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게임장애 질병코드 등재 ICD-11 통과
복지부, 대응방향 논의 위한 민관협의체 구성 예고
의료계, "실제로 인정되는 경우 많지 않을 것" 예상

[메디칼업저버 정윤식·주윤지 기자] WHO의 게임중독 질병 분류 이슈가 사회적 관심사로 급부상 중이다.

특정 이해 관계자만 관련된 일이 아니라 의료계를 넘어 게임산업계와 시민단체, 심지어 관계부처간의 갈등으로까지 번질 요소가 다분하기 때문.

특히 의료계는 치료나 연구 등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이번 논란 속 괜한 비판의 과녁이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존재하나, 차분히 등재의 의미와 영향을 분석 중인 모양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세계보건기구 총회'서 '게임중독'을 마약, 알코올, 담배 중독처럼 질환으로 분류하는 내용을 담은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이하 ICD-11)'을 통과시켰다. 

게임중독의 정식명칭은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 code: 6C51)'로, 오는 2022년 1월 1일부터 WHO 회원국을 대상으로 질환 분류가 적용된다.
 

복지부, 후속조치 작업 착수 의지…ICD-11이 명시한 판단 기준은? 

ICD-11 통과 이후 보건복지부는 WHO 권고사항의 후속조치를 위한 민관협의체를 구성하겠다고 지난 27일 밝혔다.

협의체는 6월 중 추진될 예정으로 관계부처 및 법조계, 시민단체, 게임분야 전문가, 보건의료 분야 전문가 등이 포함된다.

반면, 또 다른 정부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으나 ICD-11 통과 이전부터 게임중독 질병 분류에 우려의 시선을 보낸 바 있어 복지부 의견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게임산업계의 반대 입장은 확고하다.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게 될 경우 게임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고착화되고 게임 산업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게임 관련 88개 단체로 이뤄진 '게임 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준비위원회'가 오는 29일 국회 기자회견을 계획한 이유다. 

ICD-11에서 명시한 'gaming disorder'에 대한 개념.
ICD-11에서 명시한 'gaming disorder'에 대한 개념.

그렇다면 이번 ICD-11이 게임이용장애를 판단하기 위해 내린 기준은 무엇일까.

우선 게임장애는 행동장애의 하위분류에 포함되며 이를 판단하는 기준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게임이용 시작·빈도·중지나 게임 플레이 중에 느끼는 긴장감 등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해야 하고, 게임이 업무(공부, 일)보다 우선시돼야 한다. 

또한 게임으로 인해 직장을 다니지 못하거나 공부를 하지 못함에도 게임을 중단할 수 없어야 한다.

특히, 의사가 게임장애 진단을 내리려면 이 모든 증상이 최소 1년(12개월) 동안 지속돼야 하고 우울증이나 조울증 등 다른 정신 질환으로 인해 게임에 의존하는 사람은 게임 장애로 진단할 수 없는 것으로 명시됐다.

아울러 게임에 지나치게 몰입해 본인과 주변 사람에게 물리적인 피해를 가하는 경우에는 게임 장애와는 다른 정신질환으로 구분된다.

즉, 게임을 즐기는 대다수의 사람은 잠재적인 게임중독으로 판단하기 위한 기준으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ICD-11에 게임중독을 포함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WHO의 명시적 입장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WHO는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으로 할 수 있는 지속적이거나 반복적인 게임행동 패턴으로 정의한 것이 '게임중독'이라며, 여러 근거를 토대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합의를 반영해 결정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WHO는 "ICD-11에 게임중독을 포함하면 건강전문가들이 장애 발병 위험에 관해 관심을 갖게 돼 적절한 예방 및 치료 조치가 취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해 이미 한차례 논란이 된 이슈, 당시 지적은 무엇?

사실 게임이용장애 질병 분류 이슈는 지난해 한차례 갑론을박을 겪었던 사안이다.

WHO는 지난해 6월 ICD-11 개정판 일부를 공개하면서 게임장애를 정신장애(질병)로 분류했고 그 후 1년여 동안 이번 확정·채택을 준비했다. 

가상현실 게임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영화 '레디플레이어원'의 한 장면.
가상현실 게임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영화 '레디플레이어원'의 한 장면.

당시 국내에서도 이와 관련해 다수의 토론회와 설명회가 개최돼 게임산업계, 국회, 콘텐츠진흥원, 의료계 관계자 등이 게임장애의 질병화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것인지를 짚었다.

이 과정에서 게임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기 힘든 이유로 △게임중독을 구분하기에는 지침이 부족한 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에게 일방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점 △과학적인 객관성이 확보되지 않은 점 △내성·갈망·금단증상과 같은 중독 요인이 배제된 점 등이 꼽힌 바 있다.

일각에서는 게임장애가 다른 질환과의 연관성이 강해 독립적인 질환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을 문제 삼음과 동시에 공존질환 연구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남긴 바 있다.
 

실제로 인정되는 케이스 드물 것…의료계, 지나친 일반화 논리 경계

의료계는 게임장애 질병코드 등재를 두고 다소 명확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연구논문이 많아 근거가 빈약하지 않다', '실제 환자로 인정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편견이 게임장애에 대한 편견을 만든다' 등이 그것.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명수 홍보기획이사는 "많은 사람이 술을 마시지만 모두를 알코올 중독으로 판단하지 않듯이 게임 역시 마찬가지"라며 "삶의 중심이 게임인 경우, 게임을 위해서 사는 경우, 게임으로 인해 삶의 여러 영역이 파괴되는 경우 등에 국한된 것이니 지나친 일반화의 논리로 본질을 흐리면 안 된다"고 경계했다.

의정부성모병원 이해국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일각의 지적처럼 '게임장애' 관련 연구와 근거가 결코 빈약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WHO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ICD-11'의 'gaming disorder' 코드 설명 그림. "WHO는 최초로 게임 장애를 중독성 장애로 분류 한다. 이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측정할 수 있다"고 적혀있다.
WHO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ICD-11'의 'gaming disorder' 코드 설명 그림. "WHO는 최초로 게임 장애를 중독성 장애로 분류 한다. 이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측정할 수 있다"고 적혀있다.

이해국 교수는 "장기추적연구만 해도 전세계적으로 50개 정도 되고 임상심리쪽 논문도 상당히 많다"며 "도박중독 연구와 비교해도 게임중독 논문이 2배 이상 많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현재도 지역의 상담센터 등에서 게임중독 상태인 아이들을 관리하고 있는 만큼, 의학적 측면에서 더욱 엄격성을 갖고 조기개입 및 치료개입의 서비스 효과성에 근거가 제공되는 계기로 해석한 이해국 교수이다.

또한 이 교수는 정신적인 문제든 신체적인 문제든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의 상황이 발생하면 치료를 받아야 할뿐, 게임장애를 잠재적인 정신질환자로 비판한다면 그 자체가 편견이라는 의견도 보였다.

이해국 교수는 게임장애 질병 코드가 등재돼도 해당되는 사람이 2% 내외, 많아야 4%에서 적게는 0.5%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ICD-11의 진단기준에 미국정신의학회의 게임중독을 판단하는 주요 기능 손상 9개가 전제조건처럼 모두 포함돼 있는 것도 실제 장애로 진단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매우 적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이유다.

이 교수는 "치료를 받으러 오지 않아서가 문제이지 사람들이 치료를 너무 많이 받을까봐 걱정하는 것은 난센스"라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치료해야 할 정도로 게임장애가 심각한 사람들은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편, 2022년 1월에 게임장애 질환 분류가 적용된다 한들, 국내는 2020년으로 예정된 '제8차 KCD(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개정'에서 'ICD-10'만 다룰 예정이다. 

즉, '제9차 KCD 개정'이 논의될 2025년이 되어서야 국내도 '게임 장애'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정립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단지 이번 결정은 권고사항이긴 하나 WHO 차원에서 게임장애를 질병으로 인정한 것이기 때문에 정부와 학계차원의 연구 및 논의는 지속적으로 실시돼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