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측정 혈압 정상수치 비웃는

가면고혈압
그 비밀을 벗겨라


 고혈압은 아직 절반의 법칙(Rules of Half)의 지배를 받는다.

 환자의 절반 가량은 자신이 고혈압인지도 모르고, 알더라도 절반은 치료를 외면하고 있으며, 치료를 한다 해도 그 절반은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는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의 반 정도 만이 혈압이 제대로 조절되고 있다는 것인데, 여기에도 허점은 있다.

 가면고혈압이라는 특이적 병태 때문이다. 진료실에서 의사가 잰 혈압은 정상인데, 병원 밖에서는 혈압이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가면고혈압. 가면무도회장, 가면 속의 주인공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진료실 혈압만 가지고 따지면 가면고혈압 환자 역시 혈압이 제대로 조절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고혈압이라는 놈은 이 가면의 뒤에 숨어 "실제는 그렇지 않다"고 비웃는다.

 가면고혈압의 유병률은 10~20% 대. 그렇다면 혈압이 제대로 조절됐다고 믿고 있는 환자 가운데, 10~20%는 "실제 그렇지 않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국민건강을 지키는 일선에서 고혈압 극복을 위해 힘겹게 싸우고 있는 의사들은 이 말에 힘이 빠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면고혈압은 엄연히 존재하는 고혈압의 한 병태다.

 "침묵의 살인자" 고혈압이 쓰고 있는 이 가면의 정체를 벗겨 보자.

1. 가면고혈압 왜 무서운가

혈압조절 잘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모르는 사이 CVD 위험도 계속 증가

정상조절로 착각 환자군 10~20%
진성고혈압과 심장비대 정도 비슷
경동맥 경화반 비율도 같게 나타나


 고혈압 환자 A씨는 성공적인 혈압조절에 반해 표적장기 손상이 지속적으로 관찰돼 담당의사의 애를 태웠다.

 항고혈압제 치료로 혈압은 140/90mmHg 미만으로 적절히 조절할 수 있었으나, 1~2년간의 추적조사 결과 당연히 낮아져야 할 미세단백뇨 수치가 오히려 상승했던 것. 고혈압 환자의 표적장기 손상은 심혈관합병증 발생위험의 중요한 표지자(marker) 역할을 한다.

 담당의사는 진료패턴을 유심히 관찰한 결과, 이 환자가 대부분 오전에 내원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침 일찍 항고혈압제를 복용하고 약효가 정점에 이르는 9~11시 사이에 진료실에서 혈압을 측정하다 보니 수치가 낮게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결국 가정혈압과 24시간활동혈압을 측정했고, 환자의 진료실 외 혈압이 정상 경계치를 넘는다는 점을 발견했다. 진료실 혈압은 정상이나 병원 밖을 나서 일상생활에서는 혈압이 높은 가면고혈압(masked hypertension) 환자였다.

 진료실 혈압 만을 가지고 보면 이 환자는 혈압이 잘 조절된 성공적인 치료의 사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혈압이 제대로 조절되지 않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표적장기 손상이 계속 진행된 것이다. 환자의 예후는 결국 담당의사가 치료강도를 높인 후에 개선됐다.

가면고혈압이란

 위의 사례는 지금부터 그 면면을 파헤쳐 보려 하는 가면고혈압의 대표적 케이스다. 일상생활에서는 정상이지만 진료실만 들어가면 혈압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는 백의고혈압(white coat hypertension)과 달리 진료실 혈압은 정상인데 가정혈압이나 24시간활동혈압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을 보이는 고혈압의 한 병태다. 인지해야 할 것은 가면고혈압도 명백히 고혈압이라는 것이다.

 가면고혈압의 개념은 가정혈압이나 24시간활동혈압의 측정이 가능해지면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과거 혈압측정이 병원에서만 가능했을 때에는 "고혈압이다", "아니다"의 두가지 구분만 가능했다. 하지만, 진료실 외에서의 측정이 확대되면서 네가지의 분류가 가능해졌다. 현재 치료를 받고 있는 고혈압 환자들은 크게 "혈압이 완전히 조절되지 않는 그룹(진성고혈압)", "완전조절 그룹(정상혈압)", "진료실에서 조절되는 그룹(가면고혈압)", "진료실에서 조절되지 않는 그룹(백의고혈압)"으로 나눌 수 있다.

 특히, 가면고혈압은 겉으로는 정상혈압군(진료실 혈압이 정상범위 내에 있는 경우)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진료실 밖에서는 여전히 높은 혈압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일련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혈압 환자 가운데 혈압이 완전조절되는 경우는 50% 대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이 가면고혈압을 잡아내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10~20% 대에 해당하는 (가면고혈압)환자들이 완전조절 그룹에 포함될 수 있다. 이를 고려하면 혈압이 정상으로 조절되는 고혈압 환자는 30~40% 대로 더 떨어지게 된다.

 가면을 쓰고 있는 이 20%의 고혈압을 잡아내 치료하는 것이 임상의들의 과제가 될 것이다.

진성고혈압과 위험도 같아

 가면고혈압은 혈압이 잘 조절되는 그룹이나 백의고혈압에 비해 심혈관질환(CVD)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성고혈압과는 그 위험도가 대등한 수준이다. 가면고혈압과 CVD 사이의 상관관계를 설명해 주는 연구사례는 상당히 많다.

 1999년 네가지 혈압조절 상태의 CVD 위험도를 비교키 위해 단면적 조사(Cross sectional observational study)를 실시한 결과, 가면고혈압과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는 진성고혈압 그룹의 위험도가 대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장비대를 의미하는 좌심실용적계수(LVMI)가 두그룹에서 각각 86g/m썐과 90g/m썐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경동맥의 동맥경화 역시 경화반 비율이 두그룹에서 28%로 동일하게 나타난 반면, 혈압이 잘 조절되는 정상혈압 그룹(15%)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Liu JE et al. Ann Intern Med 1999).

 추적관찰 기간이 10~12년에 달하는 "PAMELA", "OHASAMA" 연구 역시 가면고혈압을 장기적으로 방치시 그 결과가 치명적일 수 있음을 잘 보여 준다. 3200명의 이탈리아 환자를 대상으로 한 "PAMELA" 연구는 가면고혈압군의 LVMI가 91.2g/m썐으로 진성고혈압군(94.2g/m썐)과 대등했으나, 정상혈압군(79.4g/m썐) 및 백의고혈압군(79.4g/m썐)과는 격차를 드러냈다(Sega R et al. Circulation 2001).

 일본에서 실시된 "OHASAMA" 연구 역시 CVD로 인한 사망률과 뇌졸중 발생률이 가면고혈압(221명중 36명)과 진성고혈압군(202명중 46명)이 대등한 반면, 정상혈압(739명중 49명) 및 백의고혈압군(170명 중 21명)과는 차이가 있었다(Ohkubo T et al. JACC 2005).

 특히, 노령환자에서 위험도를 파악한 또 다른 연구에서는 가면고혈압군의 CVD 발병률이 30.6%로 진성고혈압군(25.6%)보다 다소 높게 나타나기까지 했다. 정상혈압군(11.1%)과 백의고혈압군(12.1%)은 역시 발생빈도가 상대적으로 낮게 확인됐다(Bobrie G et al. JAMA 2004).

방치하기 쉽다는 게 더 위험

 관동의대 제일병원 박정배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고혈압 환자에서 가면고혈압은 10~20% 정도로 추정된다. 연구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적게는 9%(Circulation 2001;104:1385)에서 많게는 23%(Arch Fam Med 2000;9:533)의 분포를 보인다.

 박 교수가 주연구자로 우리나라 9개 대학병원의 고혈압 치료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는 가면고혈압 유병률이 10.5%로 확인됐다. 특히, 가면고혈압과 대사이상의 상관관계 확인이 목적이었던 이 연구에서 가면고혈압과 진성고혈압군의 대사증후군 유병률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면고혈압이 대사장애를 동반해 예후를 악화시킬 수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가면고혈압은 자신이 고혈압인지 모르고 있는 상태나 강압치료를 받고 있지 않는 증례와 고혈압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에서 나타나는 증례의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위에서 설명한 유병률 연구결과는 고혈압 치료환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자신이 고혈압인지 모르는 가면고혈압의 경우는 건강진단에서조차 혈압수치가 정상으로 나오기 때문에 이를 잡아내 치료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물론, 당연히 치료를 받아야 할 대상인데도 불구하고 진단조차 힘들다는 점에서 국민보건에 미치는 영향은 심대하다 할 수 있겠다.

 더 큰 문제는 고혈압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의 가면고혈압이다. 이 경우 진료실에서는 혈압이 잘 조절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방치하기 쉽고, 결국 환자는 혈압이 조절되지 않는 상태로 삶을 영위하게 되는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의사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언더트리트먼트(undertreatment)가 발생한다고도 볼 수 있다.

 특히, 이같은 환자들은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사이 심장비대나 미세알부민뇨·경동맥 두께의 증가 등 표적장기 손상이 악화돼 CVD 위험도가 높아지게 된다.

 앞서 설명한 고혈압 치료환자에서 완전조절 그룹과 가면고혈압 유병률을 조합해 보면 문제의 심각성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진료실에서 혈압치료를 받는 환자 가운데 정상적인 혈압범주에 들어가는 비율은 50%. 100명 중 50명 정도가 혈압이 제대로 조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20% 대의 유병률로 방치되고 있는 가면고혈압 환자를 고려하면, 이 50명 중에 10명 정도는 실제로 조절이 안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진료실 혈압만 가지고 고혈압을 치료할 경우, 혈압조절이 안돼 CVD 위험도가 높은 환자들을 놓칠 수도 있다는 것.

 박정배 교수의 말처럼 "모르고 놓치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경고를 유념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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