처 관계자들.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이처럼 질병청 승격 논란이 지속되면서 해당 현안에 대해 국회에서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기 시작했다.

실제로 청 승격을 넘어 '처' 승격을 추진하는 법안이 여당에서 발의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지난 9일 이 같은 내용의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이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처럼 지속적인 역할과 조직 및 예산 확대를 통해 질병예방의 역량 강화는 물론 감염병 및 보건 분야의 중추기관으로 발전시켜, 감염병 환자 또는 감염이 의심되는 자의 관리에 대한 모든 권한을 부여하자는 것이 골자다.  
 

'왜' 승격 하려고 하는지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애당초 질병청의 필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한 계기는 코로나19의 장기화를 대비해 마라톤 준비를 해야 하기 위함인데, 이 기회에 그동안 못했던 정책을 시도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 기모란 교수(예방의학과)는 "현재 질본 체제에서 잘못되고 부족한 것이 어떤 영역이고 누구를 어떤 방향으로 키워 전문 조직화 할 것인지를 논의해야 하는데 정부부처가 무엇을 원하고 승격을 추진하고 있는지 굉장히 헷갈리는 상황"이라며 "정부 모토에 맞는 제대로 된 조직을 만들 것을 주문한다"고 말했다.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 예방의학과 기모란 교수(왼쪽)와 보건복지부 이선영 혁신행정담당관.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코로나19 초기 대응에 일정 부분 성공해 세계적으로 'K-방역'이라는 얘기를 듣고 있으나, 장기전으로 갈수록 민낯이 드러나고 있어 이 한계를 극복하려면 질병청 승격이 왜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곱씹어 봐야 한다는 의미다.

기 교수는 "지금의 질본은 역학조사만으로도 벅차 미국이나 유럽보다 상대적으로 코로나19 환자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데이터를 자세히 분석한 자료가 없고 아직도 수기로 정리할 정도로 미약한 조직이다"며 "외국과 달리 재생산지수(R) 등을 발표하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 직접적인 이해관계 정부부처인 행안부·복지부·질본은 '대통령의 지시로 재검토를 하고 있다'는 형식적인 답변만 전할 뿐, 논란 이후의 논의 과정에 어떤 진척이 있는지 등은 특별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

복지부 이선영 혁신행정담당관은 "질본의 청 승격은 보건의료 특성에 맞게 우수한 방역관리체계를 확립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예산 자율성과 조직역량이 강화될 수 있는 정부안이 다시 만들어지면 추가적인 논의를 할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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