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기본법 중 유일하게 로드맵조차 없어…美·英·日은 이미 공표해 추진
박은철 의학한림원 제8분회장, 지속가능한 미래 보건의료체계 혁신 로드맵 공개
지역사회 기반 사람중심 특징…중요도별 80개 보건의료 의제 검토 순서 나열
전문가들, 기본법 가치 높이 평가…20년 방치 상태 단추 풀 협치구조 중요성 강조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이 지난 30일 국회도서관에서 '지속가능한 미래 보건의료체계'를 주제로 제13회 보건의료포럼을 개최했다.

[메디칼업저버 정윤식 기자] 2000년 7월 13일 시행이 확정됐지만 실질적으로 표류 상태와 다름없던 보건복지부 보건의료기본법 상 보건의료발전계획이 20여 년 만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이 내·외부 환경 변화로 인해 기존 보건의료체계의 변혁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방치돼 있던 보건의료발전계획의 새로운 로드맵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의학한림원은 지난 30일 국회도서관에서 연세대학교 보건정책 및 관리연구소와 함께 '지속가능한 미래 보건의료체계'를 주제로 '제13회 보건의료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의학한림원 박은철 제8분회장(연세대 보건정책 및 관리연구소 소장)은 지속가능한 혁신적 보건의료를 위해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사람중심의 통합적 로드맵이 필요하다며 그동안 연구한 내용을 발표했다.

보건의료 중요 의제 25개 항목(출처: 연세대학교 보건정책 및 관리연구소, 대한민국의학한림원)
보건의료 중요 의제 25개 항목(출처: 연세대학교 보건정책 및 관리연구소,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이번 연구는 인력, 건강상태, 장비, 의료이용, 의료비 등 현재 한국 보건의료의 좋고 나쁨을 종합적으로 진단한 후 11개 영역 80개 보건의료 의제를 두고 의학한림원, 대한보건협회, 연세대 보건정책 관리연구소 관계자 78명이 중요도와 시급성에 따라 우선순위를 분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중요도·시급성 10점 만점에 7점 이상인 25개 중요 항목만 따로 분류한 결과 △초고령 △저출산 △저성장 △미세먼지 △자살예방 △감염관리 △건보재정 △개인정보 △보건의료 R&D △정부 조직개편 △일차의료 강화 등이 우선 해결해야 할 보건의료 의제 상위에 올랐다.

박 분회장은 이를 토대로 초고령·저출산은 2021년까지, 저성장·미세먼지·자살예방·건보재정·일차의료강화 등은 2022년까지, 만성질환관리·의료비관리·수가수준재고·보험료부과 등은 2023년까지, 지불제도 등은 2024년까지 계획 검토 기한을 나열했다.

그는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사람중심 통합 보건의료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며 "건강보험·의료급여·노인장기요양보험·산재보험과 지역사회 자원을 연계하고 국민 자기결정권 강화, 의료기관 역할 정립, 보건의료 인력수급 등 구체적 과제에 대한 계획을 세우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보건의료발전계획은 이미 2000년에 복지부의 기본법으로 제정·시행됐다.

당시의 보건의료기본법 내용을 살펴보면 복지부장관은 5년마다 새롭게 계획을 만들어야 하고,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과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만 확정되며, 지역보건의료계획의 경우 시·도지사가 별도로 수립해야 했다.

보건의료 중요 의제 25개의 연도별 로드맵. 2019년에는 기존 장기계획들을 통합하고(출처: 연세대학교 보건정책 및 관리연구소, 대한민국의학한림원)
보건의료 중요 의제 25개 항목의 연도별 로드맵. 2019년 말까지 기존 장기계획들을 재분류하고 통합해 2020년까지 보건의료발전계획을 세운 후 2024년까지 중요도와 시급성에 따라 우선 순위대로 논의(출처: 연세대학교 보건정책 및 관리연구소, 대한민국의학한림원).

특히 매년 주요 내용과 해당 연도 주요 시책의 추진방안, 전년도 추진 실적 등을 국회에 주기적으로 보고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복지부의 다른 기본법인 사회보장기본법(사회보장기본계획), 저출산·고령화사회기본법(저출산·고령화사회기본계획), 건강검진기본법(건강검진종합계획) 등과 달리 보건의료기본법은 20년 동안 단 한 번도 계획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박 분회장은 "계획을 만든 일이 없으니까 국회도 보고 받은 적이 없는 것"이라며 "미국과 영국, 일본 등의 해외 국가는 이미 2015년 이후 보건의료발전계획을 수립해 발표했다"고 말했다. 

즉, 지속가능한 보건의료체계 혁신의 길을 꾸리기 위해서는 보건의료발전계획 수립이 우선이니 최대한 이 시기를 앞당기자는 게 박 분회장이 제안한 로드맵의 핵심 내용인 것.

그는 "우리나라도 2000년에 시행된 기본법 뼈대는 있으니 더 늦기 전에 이를 재검토해 내년 말까지 1차 보건의료발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며 "복지부가 현재 산발적으로 발표한 장기계획들을 재분류해 통합하면 보건의료발전계획이 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 보건의료기본법 가치 높게 평가…수립 시급성 동의
이해관계자 상충 문제 협치로 풀고 산발적 계획들 통합해야 

대한민국의학한림원 박은철 제8분회장(연세대 보건정책 및 관리연구소 소장)
대한민국의학한림원 박은철 제8분회장(연세대 보건정책 및 관리연구소 소장)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인구·노동 구조 변화와 감염병 발생 등 미래 위기를 대비하는 의료자원의 축적 및 대책 마련 차원에서 로드맵 필요성에 공감했다.

단, 방법적인 면에서 일부 다른 의견을 보이긴 했으나 이들은 공통적으로 2000년에 시행된 보건의료기본법을 적극 활용하지 못한 일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기본법 자체에 대한 가치는 높이 평가했다.

한국보건경제정책학회 권순만 부회장은 "지속가능도 해야 하나 비전 제시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불안정성이 많긴 하나 기술의 발전과 혁신을 저해하지 말아야 한다"며 "보험료 기초의 제도는 지속가능하기 힘드니 건강보험제도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보건사회연구원 신현웅 보건정책연구실장은 "꼭 문제가 터진 후에야 뒤늦게 수습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보건의료발전계획 수립으로 다가올 위험 사인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며 "총론은 동의하는 데 각론으로 들어가면 이해관계자들이 합의를 못 보는 고착화된 모습도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전했다. 

최근 이뤄진 정부의 종합계획 발표 사례들은 좁은 시야에서 부분적으로 만들어진 급조된 계획에 가까워 미래를 대비한 계획으로 보기 힘들다는 주장도 있다. 

부문별 계획들의 일관성·정합성을 고려할 때 보건의료기본법을 바탕으로 보건의료발전계획을 수립하고 그 안에서 부문별 중장기 발전계획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안덕선 소장은 "2018년 10월에 발표된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은 보건의료기본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한정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며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도 보장성 강화 정책의 확장판 정도에 불과하다"고 피력했다.

안 소장은 이어 " 그간 정부가 발표하는 계획은 나열만 돼 있을 뿐 정책 간 연계 및 투입 재정과 같은 실제 실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협치 요소들에 대해서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데올로기 논쟁을 정리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드맵으로 구현한 예상 보건의료발전계획(출처: 연세대학교 보건정책 및 관리연구소, 대한민국의학한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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