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부 정윤식 기자
취재부 정윤식 기자

[메디칼업저버 정윤식 기자] 2021년도 수가협상이 끝났다. 결과적으로 의원과 병원, 치과의 결렬로 다소 허무하게(?) 끝났다.

전례가 없던 3개 유형 결렬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끝난 이번 수가협상의 주인공을 꼽으라면 단연 재정운영위원회다.

물론, 올해뿐만 아니라 매년 수가협상의 열쇠를 재정위가 쥐고 있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이번 협상에서의 존재감은 남달랐다.

판을 쥐고 흔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여의도에서 열린 첫 상견례 자리부터 최종 수가협상 날까지 공급자단체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의료기관의 어려움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정위는 '공급자와 가입자 모두에게 부담인 코로나19를 배제하자는 얘기까지 나온다'며 사실상 고려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밝혔다. 단, 사회적 합의의 문제이기 때문에 일말의 여지가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이 같은 발언에 공급자들이 발을 동동 구를 때쯤, 갑자기 재정위는 가입자간의 의견이 모두 달라 갈등이 심하긴 했으나 코로나19를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협상할만한 수치의 추가재정소요분(밴딩)을 제시했다고 운을 띄웠다.

여기서도 재정위는 단서를 달았다.

"공급자단체 입장에서는 그 규모가 충분하지 못하다고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즉, 과장을 조금 더해 표현하자면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코로나19를 반영하려고 신경을 썼어. 그런데 이 정도로 너희가 만족할지 솔직히 모르겠어'라는 희망고문 같은 발언이다.

이때부터 공급자들의 셈법은 복잡해졌을 것이다. 협상 전에 밴딩을 공개하지 않는 이상 재정위의 결정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가늠할 길이 없어 걱정 반인데 코로나19 상황을 일정부분 고려했다고 하니 기대도 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최종 밴드는 지난해 1조 478억원보다 약 1000억 낮아진 9416억원에 평균 인상률 1.99%. 이마져도 최초 제시된 인상률 1.7%에서 0.29%가량 올라간 규모다.

공급자단체는 최초 밴드 규모가 밤샘협상을 거치면서 상당한 상승폭을 갖게 된다는 학습효과 때문에 이번 협상에서도 밤샘 버티기를 염두에 뒀을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단체별로 10번이 넘는 건보공단 협상단과의 밤샘 만남 이후 드라마틱하게 밴드가 5000억원가량 상승한 바 있다.

하지만 올해 협상에서는 재정위가 공급자단체와 건보공단이 밤샘협상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직접 도와주려(?) 한 듯, 3일 새벽 1시경 최종 밴드를 9416억원으로 고정하고 더는 협상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공급자를 설득하고 협상을 해야 하는 건보공단의 몫만 남겨둔 채 말이다. 이후부터 협상은 속도감 있게 진행됐다. 

더 이상 건보공단이 공급자단체에 보여줄 카드도 없고, 지난해와 같은 드라마틱한 연출도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대한의사협회가 새벽 2시 30분경 버텨봤자 곳간이 커질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결렬을 선언했다. 

이후 시간의 차이는 있으나 대한병원협회와 대한치과의사협회도 연달아 결렬 의사를 밝혔다.

여기서부터는 기자의 상상이다. 건보공단은 새벽 1시 재정위가 최종 밴드를 제시하고 귀가하면서 의원과 병원, 치과의 수가협상 결렬을 직감했을 것이다. 

또한 이들 세 유형의 협상단도 지난해와 같은 밤샘이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이미 내려 결렬 선언을 언제 할지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의협 박홍준 수가협상단장이 "건보공단에게 계속 협상해보자고 했지만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언급한 부분과 병협 송재찬 수가협상단장이 "재정위가 코로나19에 따른 의료계의 어려움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한 것처럼은 보인다"라고 말한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곰곰이 되짚어보면 올해 수가협상은 유독 처음부터 끝까지 재정위의 계획안에서 공급자단체와 건보공단이 움직였다.

코로나19라는 빅 이슈를 안고 시작한 2021년도 수가협상이 여러모로 허무하게 끝난 이유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일방적 통보와 정해진 틀 안에서 공급자와 건보공단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밤샘협상이 아닌 협상다운 협상의 판을 어떻게 같이 계획할 것이냐이다. 재정위의 계획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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