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8주년]내분비 교란물질, 태아기부터 성인기까지 만병 유발
[창간18주년]내분비 교란물질, 태아기부터 성인기까지 만병 유발
  • 박선혜 기자
  • 승인 2019.07.23 0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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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분비 교란물질 농도, 성인보다 영유아에서 높아
농도 높을수록 지능·운동발달 저해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플라스틱 용기, 영수증 등 일상생활에서 먹고 만지고 입으면서 몸안에 쌓인 내분비 교란물질(endocrine disrupting chemicals)이 생애 전반에 걸쳐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내분비 교란물질은 체내에서 내분비계 정상 기능을 방해하거나 혼란시켜 여러 질환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지목된다. 국내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발암물질 생리대 등 사건이 발생하면서 내분비 교란물질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앞서 1996년 미국 동물학박사 Theo Colborn은 저서 '도둑 맞은 미래(Our Stolen Future)'에서 '환경성 내분비 교란물질이 야생동물과 인류의 생식, 면역, 그리고 정신 기능의 장애와 교란을 유발할 수 있는 주범일 수 있다'고 지적하며, 내분비 교란물질의 심각성을 알렸다.

이에 전 세계적으로 내분비 교란물질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한 세포실험, 동물실험, 역학연구 등이 진행 중이다. 여기에 정부와 과학자들뿐 아니라 의료진도 힘을 보태고 있다. 

창간 18주년 특집호에서는 역학연구를 근거로 내분비 교란물질 때문에 나타날 수 있는 건강 문제를 확인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연구 방향 등을 짚어봤다.

[창간 18주년 ①] 은밀한 침입자 '내분비 교란물질'에 미래를 도둑 맞다

[창간 18주년 ②] 내분비 교란물질, 태아기부터 성인기까지 만병 유발

[창간 18주년 ③] 범인을 색출하라 '엑스포솜' 연구로 수색범위 넓힌다

[창간 18주년 ④] "내분비 교란물질 독성 의심되면 정부 지침 바로 내놔야"

내분비 교란물질, 소아·청소년 2차 성징에 영향

영유아기는 손가락을 빨거나 바닥에 앉아 노는 등 행동 특성으로 인해 체내에 축적된 내분비 교란물질 농도가 높아 주의가 필요하다. 

지난해 12월 환경부 소속 국립환경과학원이 발표한 '제3기 국민환경보건 기초조사' 결과에서는 영유아에서 확인된 내분비 교란물질 농도가 성인보다 높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그래프>.

결과에 의하면, 요중 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DEHP) 농도는 △영유아(3세 이상 미취학 아동, 571명) 60.7㎍/L △초등학생(887명) 48.7㎍/L △중·고등학생(922명) 23.4㎍/L △성인(19세 이상, 3787명) 23.7㎍/L로 조사됐다. 요중 비스페놀 A 농도는 △영유아 2.41㎍/L △초등학생 1.70㎍/L △중·고등학생 1.39㎍/L △성인(19세 이상) 1.18㎍/L로, 영유아가 성인보다 2배가량 높았다.

두 가지 물질은 모든 연령대에서 건강영향 권고값보다 낮아 건강 피해 위험은 없는 수준이었지만, 소아·청소년은 성인과 내분비 교란물질에 대한 노출 경향이 다르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분비 교란물질 노출로 인해 소아·청소년기에 나타날 수 있는 대표적인 문제가 성조숙증이다. 

지난 2000년에는 유방조기발육증 여아의 혈청에서 프탈레이트 농도가 높은 수준으로 검출된다는 보고가 나와, 프탈레이트와 성조숙증의 연관성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모이기 시작했다(Environ Health Perspect 2000;108(9):895-900). 유방조기발육증은 유방 발육이 있지만 다른 2차 성징을 보이지 않는 경우를 의미한다. 

결과에 따르면, 유방조기발육증 여아 41명 중 68%(28명)에서 프탈레이트 대사체 농도가 유의하게 증가했으나 대조군(35명)은 단 1명에 불과했다. 

이와 함께 유방조기발육증 여아와 중추성 성조숙증 여아의 모노메틸 프탈레이트 농도는 성조숙증이 나타나지 않은 대조군과 비교해 의미 있게 높아, 모노메틸 프탈레이트가 성조숙증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지목됐다(J Pediatr Endocrinol Metab 2009;22(1):69-77).

남아에서는 내분비 교란물질 노출로 인해 유방이 발달하는 여성형 유방(gynecomastia)이 보고된다. 터키에서 여성형 유방을 진단받은 40명 남아의 혈청 DEHP 농도는 대조군보다 의미 있게 높았다(Pediatrics 2010;125(1):e122-129). 

일각에서는 내분비 교란물질이 소아·청소년의 사춘기를 지연시킨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2002년 벨기에 연구팀은 평균 나이 17.4세인 남자 청소년을 오염된 교외 지역 또는 시골에 거주하는 남아로 분류해 생식기 발달 정도를 비교했다. 그 결과, 시골에 거주하는 모든 남아는 성인 단계로 생식기 발달이 진행됐지만, PCB와 다이옥신 유사체 등이 배출되는 소각로 근처에 거주하는 남아는 62%로 조사됐다(Environ Health Perspect 2002;110(8):771-776). 

이처럼 내분비 교란물질과 사춘기 발달과의 연관성에 대한 역학연구 결과가 일관되게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생체 내에서 다양한 물질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노출시기와 용량에 따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에 국내에서는 태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장기 추적조사를 통해 유해환경오염물질이 성장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평가하고자 '어린이 환경보건 출생코호트(Ko-CHENS) 연구'가 진행 중이다. △어린이 성장발달 시기별 우선관리 대상 환경 유해인자 목록 작성을 위한 기초자료 확보 △환경 유해인자의 노출평가 △유해인자와 건강영양 평가 등을 수행하며, 2015~2019년에 산모 약 7만명을 모집해 2036년까지 추적관찰을 시행한다. 

성인, 불임·호르몬 이상에 비만·당뇨병 위험도 ↑

▲영수증부터 플라스틱 봉지까지 일상생활 곳곳에 침투해 있는 내분비 교란물질. 인간은 편리함을 얻었다고 생각했지만 전생애 건강을 위태롭게 하는 대가를 치르기에 이르렀다.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영수증부터 플라스틱 봉지까지 일상생활 곳곳에 침투해 있는 내분비 교란물질. 인간은 편리함을 얻었다고 생각했지만 전생애 건강을 위태롭게 하는 대가를 치르기에 이르렀다.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내분비 교란물질로 성인기에 나타날 수 있는 건강 문제는 불임, 조기 폐경, 정자 수 감소, 호르몬 이상 등이 꼽힌다. 

먼저 비스페놀 A는 안드로겐 수용체에 결합할 수 있는 물질로, 높은 농도에서 안드로겐 길항작용을 해 정자 생성을 억제한다.

지난해에는 소변에 포함된 비스페놀 A 농도가 증가하면 미성숙 정자 비율이 증가하고 정자의 운동성이 의미 있게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Am J Mens Health 2018;12(6):2144-2151). 

이와 함께 프탈레이트 일종인 디부틸프탈레이트(DBP)와 DEHP 농도가 높은 직장에서 근무한 남성(74명)의 혈중 유리 테스토스테론(free testosterone)을 확인한 결과, 노출되지 않은 남성과 비교해 혈중 유리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감소했다(Environ Health Perspect 2006;114(11):1643-1648).

여성에서는 프탈레이트가 자궁내막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자궁내막증이 있는 불임 여성은 자궁내막증이 없고 불임만 있는 여성 또는 두 가지 모두 없는 여성보다 혈액 내 프탈레이트 농도가 유의하게 높다고 조사됐기 때문이다(BJOG 2006 May;113(5):515-520).

이에 더해 내분비 교란물질을 당뇨병, 비만의 위험인자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영국 스털링대학 Baillie-Hamilton 교수 연구팀은 환경오염 물질 농도와 비만 유병률이 동시에 증가하는 그래프를 통해 환경에 배출된 화학물질이 비만을 유발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설을 수립했다(J Altern Complement Med 2002;8(2):185-192). 그리고 이 화학물질들을, 지방 생성과 에너지 균형 사이에서 정상적인 발달과 항상성 조절을 방해하는 외부 화학물질이라는 개념인 'Obesogens'로 정의했다.

비만과의 연관성이 가장 많이 입증된 내분비 교란물질은 비스페놀 A다. 미국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 성인과 아동의 비스페놀 A 농도가 증가할수록 비만 및 복부비만 위험이 상승했다(Environ Res 2011;111(6):825-830).

아울러 내분비 교란물질이 세포 및 동물실험에서 인슐린 저항성을 유발한다는 점이 확인돼 내분비 교란물질을 제2형 당뇨병 위험인자로 보는 'Diabetogens' 개념도 만들어졌다. 

폴리염화바이페닐, 유기염소제농약 등 19가지 POPs 농도에 따라 5분위수로 나눠 제2형 당뇨병과의 연관성을 본 PIVUS 코호트 연구 결과, POPs에 가장 적게 노출된 군 대비 노출 농도가 증가할수록 당뇨병 발병 위험이 최대 8.8배 높았다(Diabetes Care 2011;34(8):1778-1784).

지난 2008년 미국국민건강영양조사 데이터 분석에서는 비스페놀 A와 심혈관질환의 연관성이 보고됐다(JAMA 2008;300(11):1303-1310). 2003~2004년 데이터를 분석한 것으로, 비스페놀 A 농도가 1 표준편차 증가하면 심혈관질환 위험이 1.39배, 당뇨병 위험이 1.39배 상승했다.

영국에서 진행한 10년 추적관찰 결과 역시 비스페놀 A 농도가 4.56ng/mL 증가하면 관상동맥질환 위험이 1.13배 높아져, 비스페놀 A와 심혈관질환이 상관관계가 있음을 시사했다(Circulation 2012;125(12):1482-1490).

대한내분비학회 내분비교란물질연구회 전숙 총무이사(경희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내분비 교란물질이 당뇨병, 비만 등과 관련됐다는 역학연구는 상당히 많다"며 "지금도 혈액에서 검출된 POPs 또는 비스페놀 A 등 내분비 교란물질과 만성질환의 연관성을 확인한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연구에서 모든 내분비 교란물질을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POPs가 AhR(aryl hydrocarbon receptor)에 결합한다는 점을 활용해, AhR에 결합한 POPs가 많았던 질환자의 혈청과 질환이 없는 사람의 혈청을 수집해 간접적으로 체내 POPs 농도를 측정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 방법으로 현재 내분비 교란물질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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