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연구팀, 아침보다 저녁 혈압제 복용은 심혈관질환 위험 낮춘다고 발표
강동경희대병원 손일석 교수, "의아스러운 연구결과, 일반 고혈압 환자에게 적용할 수 없어"
서울대병원 이해영 교수 "혈압제는 하루 한 번 아침에 복용하는 게 좋은 방법"

[메디칼업저버 주윤지 기자] 최근 스페인 라몬 헐미다(Ramon Hermida) 연구팀은 혈압제를 아침보다 저녁에 복용하는 게 심혈관질환 예방에 더 효과적이다고 유럽심장학회지(European Heart Journal)에 발표했지만, 국내 고혈압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결과를 일반 고혈압 환자에게 적용하기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이미지출처: 포토파크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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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비고대(University of Vigo) 연구팀은 전통적으로 아침에 먹는 고혈압 약물을 저녁에 먹으면 심혈관질환 위험을 낮추는지 검토하기 위해 1만 9084명을 포함하는 대규모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저녁에 혈압제를 복용한 환자는 아침에 복용한 환자보다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유의미하게 45% 더 낮았다. 심혈관질환 사건을 개별적으로 검토했을 때, 저녁군은 아침군보다 심혈관질환 사망은 56%, 심근경색 위험은 34%, 관상동맥재개술은 40%, 심장사는 42%, 뇌졸중은 49%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헐미다 교수는 "혈압을 낮추는 약을 아침보다 저녁에 복용했을 때 활동 시 혈압 조절이 향상됐으며 수면 혈압 조절, 수면시간 상대적 수축기혈압 감소도 상당히 개선됐다"고 강조했지만 이번 연구결과는 일반적으로 혈압제를 아침에 복용하는 고혈압 환자들에게 혼란을 일으켰다. 

연구결과 수용? 글쎄?

이에 대해 강동경희대병원 손일석 교수(심장혈관내과)와 서울대병원 이해영 교수(순환기내과)는 연구결과를 일반 고혈압 환자에게 적용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결과 자체가 여러 요인으로 인해 "믿기 힘들다"고 밝혔다.

강동경희대병원 손일석 교수는 본지와 통화에서 "실제 연구 데이터를 꼼꼼히 살펴보면 심혈관질환 위험이 그 정도로 감소한 게 의아스러운 부분도 있다"며 "대규모 연구를 진행해서 결과 가치가 인정받고 저널에 실렸겠지만, 전문가의 입장들을 들어보면 저녁에 혈압제를 복용하는 게 틀린 건 아니지만 모든 일반 고혈압 환자에게 적용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이해영 교수도 본지와 통화로 이번 연구에서 심혈관질환 사망 위험이 60%까지 감소한 부분이 "믿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뿐만 아니라 연구에 포함된 절반의 환자는 밤에 혈압이 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실제 임상에서 밤에 혈압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50% 정도 차지할 정도로 많지 않다. 고혈압 환자 대략 20~30%가 저녁에 혈압이 감소하는데 연구에서는 50%가 포함됐다. 

이에 대해 손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저녁에만 혈압이 떨어지지 않는 사람이 절반이니까 저녁에 혈압제를 복용하면 효과적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고 연구 결과를 설명했다. 

"스페인 연구, 한국에 적용하기 힘들어"

연구 및 연구결과를 실제 임상에 적용하는 데 제한점도 몇 가지 있다. 먼저 이번 연구는 우리나라 인구 대상으로 한 연구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적용하기 힘들 수 있다.

또 활동혈압을 측정해서 저녁에 혈압이 오르는 것이 아침에 유독 급상승하는지 보려면 활동 혈압을 측정해야 하지만 개인병원에서는 거의 불가능하고 24시간 검사가 가능한 종합병원 이상에서 할 수 있어 전문가가 야간 혈압을 개원가에서 파악하기 힘들다.

그뿐만 아니라 저녁에 혈압제를 먹는 환자들은 많은 경우에 약을 복용하는 것을 깜빡하기 때문에 혜택보다 손해가 클 수 있다. 단지 환자가 저녁에 복용할 마음이 있고, 새벽에 혈압이 증가하는 분들은 예외적으로 저녁에 복용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 환자한테 항상 다짐을 받는 것은 저녁에 약을 복용하는 것을 잊기 쉬우므로 환자가 혈압제를 챙겨서 복용할 자신만 있을 때 권고하도록 하고 아침에 먹는 게 훨씬 더 편하고 잊지 않는 데 도움이 된다. 

이 교수는 "사람이 기계처럼 똑같은 저녁 시간에 혈압제를 복용할 수 있다면 효과가 좋을 수 있지만, 저녁에 약을 복용하는 것은 어떤 연구나 임상에서든 환자의 10% 이상이 약을 먹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런 점을 감안하고 복용할만한 효과는 없다"고 피력했다.

특히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약물을 저녁에 먹도록 지시했을 때 15% 이상의 환자가 약을 덜 먹었다. 반면 저녁에 복용하는 효과는 10% 정도 증가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10% 효과 대비 15%의 환자가 약을 복용하지 못하면 오히려 손해일 수 있기 때문에 콜레스테롤약도 아침에 복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면서 "고혈압약의 효과 차이는 10%보다 훨씬 적어 아침에 먹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연구 하나로 기준 바뀌지 않는다"

손 교수는 "연구 하나로 기준 바뀌지는 않는다"며 "물론 저녁에 혈압제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지만, 이번 연구결과를 고혈압 환자 전체에게 확대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며 "일부 환자에서 저녁에 혈압제를 복용하는 게 혜택이 있는 건 맞지만, 전체 환자로 확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피력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혈압제는 여전히 하루에 한 번 먹고 약을 빼먹지 않게 아침에 복용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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