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연구팀, 레비티라세탐·리바록사반 복용한 심방세동 환자 분석한 첫 증례 보고
레비티라세탐 복용 후 일과성 허혈발작 발생…리바록사반 혈장 농도 감소
연구팀 "두 치료제 병용 안 돼…레비티라세탐 치료 필요하면 리바록사반 혈장 농도 확인해야"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항뇌전증제인 레비티라세탐(제품명 케프라)과 비-비타민 K 길항제 경구용 항응고제(NOAC)인 리바록사반(제품명 자렐토)을 병용하면 안 된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탈리아 페루자대학 Paolo Gresele 교수 연구팀의 환자 증례 보고에 의하면, 리바록사반으로 치료 중이던 비판막성 심방세동 환자는 레비티라세탐 치료 시작 후 리바록사반의 혈장 농도가 낮아졌다. 레비티라세탐 치료 후 리바록사반의 항응고 효과가 감소한 것이다.
이 환자는 소발작(absence seizures)이 나타나 레비티라세탐을 처방받았고 이후 리바록사반 치료에도 불구하고 일과성 허혈발작이 발생했다.
이번 증례 보고는 레비티라세탐이 리바록사반의 항응고작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사람에게서 처음 확인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증례 보고는 Annals of Internal Medicine 4월 14일자 온라인판에 레터형식으로 실렸다.
레비티라세탐은 칼슘, 글라이신, 감마아미노부틸산(GABA) 등에 작용해 과도한 신경발화(nerve firing)를 완화시켜 발작을 예방하는 치료제다.
동물 실험에 의하면, 레비티라세탐은 막수송 단백질인 P-당단백(P-glycoprotein, P-gp)을 유도한다(Front Neurol 2018;9:1067). P-gp 유도 약제는 리바록사반 등 NOAC의 혈장 농도를 저하시켜 병용 시 주의가 필요하다.
대한부정맥학회가 2018년에 발표한 '심방세동 환자에서 NOAC 사용 지침: 처방의 시작과 유지'에서는 강력한 P-gp 혹은 CYP3A4 유도 약제를 사용하는 경우 NOAC의 혈중 농도를 현저히 저하시킬 수 있어 이런 약제와의 병용은 금하거나 주의 깊게 사용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그러나 레비티라세탐과 리바록사반의 연관성을 사람에게서 확인한 근거는 없었다.
레비티라세탐 후 리바록사반 혈장 농도 최고값 162.2㎍/L→87㎍/L
연구팀이 보고한 환자는 69세이고 체중이 70kg인 비판막성 심방세동 남성 환자로 리바록사반(1일 20mg)으로 치료받고 있었다. 이 환자는 JAK2 양성 본태성혈소판증가증을 동반했다.
환자는 소발작 발생 후 경구용 레비티라세탐(1일 1500mg)을 복용했다. 몇 달 후 환자는 우측 하안면에서 마비와 관련된 구음장애(dysarthria)가 나타나는 등 반복적인 일과성 허혈발작(recurrent transient ischemic attack)이 발생했다.
연구팀은 리바록사반의 혈장 농도가 낮아졌는지 확인하고자 항-제10혈액응고인자 활성도(anti-Xa activity) 검사를 시행했다.
레비티라세탐 치료 2년 전, 환자는 리바록사반 복용 후 리바록사반의 혈장 농도 최고값(peak value)은 162.5㎍/L, 리바록사반 복용 전 최저값(trough value)은 19.3㎍/L였다.
이어 레비티라세탐을 몇 달 동안 복용한 후 같은 검사를 진행한 결과, 리바록사반 혈장 농도는 최고값 87㎍/L, 최저값 0㎍/L로 떨어졌다.
연구팀은 환자가 리바록사반의 치료용법·용량을 잘 준수했기 때문에, 혈장 농도의 변화는 레비티라세탐과 연관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환자의 생활습관 등을 고려해도 레비티라세탐 외에 다른 문제는 없었다는 것.
연구팀은 신경과 전문의와 논의해 환자의 레비티라세탐 용량을 줄이면서 P-gp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항뇌전증제인 라코사미드 치료 용량을 늘렸다.
레비티라세탐 중단 후 1개월째 평가 결과, 환자의 리바록사반 혈장 농도 최고값은 172.7㎍/L, 최저값은 3.7㎍/L, 중단 후 2개월 째에는 각각 174.6㎍/L와 40.2㎍/L로 파악됐다. 이와 함께 환자에게서 일과성 허혈발작이 나타나지 않았고 9개월 추적관찰 기간에 재발도 없었다.
"항응고제 복용 환자, 항뇌전증제 치료 결정 시 신중해야"
증례 보고에 따라 연구팀은 환자들이 레비티라세탐과 리바록사반을 함께 복용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만약 P-gp 유도제 또는 저해제 치료가 반드시 필요한 환자라면, 의료진은 레비티라세탐 치료 시작 전과 후의 리바록사반 혈장 농도를 평가해야 한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게다가 리바록사반을 포함한 NOAC은 P-gp 기질이라는 점에서 레비티라세탐이 다른 NOAC의 혈장 농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P-gp 유도제인 레비티라세탐, 카르바마제핀, 페노바비탈, 페니토인, 발프로산 등 항뇌전증제 역시 리바록사반의 혈장 농도를 저하시킬 수 있다. P-gp에 영향을 주지 않는 항뇌전증제에는 라코사미드, 라모트리진, 토피라메이트 등이 있다.
Gresele 교수는 "임상에서는 경구용 항응고제를 복용하는 환자에게 어떤 항뇌전증제를 처방해야 할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며 "항응고제의 항응고작용을 잠재적으로 방해할 수 있는 치료제를 투약해야 한다면, 환자의 항응고제 혈장 농도를 측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미국혈액학회 가이드라인에서는 리바록사반을 복용 중인 환자에게 P-gp 유도제 또는 저해제를 처방하면 안된다고 권고했다"며 "이러한 권고에 동의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번 환자 증례 보고는 레비티라세탐과 리바록사반의 약물 상호작용이 사람에게서 나타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 확인했다는 점에서 향후 다른 환자에게서도 이 같은 결과가 나타나는지 평가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증례 보고에 대해 미국 신시내티의대 Richard C. Becker 교수는 "의료진은 처방하는 약물의 특징, 위험, 혜택뿐만 아니라 잠재적인 약물 간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며 "의도와 달리 환자에게서 약물의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는 환자가 약물을 복용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약물 간 상호작용 때문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