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업저버 정윤식 기자] '8월 1일'. 정부가 예고한 분석(경향)심사 선도사업이 시작한 날이다. 비급여의 전면급여화와 맞물려 심사효율화 방안 중 하나로 제안된 분석심사는 지난해 초 구체적으로 공론화됐다. 이후 정부는 적극적인 추진의지를 갖고 관련 단체들과 논의에 돌입했지만 의료계는 '과소진료 하향평준화 유도' 등을 이유로 반대를 거듭했다. 난항을 겪던 분석심사는 올해 초부터 시행 취지를 이해하는 분위기가 일부 형성돼 보건복지부가 시행 한 달 전 개정고시 행정예고를 내리기까지 이어진다. 분석심사의 공론화 첫 시점부터 시행까지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은 어떻게 변했을까.

시대 변화 반영한 '심사·평가체계'로의 개편 필요성 대두

그동안의 심사는 환자 단위로 이뤄지는 방식이 아니었다. 의사의 의료행위, 사용한 치료재료나 약제건별로 이들이 각각 설정된 기준에 부합했는지를 따져 심사 통과 여부만 결정됐다.

즉,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행위별 수가제를 기본으로 운영되고 있고 이에 대한 지급 심사 역시 한정된 인력이 청구건별로 일일이 기준에 맞는지를 확인하는 체계로 실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심사 과정이 비효율적이고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으로까지 이어져왔다. 환자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다보니 꼭 필요한 건강보험 혜택도 행위건별로 따로 결정돼 불가피하게 제한되던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문재인 케어라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강화 정책으로 인해 삼사·평가체계의 변화 필요성을 더욱 대두됐다.

의학적 타당성이 입증된 의료행위 등에 건강보험 적용이 확대되면서 제한적 급여 심사기준이 아닌 의료진의 전문적 판단에 따라 환자에게 혜택이 주어지는 탄력적인 제도 운영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에 정부와 의료계의 큰 이견차이는 없어왔던 것.

분석심사는 현행 진료 행위 건별로 건강보험 급여기준에 적합한지를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진료 평균치를 설정하고 이에 벗어나는 의사나 의료기관에 대해 집중 심사 및 삭감을 하는 방식이다.
 

정부, 지난해 초부터 '분석심사' 카드 만지작

이에 정부는 심사·평가체계 혁신의 시작이 될 '분석심사' 카드를 지난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만지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구체적인 방법과 내용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분석심사를 변화하는 심사 패러다임의 핵심으로 설정하고 기준비급여의 급여화에 따른 비용지출 관리방안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고 언급한 수준이다.

기관 단위로 의료이용을 모니터링한 후 과잉진료를 심사하고 의료의 자율성과 심사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불필요한 의료이용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라는 목적을 세웠다.

지난해 4월, 대한병원협회가 서울드래곤시티에서 주최한 'Korea Healthcare Congress 2018'에서는 관련된 제안이 병원계로부터 나오기도 했다.

'분석심사'라는 구체적인 명칭이 아닌 '환자중심 포괄적 심사체계'로 표현되긴 했으나 근본적인 내용은 궤를 같이 했다. 

고려의대 예방의학교실 윤석준 교수는 "의료인이 의학적 판단에 따라 필요한 의료행위를 제공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하되 특정 환자 또는 기관이 동일 유형의 환자나 의료기관에 비해 눈에 띄는 특징이 발견될 경우 해당기관에 대해서 정밀심사를 실시하는 방식으로 심사의 중심이 옮겨갈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정부도 동의했다. 당시 보건복지부 정통령 보험급여과장은 "건강보험 보장성강화 대책을 추진하면서 비급여가 급여로 들어오면 이에 맞춰 심사체계도 바뀌어야 한다"며 "기본적으로 의료계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부작용을 우선 염려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대한병원협회 유인상 총무위원장은 심사체계에 거시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공감하나 의료현장의 혼란이 없도록 사전에 철저한 준비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인상 위원장은 "심사체계 변화 과정에서 플랫폼의 표준화나 개별 의사들의 진료경향을 심평원이 파악해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는 등의 부작용이 생길수도 이다"며 "디스인센티브에 대한 보호막과 성장통에 따른 대비책, 그에 따른 보완책 마련을 전문가들이 논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예상외로 강력한 정부의 추진 의지

정부의 분석심사 추진 의지가 생각보다 강한 것으로 감지되자 의료계는 즉각 대응에 나섰다. 단지, 정부가 계획한 방법보다 더 효과적인 심사체계 개편 방식을 제안하는 형태의 반대는 아니었다. 논의 자체를 함께 시작해야 한다는 정도의 건의였다. 의료계가 정부의 속도에 다소 당황했던 것을 의미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당시 대한의사협회 심사체계개편 특별위원회 이필수 위원장은 "경향성 평가를 통해 평균 추세에 벗어나는 기관을 중점으로 심사함에 따라 충분하고 적정한 진료가 아닌 과소진료로 하향평준화를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평균 수치를 기준으로 어느 정도 수준까지 인정할 것인지 범위 설정에 대한 논란과 더불어 평균 이상인 구간에 대한 과도한 규제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이면서 논의과정에서의 의료계 참여확대를 요구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도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관리대상 선정 기준을 상대적 비율로 정할 경우 전반적 값은 개선돼도 의료기관 전체로 봤을 때 관리대상인 상위그룹이 항상 존재하게 되는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대개협은 "동일한 질병을 가진 환자라도 매우 다양한 임사적 양상을 보이고 그 예후 또한 다양하기 때문에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의 내용과 양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분석심사는 세부항목이나 지역별 특성 등을 지표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분석심사를 '네거티브적' 제도로 명명해 의료인과 환자의 불신을 더욱 조장하고 또 다른 사회적 부담을 야기할 수밖에 없음을 경고한 대개협이다. 
 

'답정너' 정부?…의협, 반발하며 두 차례 회의 모두 이탈

정부는 분석심사로의 심사·평가체계 개편을 두고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면서 의약계와의 논의를 시작했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해 9월 중순 '건강보험 심사평가체계 개편 협의체' 제1차 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청구건별로 나눠 기준 부합 여부를 확인하고 기준을 초과하면 일괄 삭감하는 방식의 '분석심사(안)'이 공개됐다.

의료행위의 특성에 따라 의학적 타당성 유무를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의료기관, 환자, 질병, 특정검사항목 등의 단위별로 지표를 설정해 모니터링하는 방향으로의 노선이 담겼다.

이상 청구 경향 소위 '튀는(변이)' 상황이 확인된 경우에는 이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사전 계도부터 집중 심사, 수가 수준 및 기준 조정까지 다양하고 입체적인 중재 수단이 구현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즉, 변이가 감지된다고 해서 바로 삭감·현지조사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단 해당 기관에 자율적 개선을 통보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등 중재 과정이 포함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 같은 중재과정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지속 발생할 경우 현지조사가 이뤄지는데, 심평원에서만 나가는 것이 아닌 동료의사와 심평원 심사위원이 공동으로 의무기록 심사, 면담 등 심층적인 조정을 시행한다.

심평원과 복지부는 개편이 단기간에 끝날 일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업무 프로세스 등에서 상당 부분 변화가 불가피하고 관련 법령과 예산 및 전산시스템 등 제도 전반에 대한 검토와 개선 작업이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된다는 임장이었던 것.

하지만 의협은 이미 '답을 정해 놓은 회의'라며 회의 시작 1시간여 만에 회의장을 이탈, '분석심사' 개편의 첫 삽을 뜨는 것이 순탄치 않음을 확인시켰다. 

의협 최대집 회장은 즉각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심평원이 공급자측과 제도 변경에 대한 논의도 하지 않은 채로 브리핑을 진행했다며 이는 납득할 수 없는 처사임을 강조했다.

최 회장은 "경향심사제는 정부의 의도와는 다르게 오히려 진료의 획일화를 심화시키고 기관별 특수성이나 의료인 경력에 따른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음과 동시에 의사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 제도로 전락할 개연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적정성평가제도와의 중복 △국민 불신 조장 △기관별 총액할당이나 총액계약제로의 변질 가능성 내포 △적정 수준의 모호성 등을 반대의 이유로 삼은 최 회장이다.

10월에 열린 제2차 회의에서도 의협은 논의 내용에 반발, 회의장을 또 다시 박차고 나갔다. 원점 재검토를 주장하는 의협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다.
 

2018년 연말 구체적 윤곽 드러낸 분석심사

이 같은 의료계 일부의 반대에도 불과하고 정부는 지난해 12월 27일에 개최된 '제22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분석심사의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냈다. 폐쇄적 심사운영 구조가 개방형, 참여형 구조로 개선된다는 점이 눈에 띄는 부분이다.

정부는 심사체계 과정을 심층심사기구(Peer Review Commiittee, PRC), 전문분과심의기구(Super/Special Review Committee, SRC), 사회적 논의기구(Top Review Commiittee, TRC) 등 3단계의 단계별 심사 모형을 제시했다. 심층심사기구와 전문분과심의기구는 정부와 의료계 인사만으로 구성되나 사회적 논의기구에는 정부, 의료계, 가입자 및 시민단체도 포함된다.

심평원 전문심사기구 운영관련 추천안에 따르면 PRC는 서울·의정부지원, 수원·인천지원, 부산·대구·창원지원, 광주·대전·전주지원, 본원 등 5개 권역 11곳을 중심으로 구분됐다. 정부는 선도사업을 통해 효과분석 및 보완을 거쳐 분석심사를 단계적으로 확대 및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2019년에는 총진료비의 10% 정도를 분석평가심사로 전환해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2020년부터 본사업에 돌입해 단계적으로 총진료비의 50%까지 확대한 후, 2022년까지 80%를 분석심사로 전환하겠다는 것.

시범사업은 △의료의 질과 비용 통합관리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영역 △공공성이 강하고 전문성자율성 보장이 필요한 영역 △과잉진료 등 낭비 우려가 있는 영역 △건별 심사 혹은 제한적 급여기준으로 의료이용의 왜곡이 우려되는 영역을 중심으로 선정됐다.

심평원 강희정 업무상임이사는 "만성질환 영역(고혈압, 당뇨, COPD, 천식)과 급성기진료(슬관절치환술), MRI, 초음파 등 7개 항목부터 분석심사 선도사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당초 예상보다 늦어진 선도사업, 2019.08.01 시작

심평원은 당초 계획보다 선도사업이 늦어진 원인은 전문심사위원회 구성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심평원 관계자는 "전문심사위원회 구성도 구성이지만 시스템 개편을 하는데 오래 걸렸고, 고시 입법예고를 준비하는 과정과 시범사업 지침을 만드는 과정에 소요된 시간 등 복합적인 이유로 지연됐다"고 전했다.

정부는 시행 직전까지 심사체계 개편 방향에 대한 의료계 이해력 제고와 불필요한 오해 해명의 시간을 가졌다. 의협 제28기 의료정책최고위과정 수업에서 '심사체계 개편 방향'을 강의하기도 했으며, 두세 차례 간담회를 통해 의협과 병협, 의학회 등에 선도사업을 설명했다. 

실제로 이 과정에서 대한병원협회의 전문심사위원 추천은 완료됐고 대한의학회도 취지에 공감했다. 하지만 의협과 대개협 등은 반대를 거듭, 전문심사위원회 구성을 완료하지 못한 채 8월 1일을 맞이했다.

의협의 태도에 일부 의료계에서는 우려를 표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한 시도의사회 관계자는 지역 단체들을 중심으로 개편 취지에 대한 이해가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분석심사 설명을 들은 후 생각보다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꽤 있다"며 "제도의 옳고 그름을 면밀히 따지지 않고 정치적 이슈에 따라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식으로 움직이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문심사위원회가 늦게 구성돼도 선도사업에 큰 지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오히려 향후 심사체계 개편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에 대해서만큼은 의료계가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 의료단체 관계자는 "가장 우려하는 것이 하향평준화와 혹시라도 총액예산제로 가지 않을까 하는 부분인데, 필드에서 당장 느끼는 차이는 크지 않을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향후 심사체계를 어떻게 개편하고 보다 수용성이 높은 제도로 탈바꿈시킬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분석심사는 2020년부터 본 사업으로 전환돼 항목 수와 범위가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2020년에는 14항목이 추가되고 2021년에는 20항목이 늘어날 예정이다.

2017년 8월 심사체계 개편을 위한 심평원 내·외부 연구를 시작으로 2019년 8월까지 달려온 분석심사가 정부의 의지처럼 순항할지 확인할 수 있는 문은 일단 열렸다. 

심평원 관계자는 "그동안 일관되지 않은 심사를 한 심평원에 대한 의료계의 불신이 큰데 앞으로 모든 개편 과정에 있어서 자문을 충분히 구할 것"이라며 "개편의 취지가 의료계가 바라던 방향이라는 것을 알면 분위기가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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