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학교육학회 공동기획
의학교육 패러다임


맹 광 호

가톨릭의대 교수
예방의학과
객원논설위원



예산확보·정부지원·전문가 양성 필수

교육평가원 지난해 3월 2주기 평가…수준 아직 모자라

 의과대학 및 의학전문대학원에 대한 인정평가제도(이후 "의과대학 인정평가"로 표기함)는, 평가대상 대학에 대해서 그 의과대학의 교육과정이나 교육여건, 그리고 교육관련 제반 활동들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의사를 양성하기에 충분한지 어떤지를 판단해서 그 의과대학의 전반적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사회적 인정 여부를 결정해 주는 제도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의과대학 인정평가제도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1980년대 이후 갑자기 많은 의과대학들이 신설되면서 이들 대학의 교육여건과 교육의 질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한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의학교육계의 이런 움직임이 1977년부터 시작된 문교부의 대학평가사업과 1982년에 설립된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대학평가 사업에 크게 고무되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실제로, 1996년에 대학교육협의회가 실시한 의학계열학과 평가는 형식상으로 우리나라에서 시행된 최초의 의과대학 인정평가이다.

 그러나 이 대학교육협의회의 의학과 평가의 경우 이를 진정한 인정평가로 보기에는 몇 가지 한계가 있었다.

 즉, 대교협 의학과 평가의 경우, 설립된 지 적어도 6년 이상 되는 대학들만 평가 대상으로 했다든지, 지나치게 획일화된 평가 항목과 기준을 적용했다든지, 평가 결과에 대해서도 우수 대학만을 발표함으로써 상대평가의 성격을 띠게 되었고, 따라서 평가에 의해 교육능력 수준을 더욱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할 의과대학들의 경우 아예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등 인정평가의 본래 취지를 거의 살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의료계 내에서는 미국 등에서와 같은 형태의 진정한 인정평가제도 도입의 필요성이 거론되기 시작했고, 그해 가을 한국의과대학장협의회와 의학교육학회가 공동 주최하는 의학교육 합동 학술대회에서 의과대학 인정평가제도 도입을 정식 결의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학교육협의회가 주축이 되어 현재의 자율적 의과대학 인정평가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2년간의 준비와 예비평가를 거쳐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실시된 제1주기 평가에는 41개 국내 모든 의과대학이 참여하였으며, 그 결과 총 32개 대학이 완전 인정을, 그리고 9개 대학이 조건부 인정을 받았었다.

 교육목표 및 교육과정 영역을 비롯한 학생, 교수, 시설설비, 그리고 행·재정 등 5개 영역에 걸쳐 총 50개 문항을 가지고 평가했던 제1주기 평가결과, 우리나라 41개 의과대학이 거의 모두 일차 수준의 의료문제를 해결할만한 능력은 갖춘 의사 양성을 기본 목표로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나름대로 이를 위한 교육과정 운영에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임상의학 수업이나 실습이 아직도 대부분 강의 중심과 3차 수준의 의료기관 실습을 못 벗어나고 있으며, 아직도 학생 중심의 자율적인 교육과정이 부족한 상태다. 일부대학들이 기본적인 기초나 임상수기 실천을 의무화하고 임상수기시험(CPX)이나, 객관적이고 구조화된 임상시험(OSCE) 같은 평가방법을 실시하고는 있으나 그 수준 역시 실험적인 단계를 못 벗어나고 있다.

 학생을 위한 장학제도나 복지시설의 경우 우리나라 의과대학들은 아직 크게 부족한 상태고 대학들 사이에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학생 장학금 수혜율의 경우 평균 20% 밖에 되지 않으며, 그 차이도 10% 수준에서 100% 수준까지 다양하다.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나 체육시설 같은 여러 가지 복지시설이 크게 부족한 것도 졸업 전 의학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데 장해요인으로 분석되었다.

 교수 인력이나 교육·연구수준도 결코 만족할만한 수준에 있다고 할 수 없다. 예컨대 대학별 기초의학 교수의 경우, 우리나라 의과대학의 최근 평균 기초의학 교수 수가 30명 수준밖에 되지 않으며, 대학별 차이도 적게는 13명에서 최고 85명까지 차이를 보이고 있는 실정인데, 이런 우리나라의 평균 기초의학 교수 수는 대학 당 기초의학 교수가 100명이 넘는 미국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않는 상태다.

 교육시설이나 설비 또한 선진외국의과대학들에 비하면 아직도 전반적인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 대학의 행·재정상태는 다른 어떤 교육관련 투입요인 보다도 가장 열악한 형편이다.

 대부분의 의과대학이 다른 학문계열 대학들과 같은 수준에서 대학본부에 직접 속해있거나, 대학부속병원의 재정지원을 받는 상황이어서 의과대학 학장의 자율성이 거의 보장되지 않고, 따라서 진정한 책임행정 체계가 갖추어져 있지 못한 것이 큰 문제다. 대학 예산의 경우도 가령 미국의과대학들과 비교하면 극히 열악한 상태다.

 그러나 이처럼 제1주기 평가를 통해서 우리나라 의과대학들의 교육과정이나 교육여건이 아직 거의 모든 영역에서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 판명되기는 했으나, 여러 면에서 1주기 평가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제1주기 평가에 직, 간접으로 참여했던 교수 300여명이 응답한 2005년도 의견조사를 보면 70.2%의 교수가 제1주기 의과대학 평가를 매우 성공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이 평가가 각 대학의 교육여건과 교육과정은 물론 교육시설과 설비를 개선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79.6%의 교수는 대학별 자체평가 연구과정을 통해서 대학 구성원들이 각 대학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평가기준에 맞는 개선방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을 큰 수확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은 1주기 평가 이후 2년간 1주기 평가의 효과와 2주기 평가기준 개선 등의 준비과정을 거쳐 지난해 3월 제2주기 1차년도 평가를 시작했다.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참여하게 되어있는 인정평가의 성격상, 1차 년도에는 많은 대학이 참여를 하지 못하고 따라서 이번 1차 년도에는 서울의대, 고려의대, 울산의대, 성균관의대, 그리고 인하의대 등 5개 대학만이 참여를 해서 평가를 마쳤으며 지금 인정여부에 대한 판정위원회의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이번 제2주기 평가에서는 평가영역과 평가문항에 있어서 1주기 때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즉, 평가영역에서 "행·재정영역"을 "대학운영체계"로 바꾸고 졸업 후 교육 영역을 추가하여 최소한의 대학원 교육과 평생교육수행체계를 평가하도록 하고 있으며 평가문항도 제1주기 때의 50개 문항(필수 18문항, 권장 32문항)에서 77개(필수 41문항, 권장 34문항) 문항으로 늘리는 한편, 이번 2주기 평가에서는 이들 평가문항 중 38개에 우수기준을 두어 대학별로 영역별, 또는 문항별 우수성 여부를 평가하는 방법을 도입하기로 했다.

 제2주기를 맞는 우리나라 의과대학 인정평가제도는 아직도 완전한 수준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제도가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시도되는 자율적 전문분야 학문계열 인정평가이고, 나름대로는 상당기간 준비과정을 거쳐 시도된 것이긴 하지만 이것이 좀 더 튼튼하게 정착되자면 아직도 많은 발전적 노력이 있어야 하며 해결되어야 할 과제 또한 만만치가 않은 것이다. 특히 다음 몇 가지 문제는 이 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 무엇보다 시급히 해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는 의과대학 인정평가제도에 대한 공적(公的)인 인정문제다. 평가와 관련한 모든 업무가 의과대학들이 참여하는 자율적 기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해도 이런 자율적 평가 활동과 그 결과를 정부당국 또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같은 공적기구가 인정해 주지 않으면 평가대상 대학이나 사회로부터 평가에 대한 신뢰를 얻을 수 없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둘째는 평가사업을 위한 지속적인 예산 확보 문제다.

 한국의과대학 인정평가위원회는 현재 평가를 위한 예산의 거의 전부를 대한의사협회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의과대학 인정평가가 통상적으로는 의사협회의 직접적인 관여사업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의사협회로부터 전폭적인 재정지원이 있었던 것은 부실한 신설 의과대학 설립을 방치해야 하는 의사협회 입장에서 볼 때 의과대학 인정평가제도는 가장 중요한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의사협회로부터 상당 수준의 경비지원을 받을 수 밖에 없지만 역시 계속해서 의사협회가 전체 경비를 부담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에 정부지원을 포함한 다른 지원처를 찾아야 할 것이다.

 셋째는 평가전문 인력의 확보와 이들에 대한 교육훈련 문제다. 우리나라 의과대학 인정평가의 경우, 가능한 한 평소 의학교육에 관심을 갖고 어느 정도 이 분야에 전문성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되는 교수들을 추천받아 몇차례 이들을 대학별로 교육훈련을 실시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곧 평가전문가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앞으로 의과대학 인정평가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일정기간 평가에 참여하는 교수들에 대한 전문적 교육훈련이 마련되어야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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