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유럽당뇨병학회 연례학술대회에서 선행연구 결과 발표
폭식장애 있는 당뇨병 환자 대상 결과, 폭식장애 척도 개선…SU과 비교한 점은 한계점
국내 전문가 "디자인 한계 있지만, 식욕 억제로 폭식장애 조절 효과 기대할 수 있어"

▲이미지출처: 포토파크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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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항당뇨병제인 GLP-1 수용체 작용제(이하 GLP-1 제제) 둘라글루타이드(제품명 트루리시티)가 '폭식장애'를 개선할 수 있다는 선행연구(pilot study) 결과가 공개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연구 디자인상 처음부터 공정하지 않은 대결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19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유럽당뇨병학회 제55차 연례학술대회(EASD 2019)에서는 폭식장애가 있는 제2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둘라글루타이드의 폭식장애 치료 가능성을 평가한 선행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최종 결과에 따르면, 둘라글루타이드를 투약한 환자의 폭식장애 척도(binge eating scale)가 유의하게 개선됐다. 

이 연구는 폭식장애가 있는 제2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GLP-1 제제의 가능성을 평가한 첫 임상연구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향후 둘라글루타이드 등 GLP-1 제제로 제2형 당뇨병 환자의 폭식장애를 치료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지만, 대조약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지적과 다른 연구에서도 일관된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폭식장애 척도, 둘라글루타이드 -12.07점 vs 글리클라지드 -0.47점

제2형 당뇨병 환자에서 폭식장애의 심각성은 여러 연구에서 제기된 바 있다. 

대표적으로 2017년 미국당뇨병학회 연례학술대회(ADA 2017)에서는 젊은 제2형 당뇨병 환자의 절반 이상이 폭식장애 등 섭식장애를 호소한다는 보고가 발표돼 학계의 눈길을 끌었다.

연구를 진행한 이탈리아 우디네대학 Andrea Da Porto 교수는 "폭식장애가 있는 성인은 비만할 위험이 3~6배 높을 뿐만 아니라 제2형 당뇨병을 동반할 가능성도 크다"면서 "폭식장애가 제2형 당뇨병 환자를 치료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둘라글루타이드가 폭식장애가 있는 제2형 당뇨병 환자에게 유용한 치료옵션이 될 수 있는지 확인하고자 진행됐다. 

연구에는 메트포르민 단독요법을 받고 있는 65세 이하의 제2형 당뇨병 환자 60명이 포함됐다. 평균 당화혈색소는 7.9%, 평균 체중은 99kg였고, 약 80%는 평균 체질량지수(BMI)가 36kg/㎡으로 비만했다. 평균 폭식장애 척도는 23.7점으로 중등도 수준이었다.

전체 환자군은 둘라글루타이드군(주 1회 1.5mg)과 설포닐우레아계 약물인 글리클라지드군(1일 60mg)에 무작위 분류돼 12주간 치료받았다.

최종 결과, 등록 당시와 비교해 12주 후 폭식장애 척도는 둘라글루타이드군이 12.07점 감소했으나 글리클라지드군은 0.47점 감소에 불과했다(P<0.0001). 

BMI와 체중도 둘라글루타이드군이 각각 1.65kg/㎡와 4.77kg 줄었지만, 글리클라지드군은 0.04kg/㎡ 감소, 0.07kg 증가해 유의한 차이를 보였다(모두 P<0.0001).

당화혈색소는 둘라글루타이드군이 1.07% 감소해 글리클라지드군(0.75% 감소)보다 의미 있는 혈당 조절 혜택이 확인됐다(P=0.009).

아울러 둘라글루타이드군의 폭식장애 척도 개선 효과는 나이와 성별을 보정한 후에도 체중 및 당화혈색소 조절과 독립적인 연관성을 보였다. 

Da Porto 교수는 "글리클라지드와 비교해 둘라글루타이드는 폭식 행동을 줄이는 효과가 있었고 체중과 당화혈색소를 더 조절할 수 있었다"며 "게다가 예상했던 것보다 둘라글루타이드 치료에 따른 체중 감량 효과가 컸다"고 설명했다.

이어 "둘라글루타이드는 폭식장애가 있는 제2형 당뇨병 환자를 위한 치료 옵션으로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처음부터 불공정 대결?…"왜 대조약이 설포닐우레아인가?"

▲둘라글루타이드 성분 트루리시티
▲둘라글루타이드 성분 트루리시티

하지만 둘라글루타이드와 비교한 대조약이 체중 증가 부작용이 있는 설포닐우레아라는 점에서 처음부터 공정하지 않은 대결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Jens Holst 교수는 "설포닐우레아를 대조약으로 설정한 점은 연구 디자인 측면에서 아쉽다"며 "설포닐우레아 치료 시 체중 증가가 나타날 수 있으므로, 본 연구에서 둘라글루타이드가 폭식장애, 체중 등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기란 어렵다. 다른 연구에서도 일관된 결과가 나오는지 지켜봐야 할 것"고 지적했다.

서울성모병원 이승환 교수(내분비내과)는 "설포닐우레아는 저혈당 위험이 있어, 제2형 당뇨병 환자가 설포닐우레아 치료 후 저혈당이 오면 음식을 많이 먹게 된다"면서 "이로 인해 체중 증가가 나타날 수 있지만, 식욕 조절과 크게 관계가 없다. 설포닐우레아와 비교한 것은 처음부터 공정하지 않은 대결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연구팀은 연구에 모집된 환자군이 적고 GLP-1 제제는 치료 후 몇 주 동안 식욕이 감소한다고 알려졌으며 추적관찰 기간이 짧다는 점을 한계점으로 꼽았다. 

Da Porto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라글루타이드군에서 위장관 이상반응으로 치료를 중단한 환자는 없었다"면서 "향후 더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대조약과 비교하는 장기간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GLP-1 제제 식욕 억제 효과 있어 가능성은 충분…향후 연구 필요"

연구 디자인의 한계점이 있지만, 학계에서는 앞으로 진행되는 연구에 따라 둘라글루타이드 등 GLP-1 제제의 적응증이 폭식장애가 있는 제2형 당뇨병 환자까지 확대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는 기대를 내비친다. 

동국대 일산병원 이승은 교수(내분비내과)는 "둘라글루타이드 등 GLP-1 제제는 세로토닌 농도를 증가시켜 식욕을 억제하는 식욕억제제와 상반된 작용을 할 가능성이 작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폭식장애를 동반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가 더 진행돼야 하지만,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승환 교수는 "GLP-1 제제의 약물들은 비슷한 기전으로 작용한다. 예로 리라글루타이드도 식욕 억제 효과가 있다"면서 "다른 GLP-1 제제 약물들도 폭식장애를 개선하는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GLP-1 제제가 제2형 당뇨병 환자의 폭식장애를 치료할 수 있다는 근거가 쌓일지라도 당뇨병이 없는 폭식장애 환자까지 적응증을 확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GLP-1 제제는 항당뇨병제이기에 제2형 당뇨병 환자에게 투약한다는 전제조건이 붙기 때문이다.

이승환 교수는 "GLP-1 제제는 기본적으로 항당뇨병제로 제2형 당뇨병 환자에게 투약해야 한다"면서 "제2형 당뇨병이 없는 폭식장애 환자에게도 효과적인지 보기 위해서는 당뇨병과 관계없이 폭식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적응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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