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내분비학회 내분비교란물질(EDCs)연구회 박정현 회장
"연구 난해하고 오래 걸려…독성 증명될 때까지 기다려선 안 돼"

대한내분비학회 내분비교란물질(EDCs)연구회 박정현 회장.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대한내분비학회 내분비교란물질(EDCs)연구회 박정현 회장.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내분비 교란물질에 의한 생태계 파괴는 오존층 파괴, 지구온난화와 함께 해결해야 할 세계 3대 환경 문제로 꼽힌다. 미국과 유럽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내분비학회 산하 내분비 교란물질 연구회를 만들어 오래전부터 활동을 펼쳐왔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임상의들의 공식적인 활동이 없어 아쉬움이 있었다. 

이에 대한내분비학회가 2017년 '내분비교란물질(EDCs)연구회'를 발족하며 내분비 교란물질 문제를 풀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내분비 교란물질이 최종적으로 어떤 질환을 유발하는지 확인하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임상의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올해부터 연구회를 이끌게 된 박정현 회장(부산백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을 만났다. 

[창간 18주년 ①] 은밀한 침입자 '내분비 교란물질'에 미래를 도둑 맞다

[창간 18주년 ②] 내분비 교란물질, 태아기부터 성인기까지 만병 유발

[창간 18주년 ③] 범인을 색출하라 '엑스포솜' 연구로 수색범위 넓힌다

[창간 18주년 ④] "내분비 교란물질 독성 의심되면 정부 지침 바로 내놔야"

내분비 교란물질 연구에 임상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환경부 등 정부기관이 먼저 내분비 교란물질 연구를 시작하고 진행해 왔다. 내분비 교란물질 연구는 시간에 따라 물질이 체내에 어느 정도 축적됐고 어떻게 변화했으며, 성별 또는 지역에 따라 어떤 문제가 나타나는지에 대한 분석이 이어져야 비로소 완성된다. 

이런 점에 임상의와 학회의 역할이 중요한데 그동안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연구회가 발족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게 이를 증명한다. 그래서 이 분야에 임상의들이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일단 연구가 잘 되고 있는 국가를 찾아 배워야 한다. 필요하다면 다른 나라와 공동 연구도 진행해야 한다.
 
내분비 교란물질 연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더욱 세련된 연구 방법론이 필요하다. 우리가 기존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법론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내분비 교란물질은 기존 생물학적 연구 방법론으로 진행하기 어려운 분야다. 이 점에는 많은 국내외 전문가가 공감한다. 기존 연구 방법론에 '엑스포좀(exposome)' 등과 같은 추가적인 연구 방법론이 필요하다. 

또 건강에 위해가 되는지 확실하지 않은 화학물질들이 있는데, 연구를 통해 이 물질들을 사용하는 기업과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조심해야 하는 내분비 교란물질을 찾아주고 기업이 이를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본다. 산업계를 적대적인 관계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다 함께 내분비 교란물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화학물질 연구소와 임상의가 내분비 교란물질 연구를 함께 진행할 수 있도록 연구회가 독려할 것이다.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정부는 '주의의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에 근거해 보조를 맞춰가야 한다. 미국 환경 운동가들이 제시한 주의의 원칙이란, 잠재적 환경 위해요인의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확실하지 않아도 환경정책 수립과 규제에 있어 예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요지다. 

내분비 교란물질은 연구 방법론상의 난해함 때문에 연구가 쉽지 않을뿐더러 장기간 연구가 필요하다. 과학적으로 독성이 있다고 증명됐을 때 규제가 이뤄져야 하지만, 내분비 교란물질은 건강상 위해에 대한 의심만으로도 이를 회피하거나 주의할 수 있도록 정부가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대한내분비학회 내분비교란물질(EDCs)연구회 박정현 회장.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대한내분비학회 내분비교란물질(EDCs)연구회 박정현 회장.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내분비 교란물질 사용 관련 규제의 한계점은.

내분비 교란물질 사용을 규제하더라도 회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품 생산에 필요한 화학물질 포트폴리오는 한계가 있다. 제품 질을 생각하면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내분비 교란물질을 규제하더라도 다른 물질의 사용이 늘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분비 교란물질 규제가 조심스럽게 이뤄져야 한다. 

이런 문제는 화학물질 포트폴리오를 이용해 제품을 생산하기 전 건강에 미치는 위험을 먼저 검사한다면 하나씩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내분비 교란물질 문제는 국가별 규제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외국에서는 주의감시대상, 금지 품목 등을 만들어 내분비 교란물질을 관리하고 있다. 나라마다 공통된 규제 물질이 있고 다른 것도 있다. 

앞으로 국제적인 교류를 진행해 내분비 교란물질 규제 관련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UN이 내분비 교란물질에 대한 공동 컨센서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중에게는 내분비 교란물질보단 '환경호르몬'이 더 친숙하다. 용어 통일이 필요하지 않나.

내분비 교란물질, 환경호르몬 모두 같은 의미다. 우리나라 정부는 '내분비 장애물질'이라고 표현한다. 용어 통일은 앞으로 진행될 것으로 본다. 의학계보다는 정부에서 내분비 교란물질 연구를 먼저 시작해 내분비 장애물질이라 불렀다. 학회에서는 'endocrine-disrupting chemicals'의 'disrupting'을 장애보단 교란으로 번역하는 게 합당하다고 의견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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