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운영된 제도발전협의체로 협상 방식 변화 기대감
예년보다 빠른 상견례·적극적 자료요청 및 제공 등 준비단계 철저
밴드 폭 두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기습 사과로 위기감 시작
재정소위와 직접 협상 불가 소모적 협상으로 눈치싸움 여전

2020년도 수가협상 단체장 상견례 장면.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2020년도 수가협상 단체장 상견례 장면.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메디칼업저버 정윤식 기자] 의약계의 한해 농사를 결정짓는 2020년도 요양급여비용 협상이 막을 내렸다.

결론적으로 의원은 결렬, 병원은 1.7%, 치과는 3.1%, 한방 3.0%, 약국 3.5%, 조산원 3.9%, 보건기관 2.8% 인상으로 마무리됐다. 

수가 평균인상률은 2.29%이며 추가재정소요액은 지난해보다 720억원 증가한 1조 478억원이다.

이에 병원급에 투입되는 추가재정은 4349억원, 치과 935억원, 한방 669억원, 약국 1142억원이며, 의원의 경우 건정심에서 2.9%로 의결 시 3367억원이다.

이처럼 2020년도 수가협상은 역대 최장 협상 시간(약 17시간)을 기록한 것에 대한 뒷얘기와 협상 결과를 두고 공급자 단체별 성패의 자평은 차치한다 한들 유독 온탕과 냉탕이 자주 펼쳐진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번 수가협상 기간 동안에 벌어진 공급자단체와 건보공단 간의 온탕과 냉탕을 시간 순서대로 짚어봤다.

첫 번째 온탕과 냉탕 '제도발전협의체'

공급자단체들은 지난 10년간 적용된 '지속가능한 목표진료비 증가율(SGR, Sustainable Growth Rate)'의 한계 및 수가협상의 전반적인 형식에 대한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결국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약사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가입자 등이 참여하는 '제도발전협의체'를 운영해 합리적인 수가협상의 방식을 도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제도발전협의체는 가입자, 공급자, 정부, 보험자 등으로 구성된 최초의 다자간 수가협상 소통채널로 수가계약 제도 개선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강청희 급여상임이사.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국민건강보험공단 강청희 급여상임이사.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협의체에서 논의된 내용을 살펴보면 △환산지수 산출모형 개선 △밴드 설정 및 공개 △환산지수 계약방식 변화 △재정위 역할 및 기능 재정립 △신뢰성 높은 자료 확보 및 과학적 분석 △협상단 조기 구성 및 협상 절차 축소 등이다. 

특히, 단기적으로는 환산지수 산출 거시지표와 목표·실제 진료비간 보정계수 누적집계 기준년도를 축소하고 중강기적으로는 환산지수·상대가치점수·종별가산 등 수가결정구조의 종합적 개선을 이끌어내겠다 것이 건보공단의 복안이었다.

하지만 논의된 안들의 대부분이 이번 2020년도 수가협상에 적용되지 못했고, 공급자 단체들은 예년과 다를 바 없는 수가협상 방식에 불만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공단이 문제점을 인식하고 늦게나마 개선 움직임을 보였지만 당장 2020년도 수가협상을 앞둔 공급자단체들에게는 '혹시나'가 '역시나'가 된 부분이다.

두 번째 온탕 '기초자료 적기제공'

제도발전협의체에서 논의된 사안 모두가 이번 수가협상에 반영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건보공단은 심층적인 연구와 의견 수렴이 필요한 중장기 과제들의 경우, 당장의 제도발전협의체 운영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미리 보인 바 있기 때문에 '깜깜이 협상'이라 불리는 오명만큼은 벗으려 했다. 

건보공단은 수가협상 초반부, 기존과는 변화된 모습을 공급자단체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수가협상단장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수가협상단장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수가협상 2달여 전인 3월부터 협상에 필요한 기초 자료를 건보공단과 의약단체 간 실무자협의체를 통해 제공했고 이후 공급자단체들의 요청 자료는 최소 3~4차례에 걸쳐 적기에 제공했다.

수가협상 방식의 큰 틀을 변화시킬 수 없는 해이지만, 최소한의 공정성을 갖춰 소모적인 협상을 지양하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수가협상을 이루겠다는 건보공단과 공급자단체들의 의지가 확인 된 부분이다.

실제로 공급자단체들 대다수가 비교적 이전 협상에 비해서 진료비, 인력, 시설 현황 등에 대한 자료를 건보공단으로부터 빠르게 받아 볼 수 있었다고 평가한 이유다.

이와 함께 단체장 상견례 일정이 평균보다 일주일 이상 앞당겨져 건보공단과 공급자단체들이 충분한 수가협상 준비 기간을 보장받은 것도 눈에 띄는 점이다.

두 번째 냉탕 '최저임금'

2020년도 수가협상이 단체별 상견례 이후 1차 협상으로 이어져 본격적인 의견 조율이 이뤄지던 중 '제1차 재정운영위원회 소위원회(재정소위)'가 열렸고, 이후 공급자단체들의 '멘붕'이 시작됐다.

제1차 재정소위 개최 직후 재정운영위원회 최병호 위원장(서울시립대 교수)이 '2020년도 수가협상에 2019년도 최저임금 변동 추이는 반영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기 때문이다.

의협, 병협, 한의협 등 공급자 단체들이 이번 수가협상의 카드 중 하나로 제시한 것은 바로 '최저임금'이다.

2년 연속 최저임금이 높은 폭으로 상승되는 바람에 병·의원들이 경영난에 봉착, 이를 수가협상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피력한 상황에서 공급자단체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의협 이필수 수가협상단장은 2차 협상 브리핑에서 "2018년 최저임금은 일자리안정자금으로 보전됐다고 하고 2019년도 최저임금은 데이터로 반영할 수 없다고 하면 상대적으로 영세한 의원급 의료기관이 체감하는 경영상의 어려움은 더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병협 송재찬 수가협상단장 또한 "인건비 추가부담 같은 관리적인 요인이 수가에 반영되지 않아 수지 불균형을 초래한다"며 "이런 부분이 협상에서 잘 설명됐으면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세 번째 온탕과 냉탕 '추가재정소요액'
1조원→5천억원→1조원 롤러코스터

수가협상 기간 동안 공급자단체들은 이번 협상에서 제시될 추가재정소요액(밴드)의 규모를 1조원으로 예상하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송재찬 수가협상단장은 상견례 직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밴딩폭이 1조원을 훌쩍 넘어야 정상적이고 제대로 된 병원 경영을 할 수 있는 수준의 수가협상이 가능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재정소위가 밴드에 대해서 다소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한들 지난해보다 늘어난 급여비용 총액을 고려하고 2019년도 평균수가인상률 2.37%를 감안할 때 지난해 9758억원을 넘어 1조원은 가능할 것으로 내다본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 같은 긍정적 분위기는 건보공단 강청희 급여상임이사의 갑작스러운 사과로 급속하게 얼어붙었다.

연도별 추가재정소요액.
연도별 추가재정소요액.

강청희 이사는 최종 수가협상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병협, 한의협, 치협 수가협상단에게 재정소위가 최초 제시한 밴드가 기대에 전혀 접근하지 못했다며 이례적으로 양해를 구했다.

강 이사는 "가입자와 공급자의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을 계속하겠지만 최초 밴드가 지난해보다 줄어 전유형 결렬도 염두에 두고 있다"며 "협상여지가 없는 경우 포기하고 복지부에 넘기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발언했다.

이 같은 건보공단의 사과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공급자단체들은 이번 밴드가 1조원은커녕 지난해보다 훨씬 낮은 수준인 5000~6000억원대로 책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다.

한의협 김경호 수가협상단장의 경우 "1조원은 꿈나라 이야기 같다"며 '상상 이상으로 팍팍한 수가협상이 될 것"이라고 관측하기도 했다.

공급자단체들이 답답함을 안고 시작한 마지막 협상 날. 밴드는 예상대로 1조원 이상이 아닌 5700억원대였으며 건보공단이 병협과 의협에 제시한 첫 인상률은 각각 0.7%, 1.3%로 전해졌다.

결국 형식적인 만남만 오고가던 수가협상은 1일 오전 5시까지 한발도 나아가지 못했고, 건보공단이 재정소위를 설득해 밴드를 1조 478억까지 증액하고 나서야 협상타결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네 번째 냉탕 '비효율적 밤샘협상'

2020년도 수가협상은 역대 최장 시간인 17시간동안 진행됐다.

지난달 31일 오후 3시 조산사협회를 시작으로 진행된 수가협상은 다음날인 6월 1일 대한의사협회가 최종 결렬을 선언한 시각인 오전 8시 15분경에 끝났다.

건보공단과 공급자 단체 사이의 본격적인 협상은 재정소위에서 최종적으로 1조 473억원의 밴드를 제시한 시각으로 유추되는 1일 오전 5시 이후인 것을 감안할 때 실제 협상시간은 3시간 30분이 채 되지 않는다. 

(사진 왼쪽부터) 대한병원협회, 대한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약사회 2020년도 수가협상단 모습들.
(사진 왼쪽부터) 대한병원협회, 대한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약사회 2020년도 수가협상단 모습들.

건보공단이 당초 예상보다 낮은 밴드를 증액하기 위해 재정소위를 만나고 설득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고 하지만 비효율적 밤샘협상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는 최고조에 이르는 모양새다.

한 공급자단체 관계자는 "이번 수가협상이 오전 8시를 넘어서까지 실시된 것은 결국 공급자는 읍소하고 건보공단이 재정소위를 설득하고 재정소위가 그 읍소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시 공급자들이 무한정 기다리는 합리적인지 못한 모습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공급자단체 관계자도 "협상방식이 매년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며 "건보공단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재정소위와의 직접 협상 등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진짜 온탕 될 수 있을까? 수정·보완 필요성 결론 난 SGR모형

이처럼 우여곡절이 많았던 2020년도 수가협상이지만 협상 방식 개선과 보완 필요성에 대한 공급자와 가입자, 정부 사이의 공감대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형성됐다.

건보공단 강청희 급여상임이사는 수가협상 마무리 브리핑에서 "협상기간 중에 공급자단체와 소통하면서 얘기한 것이 협상이 끝나자마자 제도발전협의체를 운영해 개선책을 논의하자는 것이었는데 모두가 동의했다"며 "빠른 시일 내에 복지부와 협의해 제도발전협의체를 개시하겠다"고 전했다. 

앞서 2020년 유형별 환산지수 연구책임을 맡은 신현웅 보건사회연구원 보건정책실장도 현 SGR모형이 2~3년 정도 유지될 것이나 중·장기적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현웅 보건정책연구실장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현웅 보건정책연구실장

신현웅 실장은 "단기적인 SGR모형 개선만으로는 의원과 병원 간 수가역전현상 등을 해결하기 어렵다"며 "환산지수, 종별가산, 기본진료료, 의료전달체계 개편 등과 통합해 큰 틀에서의 개선모형을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신 실장의 설명에 따르면 6월부터 수가협상 중·장기 개선모형 마련을 위한 구체적인 연구가 진행될 예정이다.

그는 이어 "기존의 환산지수 연구가 'SGR모형을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까지 내놓는 것이었다면, 6월부터 진행될 후단 연구는 문제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방안까지 마련된다"며 "이와 별도로 공급자와 가입자간의 공론화 과정도 중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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