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안심센터 전국에 250개, 반면 뇌전증 센터는 없어
대한뇌전증학회, 뇌전증 인식 개편·정부 지원 촉구

대한뇌전증학회 편견대책위원회 홍승봉(성균관대 의대 신경과) 위원장은 뇌전증에 대한 정부 지원을 촉구했다.
대한뇌전증학회 편견대책위원회 홍승봉(성균관대 의대 신경과) 위원장은 뇌전증에 대한 정부 지원을 촉구했다.

[메디칼업저버 주윤지·이진영 기자] 우리나라가 뇌전증(epilepsy)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고 정부 지원이 부족해 '뇌전증 후진국'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치매 및 뇌졸중은 국가 차원의 사업이 진행돼 환자 접근성이 높지만, 뇌전증은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대한뇌전증학회는 14일 서울 드래곤시티에서 제24차 대한뇌전증학회 국제학술대회(Korean Epilepsy Congress, KEC 2019) 개최해 이같이 밝혔다.

'93% 뇌전증이 뭔지 몰라...정보-인식 부족'

특히 많은 사람이 뇌전증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국제학술지 Epilepsy & Behavior에 발표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반 성인 약 140명 중 93%는 뇌전증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고, 약 20%는 뇌전증을 정신질환으로 생각했다.

뇌전증 환자 및 보호자도 질병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뇌전증 선진국'에 속하는 영국, 독일 등의 환자 및 보호자는 뇌전증에 대한 질의서(Epilepsy Knowledge Questionnaire, EKQ)에서 27점을 받았다. 반면 한국의 환자 및 보호자는 같은 질의서에서 22점을 받아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런 지식 부족이 질병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졌다. 질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2012년부터 병명을 '간질'에서 '뇌전증'으로 바꿨지만 정작 차별과 편견의 시선은 그대로였다.

대한뇌전증학회 김재문 이사장은 "여러 사람이 노력해 뇌전증이라는 과학적인 병명을 얻었지만 정작 사회적 인식 수준은 우리가 원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며 "뇌전증 환자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뇌전증 환자 3명 중 1명은 자살 충동·시도"

중앙대병원 한수현 조교수(신경과)는 제24차 대한뇌전증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뇌전증 편견에 대해 발표했다.
중앙대병원 한수현 교수(신경과)는 제24차 대한뇌전증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뇌전증 편견에 대해 발표했다.

중앙대병원 한수현 조교수(신경과)는 이러한 편견이 뇌전증 환자의 사회생활 저해하고 자살율을 증가시킨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뇌전증에 대한 무지와 편견이 사회적 차별을 낳는다"며 "뇌전증 환자는 구직 시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 실업률 자체가 6배 이상 된다"며 "직업은 생존과 직결된 만큼, 뇌전증 환자들은 경제적 빈곤을 겪는다"고 밝혔다.

이어 "직업을 가진다 해도 대부분 단순노동이나 생산직, 임시직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고 전문식, 사무직에서는 낮은 비율을 차지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사회적 차별 때문에 대부분 뇌전증 환자는 질환을 공개하지 않게 되고, 개선 위한 목소리가 부족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한 교수가 설명했다.

2017년에 진행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약 70% 뇌전증 환자가 직장, 친구, 심지어 남편과 가족에게도 뇌전증 진단을 숨긴다고 나타났다. 터키 등의 유럽에서 40~50%로 나타난 것에 비해 높은 수치이다.

또 한 교수는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우울감이나 불안장애를 겪는 환자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 뇌전증 환자 3명 중 1명은 우울증 혹은 불안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울증과 불안증으로 인한 자살위험은 각각 20배, 19배 높았고 3명 중 1명은 자살을 생각 또는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지원, 치매는 'Full Coverage', 뇌전증은 '전무'

이처럼 뇌전증 환자가 자살 고험군임이 밝혀졌음에도 정부에서 마련된 해결책은 없다고 대한뇌전증학회 편견대책위원회 홍승봉(삼성서울병원 신경과) 위원장이 꼬집었다.

홍 교수는 "치매 및 뇌졸중은 국가 차원에서의 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뇌전증에서는 전혀 지원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경도인지장애 등의 치매 사업에는 1억 이상의 과도한 지원으로 재정을 낭비하고 있다"며 "중요도를 파악하여 형평성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각 국가의 뇌자도검사기 지원으로 미국에는 100대, 유럽 100대, 일본 50대, 중국 50대 가동 되고 있지만 국내에는 단 한 대도 없어 실제로 환자 1명당 약 5백만원을 부담해 해외로 나간다고 홍 교수가 지적했다.

홍 교수는 "중증 뇌전증 환자는 한국에 장비가 한 대도 없어서 수술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며 "약 50억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매년 1000억원씩 10년간 치매에 지원하는 반면에 뇌전증 연구에 지원계획이 전혀 없다"며 "뇌 질환 간 정부 지원의 차이가 심각하게 커 한국이 뇌전증 후진국 수준에 머무르게 된다"고 말하며 정부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의학계, 정부, 언론 힘을 합해야'

세브란스어린이병원 김흥동 교수(소아신경과)은 대한뇌전증학회가 사회적 홍보 및 뇌전증 정책 수립 촉구 등의 꾸준한 노력을 통해 사회적 인식 변화와 정부 지원을 받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김 회장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의학계, 정부, 언론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며 "뇌전증은 정신질환이나 전염병이 아니며 고혈압과 같이 치료를 받으면 학교, 직장, 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은 학교생활, 취직, 결혼 등에서 많은 차별과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꾸준한 관심으로 사회적 인식을 환기가 바꿔야 법적, 정치적 제도가 바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한편 국내 30~40만명, 전세계적으로 6500만명 이상의 뇌전증 환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뇌전증은 발작을 초래할 수 있는 신체적 이상이 없음에도 발작이 반복적으로(24시간 이상의 간격을 두고 2회 이상) 발생해 만성화된 질환군을 의미한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