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어스 유럽 임상시험 일부 아·태로 이전 추진


"복잡하고 더딘 행정절차에 지쳤다"



스피드·질 갖춘 한국에 끌려

 지난주 서울서 개최된 류마티스관절염치료제 "Enbrel" 관련 행사(Enbrel AP Summit) 강연차 로버트 러폴로(Robert R. Ruffolo) 와이어스제약 R&D 책임자 겸 그룹 수석 부사장이 한국을 방문했다.

 세계적 다국적제약그룹의 최고위 임원진이 직접 방문했다는 것이 이례적이지만, 최근 한국 제약시장의 위치를 감안한다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신흥시장이 최근 다국적제약업계의 R&D 허브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폴로 부사장 역시 "아·태지역, 특히 한국이 와이어스의 임상시험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직접 참석을 결정했다"며 이번 방한의 주된 목적을 밝혔다. 더불어 타 지역 투자분의 절감액을 아시아로 돌릴 것이라는 보따리까지 풀어 놨다.

 와이어스가 최근 한국·대만·중국·홍콩에 임상시험을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때 새로운 거점이 이 4곳중 한곳이 될 가능성이 높다.

러폴로 부사장을 직접 만나 와이어스의 R&D 투자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 대한 견해 및 투자계획을 들어 봤다.
 
 세계적 제약사들이 신약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와이어스의 R&D 투자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 연간 30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전체매출 대비 17% 정도가 R&D에 재투자되는 것으로, 미국 제약업계의 평균(17.9%)과 일치하는 규모다. 수익으로 따진다면 전체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치다.

 투자 대비 생산성이 중요한 것 아닌가?

 - 와이어스의 강점이 바로 생산성이다. 2007년 6월 현재 모든 (시판전)임상시험을 마치고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품목이 총 9개에 달한다. 올해 또는 내년까지 승인될 것으로 기대되며, 이들 모두를 한국에도 소개하고 싶다.

 곧 승인신청을 앞둔 3상단계에 13개 품목이 대기하고 있으며, 임상개발의 모든 단계에서 풍부한 파이프라인을 갖추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바이오테크 품목만 떼어내 평가를 해봐도 전세계 4위, 백신은 2~3위 규모에 해당한다.

와이어스는 소분자·바이오테크·백신·단백질 부문에서 모두 블록버스터급 약물을 보유하고 있다.

 아시아, 특히 한국시장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지?

 - 그동안의 변화가 모든 것을 말해 준다. 2년 전만 해도 와이어스 전체 임상시험 환자의 75%가 미국과 유럽에서 모집됐다. 하지만, 올해는 35%에 그쳤다. 반면, 임상프로그램 참가비율이 5%에 불과했던 아·태지역 환자등록은 지난 4월에 목표치였던 25%를 돌파하며 새로운 R&D 거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한국 역시 3~4년전 본사의 글로벌 임상시험 참여 환자가 단 2명이었던데 반해 2007년 현재 모니터링 대상이 600명에 달할 정도다.

 이에 호주에 위치해 있던 아·태지역 임상시험본부를 상해로 옮기고, 한국·대만·중국·홍콩에 임상시험을 집중하고 있다. 아·태지역 25%의 등록환자 역시 이 4곳에서 대거 충원된다.

 향후 투자계획은?

 - 임상시험과 관련해 유럽에 실망했다. 더딘 환자등록과 관료주의로 인한 복잡한 행정절차가 문제다. 회사 차원의 과감한 변화가 필요했다. 이 지역에 분배된 일부 재원을 한국을 포함해 아·태지역으로 돌린다는 계획이 지난 4월 결정됐다.

 인력을 더 배치하고 인프라스트럭처를 확대할 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규모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유럽 어느 지역의 재원을 옮길 것인지 논의가 진행중이다.

 아시아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 3~4년전만 해도 아·태지역 임상시험이 대부분 호주에서 진행됐다. 당시는 신약 파이프라인이 크지 않아 문제가 없었지만, 작금의 현실은 다르다. 모든 임상단계를 포함해 와이어스의 파이프라인 품목은 총 70개를 상회한다. 이에 소요되는 임상시험을 위해서는 질과 보다 빠른 속도를 담보하는 새로운 환경이 절실히 요구된다.

 혹자는 아시아로 눈을 돌리는 이유가 저렴한 비용때문 아니냐고 묻는다. 비용은 주요인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해두고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등록을 보다 효율적이고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그간 개선이 있었으나, 여전히 우리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반면, 한국·대만·중국·홍콩 등에서 현재까지 진행된 임상시험은 환자등록을 제시간 또는 보다 앞서 완료시켜 주었다.

 질적인 측면은 어떤가?

 - 일부에서는 와이어스의 결정에 회의적 시선을 보냈다. 아시아 지역에서 질적인 측면이 담보되겠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틀렸음을 모든 결과가 말해 준다. 현재 한국·대만·중국·홍콩은 와이어스의 모든 임상시험에 참여하고 있다. 결과는 미국·유럽과 대등하거나 더 우수했다. FDA도 승인검토시 제출된 결과에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다. 회의적이었던 일부 제약사들도 이제 우리의 결정을 뒤쫓고 있다.

 와이어스만의 독특한 글로벌 임상시험 노하우가 있나?

 - "ECDC(Early Clinical Development Center)"로 불리는 초기임상개발센터가 핵심이다. 주로 2상임상에 적용되는데, 기존에는 200명의 환자등록을 위해 전세계 100~200여개 지역을 대상으로 삼았다. 이렇게 광범위한 지역에서 모니터링을 실시할 경우, 지역별 질적 편차를 극복하기가 힘들다.

 현재 전세계에 퍼져 있는 고밀도 환자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10~15개의 ECDC를 설립해 임상에 필요한 모든 환자를 모집하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기존과 비교해 환자등록 속도에서도 우월하며 지역간 질의 편차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ECDC의 절반에 가까운 6곳이 아시아에 집중돼 있다. 한국의 서울아산병원도 그중 하나다.

 현재까지 "Tygacil"(항생제) "Pristiq"(항우울제), "Torisel"(신장암치료제), "Viviant"(골다공증예방제) 등 모든 제품의 글로벌 임상시험을 ECDC에서 진행하고 있으며, 아주 탁월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한마디로 임상시험 슈퍼센터다.

 R&D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인은?

 - 물론 혁신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혁신도 환자에게까지 도달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주요장벽은 바로 임상시험을 완료하는 것이다.

미국 FDA와 유럽 EMEA는 갈수록 대규모 환자 대상의 장기간 임상시험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환자등록 속도를 앞당겨 임상시험 기간을 단축시키는 일이다. 이 요구에 아·태지역이 부응하고 있다.

 한국 제약산업의 R&D와 관련 조언을 해준다면?

 - 임상시험에는 엄청난 비용이 소요된다. 소규모 회사의 경우 약물개발을 완료하기가 더더욱 힘들어진다. 정부가 지원을 한다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현시대가 요구하는 신약개발에 필요한 모든 투자를 감당할 만큼의 여력을 가진 정부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21세기 성장의 주동력인 바이오테크 신약개발 연구의 최고 투자자는 바로 제약업계다.

 소규모 회사는 혁신적인 신분자물질의 개발과 이를 초기임상까지 끌고 가는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이후에는 임상시험에 필요한 자금력을 갖춘 파트너를 찾아야 할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기술력을 갖춘 대부분의 소규모 바이오테크 업체들도 이같은 동향을 따르고 있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