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이범희 교수 "선별검사 목적으로 활용 시 윤리적 문제 있어"
1일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발표

서울아산병원 이범희 교수는 1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발달지연에서의 유전 진단'을 주제로 발표했다.
▲서울아산병원 이범희 교수는 1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발달지연에서의 유전 진단'을 주제로 발표했다.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유전질환의 감별진단에 유전자검사가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는 가운데 질병 진단 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에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전자검사가 개인별 맞춤 의료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신생아에게 질병 진단이 아닌 선별검사를 위해 활용할 경우 윤리적 문제가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아산병원 이범희 교수(소아청소년과)는 1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발달지연에서의 유전 진단'을 주제로 발표하며, 신생아에게 선별검사로서 유전자검사를 시행하는 것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 교수는 "급격한 기술의 발전으로 '전체 유전자 서열분석(Whole Genome Sequencing, WGS)'을 신생아에게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모체 혈액을 통해 태아 DNA도 확인 가능하다"며 "임상에서 유전자검사를 쉽게 시행할 수 있는데, 여기에 경제적 개념이 들어오면서 많은 산부인과의원이 신생아가 태어나면 유전자검사를 일상적으로 하는 상황"이라고 문제를 지적했다.

그가 선별검사 목적으로 신생아 유전자검사를 시행하는 것을 우려하는 이유는 신생아 등 소아청소년이 본인의 자유 결정과 상관없이 유전자검사가 진행될 수 있는 취약 계층이라는 데 있다. 

유전자검사를 진행할 경우 개인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최우선이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개인의 결정이 중요하다. 하지만 신생아는 본인의 의사결정권이 없는 상황에서 부모와 의사의 결정만으로 유전자검사가 이뤄진다. 

게다가 유전자검사 시 검사가 필요한 질환과 필요하지 않은 질환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이에 유전자검사는 소아기에 발병하며 치료법이 있거나 관리가 가능한 질환에 한해 의의가 있다. 

미국의학유전학회(ACMG)는 2012년 유전자검사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유전자검사로 질병 진단 후 의료진이 환자를 관리할 수 있다면 유전자검사를 진행하는 게 타당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신생아 선별검사로 유전자검사를 활용하는 것은 위험하며 권하지 않는다. ACMG 가이드라인은 진행하려는 유전자검사가 질병 진단 목적인지 또는 선별검사를 위해서인지 판단할 때 기준(reference)으로 삼는다. 

하지만 임상에서 신생아를 대상으로 한 유전자 선별검사는 성인기에 발현할 가능성이 있는 질환을 확인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신생아 때 선별검사 목적으로 유전자검사를 하면 가족 전체가 공황상태가 될 수 있다"면서 "유전자검사 결과 따라 진행해야 할 치료 또는 대처법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검사하는 경우가 많다. 태어나자마자 지금 당장 몰라도 되는, 40세 이후 발병 가능성이 높은 질환까지 알게 되면서 가족들은 치료법에 대한 잘못된 정보에 노출되는 등 사회적 또는 윤리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만큼 선별검사가 필요한 신생아에게는 유전자검사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확인된다.

미국에서는 유전자검사를 선별검사로 활용하기 위한 전향적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NSIGHT(newborn sequencing in genomic medicine and public health)로 명명된 연구가 대표적이다. 연구에서는 WGS가 전통적인 신생아 스크리닝을 대체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자, 질병 진단까지 소요되는 시간, 진단율, 비용 등을 비교·평가했다.

그러나 이 연구에도 단서가 붙는다. 일반적인 신생아가 아닌 치명적이 질병이 있는 신생아를 대상으로 선별검사로서 유전자검사의 유용성을 본 것. 이 교수에 따르면, 연구에서 활용한 WGS가 전통적인 신생아 스크리닝보다 질병을 빠르게 진단할 수 있었고 비용도 절약됐으며 진단율도 높아 연구가 조기 종료됐다. 

이 교수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법적, 윤리적 이슈가 굉장히 중요해졌다. 이제는 임상에서 어떤 신생아에게 유전자검사가 필요한지 잘 구분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며 "지금처럼 신생아에게 유전자검사를 무분별하게 진행해서는 안 된다.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검사를 시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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