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AN 2019] 초기 파킨슨병 환자 대상 STEADY-PD 임상 3상 결과 발표
이스라디핀 복용군, 위약군 대비 파킨슨병 진행 지연되지 않아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새로운 파킨슨병 치료제로 가능성이 점쳐졌던 항고혈압제 '이스라디핀(isradipine, 제품명 다이나써크)'이 임상 3상에서 고배를 마셨다. 

칼슘채널 차단제인 이스라디핀은 동물모델 기초연구와 역학연구 등에서 파킨슨병 진행을 늦추는 효과가 나타나, 파킨슨병 환자를 위한 최초 질병 조절 약물(disease-modifying drug)로 이름을 올릴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STEADY-PD 임상 3상 결과, 초기 파킨슨병 환자는 이스라디핀을 복용하더라도 파킨슨병 진행이 지연되지 않았다.

연구 결과가 공개되자 새로운 파킨슨병 치료제 등장을 기대했던 학계에서는 "유감이다"는 반응과 함께 부정적인 결과가 나온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결과는 7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미국신경과학회 연례학술대회(AAN 2019)에서 발표됐다.

이스라디핀, 동물모델·역학연구서 파킨슨병 치료 가능성 확인

칼슘채널은 도파민성 신경세포(dopaminergic neurons)의 미토콘드리아를 자극해 궁극적으로 신경세포 사멸과 파킨슨병 발병을 촉진할 수 있다.

이스라디핀은 파킨슨병 모델 쥐를 대상으로 한 기초연구에서 사멸된 도파민성 신경세포를 재생시키는 효과가 나타나 파킨슨병을 치료할 기대주로 떠올랐다(Nature 2007;447(7148):1081-1086).

이와 함께 이스라디핀 등 칼슘채널 차단제는 여러 역학연구를 통해 파킨슨병 발병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했다. 

대표적으로 2008년 Neurology에 실린 연구 결과에 따르면, 7000여명 성인 중 고혈압 치료를 위해 칼슘채널 차단제를 장기간 복용한 환자군은 치료받지 않은 환자 대비 파킨슨병 발병 위험이 23% 낮았다(Neurology 2008;70(16 Pt 2):1438-1444). 

이러한 효과는 안지오텐신전환효소억제제(ACEI), 안지오텐신Ⅱ수용체 차단제(ARB), 베타차단제 등 다른 항고혈압제를 복용한 환자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 같은 결과를 근거로 이스라디핀 임상 2상이 진행됐고, 초기 파킨슨병 환자에게 이스라디핀 10mg 1일 1회 용법이 안전하고 내약성이 우수한 것으로 조사돼 파킨슨병 진행을 늦추는 최초 약물이 탄생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졌다(Mov Disord 2013;28(13):1823-1831).

다만 이스라디핀의 효능은 입증하기 보단 적정 용량을 확인하고자 진행된 연구라는 한계점이 있었다.

36개월째 평균 UPDRS I-III 점수, 위약군과 유사

미국 노스웨스턴의대 Tanya Simuni 교수팀은 임상 2상에서 확인된 이스라디핀 10mg 1일 1회 용법이 초기 파킨슨병 환자의 질병 진행을 늦추는 효과가 있는지 검증하고자 STEADY-PD 임상 3상을 진행했다.

위약 대조군 연구로 디자인된 이번 연구에는 초기 파킨슨병 환자 336명이 포함됐다. 평균 나이는 62세였고 남성이 68%를 차지했다. 평균 파킨슨병 등급척도(Unified Parkinson's Disease Rating Scale, UPDRS) I-III 점수는 23.1점이었다.

전체 환자군은 이스라디핀 10mg 1일 1회 복용군(이스라디핀군)과 위약군에 1:1 무작위 분류됐다. 

1차 종료점은 'on' 상태에서 측정한 UPDRS I-III 점수의 등록 당시 대비 36개월째 변화로 정의했다. 'on' 상태란 약물 효과가 나타나 파킨슨병 증상이 호전된 상태를 의미한다.

최종 결과, 등록 당시 대비 36개월째 평균 UPDRS I-III 점수는 이스라디핀군 2.99점, 위약군 3.26점 증가했다. 하지만 이스라디핀의 치료 효과는 단 0.27점에 불과했고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았다(95% CI -2.5~3.0; P=0.85). 즉 이스라디핀을 복용하더라도 파킨슨병 진행 지연 효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 

게다가 도파민성 약물치료 시작까지 소요 시간, 운동점수(motor scores), 삶의 질, 인지기능 평가 등 2차 종료점 평가 결과도 두 군간 의미 있는 차이가 없었다.

이스라디핀군의 약물 내약성은 우수했지만, 이스라디핀과 같은 약물 계열에서 보고되는 이상반응인 현기증, 부종 발생률은 높았다. 

기초연구 결과≠사람 대상 임상시험 결과…왜?

파킨슨병 치료제 자리를 넘봤던 이스라디핀이 사람 대상 임상시험에서 고배를 마시자 학계에서는 여러 실패 원인을 제시한다.

먼저 이스라디핀 치료를 너무 늦게 시작했다는 지적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새롭게 파킨슨병을 진단 받은 환자는 이미 도파민성 신경세포의 50~60%가 사멸된 상태였다. 결국 초기 파킨슨병 환자를 대상으로 이스라디핀의 가능성을 저울질했더라도 치료를 더 일찍 시작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가능성은 이스라디핀 10mg이 너무 저용량이라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다만 임상 2상에서 이 용량의 안전성과 내약성이 가장 높았기에 고용량으로 환자를 치료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Simuni 교수는 "이번 연구가 부정적일지라도 칼슘채널 차단제 계열이 잠재적인 신경보호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스라디핀이 표적으로 한 경로(pathway)가 동물모델에서는 효과를 보기에 충분했을지라도, 사람에서는 질병 진행 억제 효과가 나타나기에는 부족했을 가능성이 있다. 여러 약물을 함께 복용하는 '칵테일 요법(cocktail therapy)' 개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미국 플로리다대학 Michael S. Okun 교수는 "연구 결과는 실망스럽지만 의료진은 환자에게 이러한 결과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전 기초연구에서는 이스라디핀이 파킨슨병 진행을 늦출 수 있음을 시사했으나, 사람 대상 임상시험에서는 앞선 결과를 지지하지 않았다. 향후 동물모델 연구 결과가 사람 대상 임상시험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연구팀은 이스라디핀에 치료 반응이 나타난 하위군을 파악하고자 사후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치료 반응 예측인자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피험자의 DNA 샘플을 조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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