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2019년 재활로봇 보급사업 대상자로 세브란스·일산백병원 등 선정
개발·보급 권장하나 허가·실용화·수가 등은 제자리…개발자·병원 등 한숨
김덕용 세브란스재활병원장, "많은 환자가 혜택 볼 수 있는 길 열려야"

세브란스재활병원 로봇재활센터
세브란스재활병원 로봇재활센터

[메디칼업저버 정윤식 기자] 재활로봇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저출산·고령화 등으로 인해 점차 강조되고, 정부 또한 보급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지만 지나친 규제가 '현실의 벽'이 되고 있는 모양새다.

관련 업체가 오랜 기간 동안 비용과 인력을 투자해 재활로봇을 개발해도 임상 및 실용화 직전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재활로봇을 주로 활용해야 하는 의료기관들이 관련 수가가 없어 도입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도 풀어야 할 숙제로 꼽힌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보건복지부 국립재활원,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은 최근 '2019년 의료재활로봇 보급사업' 대상자를 선정·발표했다.

이번 대상자에는 세브란스재활병원과 일산백병원 등이 포함됐으며 선정된 기관들에는 오는 9월 1일부터 엔드이펙터형 보행재활로봇인 'Morning Walk(주식회사 큐렉소 제작)'와 외골격제어형 보행재활로봇 'EXOWALK PRO(주식회사 에이치엠에이치 제작)'가 도입된다.

'의료재활로봇 보급사업'은 재활 치료용 로봇과 일상 생활용 보조 로봇을 재활병원, 재활관련시설, 장애인 당사자 등에게 제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재활로봇 관련업체에게 국내·외 신규시장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 2012년부터 시행 중이다.

앞서 동국대일산병원, 중앙대병원, 충남대병원 등이 선정된 바 있으며 이들은 보급 받은 로봇을 기초로 재활로봇의 임상적용 활성화를 위해 수가화 자료 마련 연구 등을 진행했다.

그동안 보급됐던 로봇들은 보행재활로봇 'Walkbot_s', 식사보조로봇 'Care Meal', 전동이승로봇 'Robin-T, 상지재활로봇 'Neuro-X', 지능형 하지재활 보행보조로봇 'SUBAR', 손재활로봇 'Rapael, 체간보정재활로봇 '3DBT-33' 등 다양하다.

그동안 정부가 의료재활로봇 보급사업을 통해 보급했던 로봇들. 보행재활로봇 'Walkbot_s', 식사보조로봇 'Care Meal', 전동이승로봇 'Robin-T, 상지재활로봇 'Neuro-X', 손재활로봇 'Rapael, 체간보정재활로봇 '3DBT-33'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그동안 정부가 의료재활로봇 보급사업을 통해 보급했던 로봇들. 보행재활로봇 'Walkbot_s', 식사보조로봇 'Care Meal', 전동이승로봇 'Robin-T, 체간보정재활로봇 '3DBT-33', 손재활로봇 'Rapael', 상지재활로봇 'Neuro-X'(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처럼 재활로봇은 차세대 의료기기와 첨단 융합을 아우르는 분야로서, 새로운 먹거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정부 차원에서 전략적 정책 수립과 연구개발 추진을 권장하고 있으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는 전언이다.

전문가들은 개발이 완료된 재활로봇의 인허가까지 장시간이 소요되는 점, 이를 통과해도 재활로봇에 대한 수가가 없어 판매가 어렵다는 점 등을 시장진입과정에서 발생하는 '높은 벽'으로 생각한다.

현재 국내 재활로봇 인허가는 포지티브(positive) 규제 방식으로, 해당 기기가 안전하다는 근거가 확실한 경우에만 시장에 출시될 수 있다.

지난달 서울아산병원 의료기기 중개임상시험지원센터가 개최한 '서울아산병원 재활로봇포럼'에서도 인허가 규제 방식이 이슈가 됐다.

당시 동의대 메카트로닉 공학과 문인혁 교수는 포지티브 제도를 네거티브(nagative) 제도로 개선하고, 신산업과 신기술 분야의 새로운 제품을 일정기간동안 기존 규제에서 면제하거나 유예시키는 '규제 샌드박스(Regulatory Sandbox)'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문 교수는 "우선허용 사후규제, 선(先)시장진입 후(後)자료보완 원칙으로 재활로봇 활성화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며 "허가를 내릴 때 최소 기능만으로 해주고 향후 임상 데이터를 취득하도록 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언급했다.

인허가 방식과는 별개로 재활로봇에 대한 의료수가가 책정되지 않아 병원들이 도입에 소극적인 것도 문제.

한 재활로봇 업체 관계자는 "병원에 보급이 어려운 이유는 수가가 없기 때문"이라며 "외국계 회사의 로봇 수술기기는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데 근거가 충분한 국내 재활로봇에는 수가가 없어 개발하고도 널리 활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한국로봇산업진흥원 등을 통해 보급 사업에 나서는 등 꾸준히 새로운 의료기술 개발을 요구하는 정부이지만 정작 제도적 지원 등에 소극적인 모습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많은 환자 재활로봇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재활로봇 수가 없어 외국에 비해 성장 속도 더뎌
의학자와 공학자 간 원활한 융합 문화 정착도 중요 

세브란스재활병원 김덕용 병원장.
세브란스재활병원 김덕용 원장.

이 같은 상황 탓에 '의료재활로봇 보급사업'에 선정되지 않는 이상 자발적으로 재활로봇을 도입하는 병원은 많지 않다. 

일부 도입 의지가 확고한 병원들이 환자에게 시행하고 있는 것이지, 수가를 포기하면서까지 도입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세브란스재활병원이 도입 의지가 강했던 하나의 사례다.

세브란스재활병원은 이번 보급 대상 로봇에 포함된 'Morning Walk'에 대한 임상연구를 이미 1년째 진행 중이다.

김덕용 세브란스재활병원장은 이 계기를 살려 새로운 로봇이 보급되는 9월 중에 세브란스병원 재활로봇 센터를 현재 약 33평 규모에서 100평으로 확장해 훈련 프로그램 개발, 적응증 연구 등에 박차를 가해 국내 재활로봇 보급을 이끌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런 김 원장도 국내 재활로봇 시장의 성장이 여러 규제 등에 묶여 있다는 사실에는 강한 아쉬움을 표했다.

김 원장은 "전 세계적으로 재활로봇 시장은 아직 도입기인 것은 맞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외국보다도 더 늦은 감이 있다"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개발한 로봇의 국내 시판 허들이 높다는 것과 병원들이 도입을 주저하는 것 등을 꼽을 수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재활로봇 치료는 사람이 치료를 하는 것에 비해 효과가 높은데 기존의 재활 수가를 적용하라고 하니 활성화되기 힘든 것은 당연하다"며 "일본은 정부가 직접 나서 보급을 확대하고 재활로봇 시장을 형성시켰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일본은 아베 정권 때 재활로봇을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판단, 높은 수가를 책정해 의료기관들에 보급한 바 있다.

그는 "수년에 걸쳐 로봇을 만들어도 임상시험을 해야 하고, 임상시험을 할 여력이 없어 중도에 포기하거나 하더라도 추가로 소요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등 여러모로 업체들이 버티질 못하는 구조"라며 "무조건 허가를 해주는 것도 안되지만 최소한 경쟁을 할 수 있는 배경은 만들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단순 연구비 지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최첨단 의료기술이 활개 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아울러 재활로봇을 만드는 회사들이 많아진 만큼 의학자와 공학자가 원활한 코워크(co-work)를 통해 융합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게 김덕용 원장의 주장이다.

그는 "하나의 로봇을 만드는데 의사와 공학자는 서로 언어가 다르고 관심도 다르다"며 "이 둘이 효과적으로 합심하는 일이 많지 않은데 이 부분도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노령화 사회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일정하게 반복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 로봇이 재활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며 "좀 더 많은 환자가 재활로봇을 경험하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열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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