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평원 변지혜 부연구위원, 유럽 6개국 HTA 기관 경제성평가 등에 RWD 활용...RCT 완벽대체는 못해
심평원-건보공단, 등재약 재평가에 RWE 활용 연구 진행
제약업계, 경제성평가 면제 약·포지티브리스트 이전 RCT 없이 등재된 약 검증에는 수긍

전 세계적으로 의약품 허가에서 사후관리까지 RWD(Real World Data)또는 RWE(Real World Evidence) 적용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의약품 심사 단축의 한 방안으로 RWD를 분석해 얻은 RWE를 허가심사체계에 반영하는 방법을 마련하고 있으며 캐나다, 네덜란드 등에서는 급여제도에 RWE를 활용하는 추세다. 국내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도 RWE 대세론과 중요성을 인지한 상황. RWE를 당장 활용하기에는 준비가 미흡한 상태지만, 정부는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반면 업계에서는 의약품 모든 주기에서 활용될 수 있는 만큼 충분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에 RWE 활용 방안을 허가영역과 급여영역으로 나눠 준비상황은 어떠한지, 쟁점은 무엇인지 살펴봤다.

Part 1. 의약품 허가

Part 2. 의약품 급여

RWD/ RWE, 의약품 허가에는 플러스 vs 급여는 마이너스 

허가와 달리 급여 영역에서 RWD/RWE 활용은 정부와 의료계, 업계 간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허가에서는 적응증 확대, 안전성 강화 등에 사용될 데이터들이 제약사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급여에서는 약가인하로 이어질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심평원 심사평가연구실 약제정책연구부 변지혜 부연구위원은 보건의료기술평가학회에서 '주요국 의료기술평가(HTA)의 RWE 활용방안 연구'를 통해 RCT의 한계와 이로 인한 급여딜레마를 지적했다.

변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RCT는 △제한된 기간으로 장기간 효과를 알 수 없고 △동반상병이 있거나 노인, 소아 등이 제외되며 △통제된 환경이 임상현장과 다르다는 맹점을 갖고 있다. 그리고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에 작용하는 약물, 생명을 위협하는 약제의 신속허가, 임상 3상 조건부 허가 등 대규모 임상 3상 RCT 수행이 불가능한 신약 개발이 증가하고 있다. 신약의 급여등재를 결정해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불확실요소로 다가온다. 

서울아산병원 이대호 교수(종양내과)가 심평원 RWE 자문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38개 RCT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결과를 보였으나 유럽종양학회(ESMO) 평가기준에 따라 의미 있는 임상적 유의성을 가진 문항은 43개(31%)에 불과했다. 또한 FDA 승인 38개 약제 중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보인 약제는 13개(35%)로, 임상적 유용성과 약제가격의 상관관계는 불확실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RWD/RWE가 대안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변 부연구위원은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스웨덴,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유럽 6개국 HTA 기관의 RWD/RWE 활용 현황을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는 문헌고찰 및 기관 종사자와 인터뷰를 통해 진행됐다.  

연구에 따르면 스웨덴,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는 급여등재 제출자료로서 RWD를 특수한 상황에서 활용 가능하도록 했고, 이들 중 스웨덴과 영국은 RWE까지 예외적으로 인정하지만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외 국가들은 RWE를 활용하지 않았다<표2>. 

심평원 변지혜 부연구위원 발표 자료 

경제성평가 자료로서 RWD 활용은 독일을 제외한 나머지 5개국에서 가능했다. 이곳 관계자들은 급여등재 때보다 약물경제성평가에 RWD 활용이 더 일반적이라고 답했다. 예를 들면, 역학자료로 유병률 및 발생률 자료, 직·간접 비용의 산출, 청구데이터·레지스트리·병원의무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의료자원의 이용, 특히 치료제에 대한 복약 순응도의 평가 자료로 RWD 사용을 추천하고 있다.

조건부 급여제도가 없는 나라(스웨덴, 영국, 독일)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에서는 RWD를 수집하는 목적에 차이를 보였다. 

네덜란드에서 의미하는 조건부 급여 의약품은 혁신적이나 효과 데이터가 부족한 경우이기 때문에, RWD 수집 목적이 RCT를 보완할 수 있는 치료효과 평가에 있었다. 
프랑스는 건강보험시스템에서 실제 치료효과와 비용효과성을 증명하는  경우 RCT보다 RWD를 더 선호했다. 이탈리아는 RWD 사용목적이 다양했는데, 치료효과 평가, 비용효과성 확인, 가격 재평가로 활용했다. 

의료기술평가 제도권에서는 RWD가 아직 RCT를 대체할 수준으로 평가되지 못하지만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국가별 상황에 맞게 활용되고 있다는 결론이다. 

이미 급여에서 RWE를 활용한 구체적인 사례도 있다. 영국 NICE는 오말리주맙의 소아 천식 환자 치료효과를 RWE로 확인했다. 유럽 소아 임상자료와 함께 12세 미만 34명의 어린이 대상 3차 소아 천식 클리닉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기반으로 NICE는 12세 미만 소아 천식 환자에 한해 오말리주맙 사용을 인정했다. 

또한 NICE는 RWE를 근거로 도세탁셀 투여 경험 없는 환자에서 전립선암 치료제 아비라테론의 비용 효과성을 확인했다. 

근거수준·신뢰도는 한계

그러나 한계점은 있다. 변 부연구위원의 네덜란드 조건부 급여 사례연구는 RWD 불확실성을 지적해 시사하는 바가 컸다. 

네덜란드는 보장성 및 접근성 강화를 위해 조건부 급여제도를 실시했다. 49개 신청 의약품 중 25개를 조건부로 급여했고, 최종 12개 의약품에 대한 재평가를 실시했다. 하지만 대상 의약품 RWD 중 3분의 1이 자료 퀄리티 문제로 불확실성을 남겼다. 또한 네덜란드의 보건당국자, 의사, 환자 등 35명의 관계자를 대상으로 조건부 급여가 목적을 달성했는지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절반이 '달성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아울러 변 부연구위원은 RWE 활용 논란으로 근거수준, 신뢰도 비교, 비뚤림(Bias), 결측/탈락, 데이터 접근성 등을 제시했다. 

즉, 근거기반 의사결정에서는 RCT 임상 3상을 가장 높은 근거 수준 문헌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RWD/RWE는 아직은 보완 개념이 강하다는 것. 또한 RWE는 의료진에게 맹검을 실시한 것과 같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다시 말해 알려지지 않은 효과(부작용)를 알아내고자 할 때 등 제한적 상황에서 신뢰도가 높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했다.

따라서 변 부위원구위원은 HTA 기관들이 의사결정에 사용한 RWE 도출 및 활용 정책이 조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관리형 급여계약이 증가하면서 여기에 적용할 수 있는 레지스트리 구축 또는 데이터 질 관리를 위한 표준화 작업 등이 필요하다"며 "동시에 근거수준이 높은 RWE를 도출하려면 이해관계자들이 투명성을 추구하고 명확하게 역할을 분담하며, 데이터 접근관련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도 등재약 재평가에 RWE 활용 준비

복지부는 지난달 28일 '제1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 2019년 시행계획'을 통해 임상 효능, 재정 영향, 계약 이행사항 등을 포함하는 종합적인 약제 재평가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의약품 특성에 따른 다양항 등재 유형별로 평가방식을 차등화하고, 단계적으로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이미 다양한 연구들도 진행 중이다.   

심평원은 '의약품 효과 확인을 위한 병원 진료기록 수집체계 구축 사업' 계약요청서를 공고해 연구자를 모집했다. 의약품은 RCT 근거로 등재되므로 효능은 실제 임상 효과와 차이가 발생할 수 있어 등재 이후 효과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그 배경을 밝혔다. 

심평원은 "RWD 수집과 RWE 생성에 대해 표준화된 프로토콜이 부재하다"며 "향후 의약품 급여관리 같은 의사결정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개별 연구자나 이해관계자들이 창출하는 RWE에 대해 모범사례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건보공단은 지난달 26일 '면역항암제의 등재 후 실제 임상자료에 근거한 사후평가' 과제 공모를 공지했다. 과제 연구배경은 심평원과 동일하다. 특히 면역항암제는 체내 면역기전을 이용해 암을 치료하는 새로운 기전의 의약품으로 약제의 특성상 사용범위가 지속적으로 확대될 예정이어서 임상적·재정적 측면에서 사후평가가 필요하다는 게 공단의 설명이다.

공단은 "최근 보험급여 등재된 면역항암제의 치료효과 및 비용효과성을 RWE에 근거해 사후평가를 실시한 후 심평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 평가 및 공단 위험분담계약 등 관련 협상 시 근거자료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제약업계 관계자는 "의약품 급여등재는 퀄리티가 높은 자료를 요구한다. RCT 데이터를 보고, 비용효과성도 입증하면 급여가 된다”며 “RWD를 바탕으로 등재약을 재평가한다는 것은 근거가 높은 RCT를 바이어스가 많은 데이터로 검증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수준이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신속등재라면 불확실성 제거를 위해 RWD를 활용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신속등재 케이스가 없다"며 “데이터가 의미가 없다는 게 아니라 의미 있는 영역이 따로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허가초과 의약품, 경제성평가 면제 약, 선별등재제도(포지티브리스트) 이전 RCT 없이 등재된 의약품 등을 검증하는 데 RWE를 활용하는 것을 제안했다.  

또 다른 제약사 관계자는 "등재약 재평가는 재정은 물론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며 "재평가 필요성을 일부 공감하는 만큼 업계와 정부, 학계 등이 충분히 논의하고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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