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병의원 진단지연 답답증 해소

환자 예후판정부터 치료방향까지 신속·정확한 검사 서비스

국가 성인병·암검진 장려도 한 몫

정확한 진단 특히 중요


 불모지로 여겨졌던 병리과 개원이 최근 들어 크게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02년 6곳에 불과하던 병리과의원이 지난해 15곳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대학병원에서나 접할 수 있는 전문과목으로 여겨지던 병리과가 서울 6곳, 부산 1곳, 대구 4곳, 광주 2곳, 대전 1곳, 충남 1곳, 경남 1곳 등 각 지역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대한병리학회 김한겸 이사장(고려의대 교수)은 "병리과 개원이 증가하면서 병리과 전문의들의 개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병리과가 개원이 어려워 진로에 한계가 있었지만, 개원을 바라보고 의욕적으로 공부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어 학회로서도 희망적"이라고 말한다.

 병리과는 조직과 세포 및 체액에 대한 병리학적 진단으로 환자의 예후판정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 치료 방향에 도움을 준다. 생검 혹은 수술로 절제된 검체를 진단하는 조직병리검사와 세포도말표본을 판독해 암세포의 유무를 일차 선별하는 검사인 세포병리검사가 대표적이다.

 성인병, 암 등의 검사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를 타고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병리과 검사 및 역할이 커지고 있다. 이를 위해 대부분의 대학병원에는 병리과가 존재하지만, 병리과를 갖추지 못한 병원이나 중소병원들은 조직검사를 위해 타 기관에 의뢰를 하게 된다. SCL, 이원의료재단, 녹십자의료재단, 네오딘 의학연구소 등 대형 수탁기관이 존재하긴 하지만, 이로써도 다 충족되지 못하는 검사는 병리과의원이 담당하고 있다.

 2003년 광주에 개원한 포유병리과 정종재 원장은 "광주 지역에 병리센터가 부족해 병리 진단 대부분을 타지역에 의존하다 보니 많은 임상의사들이 진단 지연에 답답함을 호소하고, 병리의사와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곤 했다"며 개원 이유를 설명했다. 지역 병의원들에게 보다 신속하고 나은 병리진단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다.

 10년 이상 병리과를 운영하고 있는 S원장은 "조직검사는 진단의 마지막 결과를 진단하는 것으로,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며 병리 진단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특히 기계를 이용한 검사에 상당수 의존하는 혈액검사와는 달리, 조직검사는 병리과 전문의가 직접 판독해야 하기 때문에 검진 증가와 맞물려 병리진단을 필요로 하는 곳이 늘어나 개원 시장도 커졌다.

 그러나 숫자가 커지면 파이를 키울 수 있다는 생각의 흉부외과와는 달리, 병리과는 개원이 늘어난다고 해서 마냥 희망적으로 바라볼 수 만은 없다. 병리과의 고객은 환자가 아니라 병원, 의사인 터에 혼자 노력한다고 해도 파이 자체를 키우기 어렵다는 한계점을 안고 있다. 직접 환자를 검사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이나 대형 검사기관에서 환자를 검진하면 그중 조직검사 부분을 진행하는 병리과 특유의 역할 때문이다.

 따라서 각 대학 병리과장이나 병원 보직자들, 대형 수탁기관에 대한 영업력이 병원의 성패를 좌우하는 현실 속에서 얼마나 영업마인드를 갖고 노력해 나가느냐가 관건이다. 같은 의사의 선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현재까지는 상당수 학연으로 얽혀 있는 상황.

 실제로 대구 지역에 병리과가 4곳이나 존재하는 데는 경북대, 영남대, 계명대 병리과 교수 출신들이 개원, 각 학교의 수탁을 받고 있기 때문.

 그만큼 새롭게 개원하는 병리과 전문의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 자신이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영업망을 구축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S원장은 "병리과를 개원하면 학교를 비롯한 인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된다"며 "대부분 이미 지정된 곳이 있기 때문에 새로 개원한다 해도 당장 자신의 고객으로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조언했다.

 K원장도 어느 정도 자리는 잡게 됐지만, 지금까지 고객이 끊기는 등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K원장은 "한곳에서 오래 병리과를 운영하면서 남들은 잘된다고 생각하지만 혼자 속앓이를 해온 적이 많다"며 "병리과 개원 시장은 서로 뺏고 뺏기는 시장이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게다가 위암같은 중증 질환을 오진 판정했다며, 환자가 검사를 받은 병원이나, 환자로부터 소송에 휘말릴 뻔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병리과의 중요성과 수요 증대로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와 정부의 성인병, 암 검진 장려도 한몫 돕고 있다. 운영을 잘하고 있다고 소문난 S원장은 "스스로 뿐만 아니라, 전 직원들에게 고객에 대한 친절을 강조하고 있다"며 "신규 고객이 생기면 좀더 신경을 써서 한번 더 연락하고, 한번 더 방문한다"는 나름의 영업 노하우를 귀띔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진단. 환자가 병원을 옮기면 검사결과가 전국으로 돌기 때문에 오진은 결국 환자들 뿐만 아니라, 고객들이 알게 된다. 고객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정확한 진단을 해야 거래가 유지된다는 기본적인 신념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결과에 대한 세부 정보 제공에도 신경을 써서 고객들로부터 호평을 받는다면 금상첨화다.

 병리학회 김한겸 이사장은 "개원에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오진을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오진을 막기 위해서는 검사의 숫자를 알맞은 업무량에 따라 제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회 차원으로도 현재 유럽의 10분의 1에 불과한 수가 인상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 병리과 개원 시장 확대를 도울 생각이다.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재투자를 한다면 더욱 비약적인 발전을 거둘 수 있다. 검사에 필요한 새로운 기계 구입 등이 뒤따라야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으며, 대형 기관에만 집중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특히 검사 결과를 종이가 아닌, 전산으로 바로 입력되게끔 하는데도 비용과 의료법 문제가 만만치 않아도 병리과의 발전을 위해서 해낼 수 있어야만 한다고 원장들은 입을 모아 강조했다.

 개원이 불가능할 것만 같던 병리과. 꼭 필요하면서도 등한시됐던 그동안의 설움을 씻고, 의학계의 한줄기 꽃으로 자리잡을 거란 희망을 지닌 채 오늘도 정확한 진단을 위해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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